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영원히 아버지께 있습니다. 아멘!(마태복음 6장 9~13절) / 이재훈 목사
마태복음 6장 9~13절

이재훈 목사
기도가 응답되는 이유는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도가 응답되지 않더라도
아버지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고백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믿음을 통한 삶의 변화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납니다. 거듭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씨앗과 생명, 성령님이 들어오면 기도가 터지고 말씀이 들리면서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진정한 회개기도를 드리기 전에 이미 성령 안에서 거듭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함 나누는 ‘기도’
기도는 호흡입니다. 호흡은 반드시 들이마신 후에 내뱉습니다. 기도는 호흡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영이 먼저 내 안에 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기도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로는 할 수 없습니다. 기도를 의지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녀가 될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우리를 창조하고, 삶을 인도하고, 필요를 공급하고, 심판하는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의 목표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셨기 때문에 모든 상처와 아픔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함을 나누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신앙생활의 목표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될 때 온전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로 인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가장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익숙해지는 것과 친밀한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배와 성경읽기, 교회와 공동체에 익숙하지만 정작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도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겨 내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을 분별해 내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익숙함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되신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하나님과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고 하나 됨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
“이 율법책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밤낮으로 묵상해 그 안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켜 행하여라. 그러면 네 길이 번창하고 성공하게 될 것이다”(수 1:8).
여호수아는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 23장과 24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면서 체험하고 고백한 말씀이 나오는데 바로 ‘너희는 여호와를 친근히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라는 것입니다. 벌 받을까 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과 구별해 더렵혀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는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응답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기로 작정하면 모든 것이 열리고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면 실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의 시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채워 주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영과 육의 