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 1월 21일 |하나님의 기준에 미달된 왕

 

■ 1월 21일 | 이재훈 목사

 

 

하나님의 기준에 미달된 왕

 

 

다니엘 5장 25~31절

 

 

인생의 남은 날들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시간을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맞이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벨사살 왕은 알 수 없었던 글씨의 내용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의 이면에 죄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고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 두려워합니다.

 바벨론이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벨사살 왕은 1,000명의 귀족들과 함께 방탕한 잔치를 벌여 두려움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감추려고 한 벨사살 왕의 양심이 하나님이 쓰신 글씨로 인해서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식이 두려운 소식입니까. 아니면 기쁨의 소식입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굳게 붙잡고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두려움 없이 기쁨으로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벨사살 왕을 두렵게 했던 내용

 

 

 25절을 보면 벨사살 왕을 두렵게 했던 글씨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새겨진 글씨는 이렇습니다. 메네 메네 테켈 그리고 파르신.”(25절)

 아람어로 된 이 글씨는 바벨론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선언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메네를 무게나 가격을 상징하는 동전의 단위인 므나로 해석했습니다. 60테켈은 한 므나입니다. 페레스는 2분의 1 므나입니다. 그러나 이 동전들이 의미하는 것은 해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받은 다니엘은 이 단어를 해석할 때 명사의 어근이 되는 동사형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메네를 ‘계수하다’로, 테켈은 ‘저울질하다’로, 파르신은 ‘나누어진다’로 해석했습니다. 모두 명사로 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동사로 변환하여 볼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창조적인 지혜였던 것입니다. 똑같은 사물과 현상을 보아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전혀 다른 각도에서 창의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메네는 하나님께서 왕의 나라의 시간을 재어 보니 이미 끝이 났다는 뜻이고 테켈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란다는 뜻이고 페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뜻입니다.”(26~28절)

 다니엘은 글씨를 보고 벨사살 왕에게 ‘이미 끝이 났다’는 의미임을 알려줍니다. 25절에 두 번 메네 메네가 반복되는 것은 확실히 그렇게 이루어질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제국을 메대와 페르시아의 제국으로 나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심판이요, 예언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미’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시길 바랍니다. “시간을 재어보니 이미 끝났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시간을 모두 재고 계십니다. 시간을 재고 계신다는 것은 모든 것의 때와 기한을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그것을 움직이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목적에 따라 때가 있습니다(전 3:1) 사람이 사는 날이 정해져 있고 그 달 수가 주께 있는 것을 보면 주께서 사람이 넘을 수 없는 한계를 정해 주신 것입니다(욥 14:5).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다스릴 때 하나님의 때를 정해서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시간이 더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여기까지라고 때를 정하시면 아무도 그 때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가장 아름다운 때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때를 정하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이유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함입니다.

 

 

‘이미’ 와 ‘아직’의 차이

 

 

 프레드릭 뷔크너는 자서전에서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면서 모든 인생의 사건을 시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신 사람과 하나님께서 움직여 가시는 삶의 순간들을 그는 ‘시간 너머(beyond time)의 사건’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온 것이 우연인 것 같지만 시간 너머에서 온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심판도 시간 너머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벨사살 왕의 시간을 재어보고 ‘이미 끝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잔치에 있는 어느 누구도 바벨론 제국이 이렇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끝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지만 시간 너머에서 우리의 시간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볼 때는 “이미 너의 시간은 끝났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 세상의 끝이 멀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정반대도 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여러분, 새벽기도를 하는 가운데 틀림없이 ‘이미’ 끝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내 인생과 내 자녀와 가정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라도 오늘 이 예배에서 주님을 높이고, 시간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시간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기하지 마라. 너의 시간은 끝났지만 나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다”(롬 5: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한 단어를 더 넣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의 사랑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왔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오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회개라는 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죄의 대가를 이미 십자가에서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구원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은혜를 베풀어 주었건만 아직 그 은혜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이미 끝난 인생처럼 보이지만 결코 주 안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는 인생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삶을 올려놓는 저울

 

 

 오늘 본문 27절에 보면 테켈이라는 단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벨사살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무게가 모자란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올려놓아야 하는 저울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저울입니다. 하나님의 법의 저울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 저울로써 우리 삶에 넣어주신 것이 양심의 저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양심이라는 저울에 우리의 삶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양심의 저울이 모두 망가져서 무게가 정확하게 달아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마음을 개인의 양심의 저울에 달아도 합격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저울의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저울을 고치는 방법은 은밀한 하나님 앞에 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저울질하실 것입니다.

 최후의 저울은 천국에 있는 저울입니다. 이 저울은 우리의 모든 것을 분명하게 저울질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최후의 저울에서 우리의 삶을 달아봤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합격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오신 목적입니다. 다니엘로부터 심판의 소식을 들은 벨사살 왕은 이상하게도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죄를 인정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자기의 약속을 지킨 것으로 보아 다니엘의 해석이 옳다고 인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날 밤 벨사살 왕은 죽음을 당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처럼 보이지만 이미 예견된 죽음, 시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의 최후가 주어진 것입니다.

 인생의 남은 날들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시간을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맞이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정리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