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라준석 목사 - 혀의 위력과 통제의 어려움
라준석 목사
혀의 위력과 통제의 어려움
야고보서 3장 1절~12절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여러분의 입술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기 때문에 사탄도 우리의 말을 점령하려고 합니다. 그곳이 영적 전쟁터에서 중요한 격전지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
우리의 행동 가운데 아주 중요한 부분이 바로 말입니다. 오늘은 언어생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한 가지 묵상할 것은 여러분 평상시에도 말을 잘해야 하지만 고난 가운데 있을 때는 더욱 더 말을 잘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일수록 우리가 하는 말을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힘든 가운데서는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아주 사람을 파괴하는 결정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힘든 시기를 지날 때에 여러분,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고난은 인생의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때는 인생의 패배자로 삶을 마감하는 결승선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달려가는 시작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난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이기 때문에 그때 희망과 소망을 말하고, 하나님의 꿈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조건이나 그 사람의 환경보다 중요한 것이 말
“내 형제들이여,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너도나도 선생이 되려고 나서지 마십시오.(1절)”
야고보서를 기록할 때는 두 가지 상황이었습니다. 한 가지는 시험과 고난의 상황, 두 번째는 교회 공동체가 깨어지고 분쟁이 있는 상황. 그 때 야고보서 사도는 말합니다. 어려움을 당할수록 중요할 때일수록 힘든 상황일수록 여러분의 언어생활을 잘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말을 해야 합니다. 선생이 되려고 나서지 마십시오. 선생이라는 직위는 아주 중요한 직위입니다. 왜냐하면 말하는 직책이고 가르치는 직책이고 영향력 있는 직책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너도나도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은 언어의 영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제자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말 한마디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거짓 교사들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 함량미달의 교사가 많았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거짓 교사나 자격미달의 선생을 통해서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인도되고 그리고 마음이 낙심되고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야고보 사도는 너도나도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 이 말은 언어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실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가 말에 실수가 없다면 그는 자기의 온몸도 제어할 수 있는 완벽한 사람입니다.(2절)”
말씀에 실수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제가 이력서를 쓰거나 받을 때면 주특기란에 좋은 것들만 써 놓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하면 주특기에 ‘실수’라고 써야 합니다. 누구든 말의 실수가 없다면 그는 완벽한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고 난 후에 정말 후회하는 것이 말입니다. 인생의 조건이나 집안, 능력이 좋은 것보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완벽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말은 인생의 조건이나 그 사람의 환경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언어는 생각을 걸어놓는 옷걸이
“우리는 말들을 길들이려고 그 입에 재갈을 물려서 말들을 다 끌고 갑니다. 보십시오. 그렇게 큰 배들이 거센 바람에 밀려가지만 항해사는 작은 키 하나로 방향을 잡아갑니다.(3~4절)”
힘센 말을 무엇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작은 고삐입니다. 재갈을 가지고 힘센 말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말에게 그것으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가거나 멈춰서도록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하도록 합니다. 큰 배가 움직이도록 조정하는 것은 작은 키입니다. 키가 방향을 결정합니다. 작은 것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작은 것으로 행동을 유발시키고 작은 것으로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작게 보이지만 혀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사람의 행동을 유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천국 메시지도 말로 전달됩니다. 죽느냐 사느냐하는 구원과 멸망에 관련된 메시지도 말을 통해 전달됩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이지만 큰 것을 자랑합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작은 불씨가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웁니까? 혀는 불입니다. 혀는 우리 지체 안에 있는 불의의 세계이며 온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바퀴를 불사르며 지옥 불에 의해 불살라집니다.(5~6절)”
혀는 작지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유발시키고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입니다. 혀를 잘못 사용하면 더러운 세계로 인도합니다. 온 몸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어는 생각을 걸어놓는 옷걸이와 같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사상을 걸어놓는 옷걸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언어에 어떤 생각을 걸어놓는가에 따라서 다른 사람을 더럽힐 수도 있습니다. 인생 전체를 패망으로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파괴력과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 한 마디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폭력 가운데 가장 무서운 폭력이 언어폭력입니다. 언어폭력은 깊게 박히고 길게 갑니다. 칭찬도 길게 가고 언어폭력도 길게 갑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한 번 기록되면 지우기 힘든 흔적이 무엇일까여.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지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말 한마디가 당신의 자녀의 가슴에 박혀있습니다. 친구의 가슴에 남겨있습니다. 돌과 나무에 새겼다면 깎아버리고 흙에 새겼다면 흙을 덮어버리면 되지만 마음에 새기면 쉽게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만 지우실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깊이 박힌 것이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누구도 길들일 수가 없는 ‘혀’
“모든 종류의 짐승이나 새나 벌레나 바다 생물은 길들여질 수 있어 사람에게 길들여져 왔습니다. 그러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지칠 줄 모르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입니다.(7~8절)”
하나님께서는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가 없다는 것을 선포하십니다. 짐승도 길들일 수 있습니다. 새, 벌레, 바다 생물도 길들이지만 사람의 혀는 길들이지 못합니다. 여러분,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혀를 길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언어를 바꾸려면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마음을 바꾸려면 내 마음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마음에 분노가 가득한 사람은 분노가 말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기쁨이나 사랑이 충만하면 사랑의 언어가 나옵니다. 그래서 마음의 주인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어휘력은 책을 읽고 습득할 수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성령께서는 어휘력의 목적과 방향을 바꿔버리십니다. 내 혀를 내가 통제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성령충만하기를 간구하십시오. 다윗은 “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두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 주소서.(시 141:3)”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여러분의 입술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기 때문에 사탄도 우리의 말을 점령하려고 합니다. 그곳이 영적 전쟁터에서 중요한 격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을 칭찬하십시오. 말로 성령충만한 말을 하십시오.
찬양하면 저주가 물러갑니다
“우리는 혀로 주와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그것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찬양과 저주가 한 입에서 나오니 내 형제들이여, 그래서는 안 됩니다. 샘이 어떻게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짠 물을 낼 수 있습니까? 내 형제들이여,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이처럼 짠 물 내는 샘이 단 물을 낼 수 없습니다.(9~12절)”
어떻게 하면 우리는 쓸데없는 말이나 거친 말, 죽이는 말을 하지 않고 살리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람을 일으키고 소망을 주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크리스천의 아름다운 영적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말씀에 보면 ‘찬양’이라는 말이 나오고 ‘저주’라는 말이 나옵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찬양하고 때로 저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물을 내는 샘은 짠물을 낼 수 없듯이 내가 찬양을 선택하면 저주하지 않게 됩니다. 동일한 순간에 동일한 사람을 만나며 우리가 찬양을 선택하면 저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찬양하면 저주가 물러갑니다.
“내가 내 어머니의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으니 떠날 때도 벌거벗고 갈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것을 여호와께서 가져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욥은 죄를 짓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욥 1:21~22)”
욥은 하나님을 찬양했기 때문에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찬양하면서 저주할 수는 없습니다. 찬양을 선택하면 어둠과 저주가 물러갑니다. 희망을 선택하면 절망이 물러갑니다. 감사를 선택하면 불평이 물러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과 ‘사람을 칭찬한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이 찬양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면서 찬양하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시간입니다. 찬양은 예배의 서론 부분이나 마음을 여는 정도가 아닙니다. 찬양하는 시간은 저주가 물러가고 귀신이 떠나가는 시간입니다.
축복의 말을 할 것을 다짐하십시오
찬송의 능력이란 책이 있습니다. 찬송 할 때 귀신, 사탄이 물러가고 병이 물러갑니다.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게 되면 우리 가운데 있는 저주가 물러갑니다. 악한 말을 잊기 위해서는 ‘악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지 말고 좋은 말을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시에 단물과 쓴물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물을 선택하면 쓴물은 자연스럽게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질문을 잘해야 됩니다.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랑하기로 선택하고 찬양하고 칭찬하고 잘해주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빛이 비추면 어두움은 자연스럽게 물러갑니다. 빛과 어두움은 공존하지 못합니다. 찬양과 저주도 공존하지 못합니다.
소망은 절망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성령충만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을 선택하십시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말고 쓸데 있는 말을 할 것을 선택하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칭찬받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 정리 정성진 기자 ju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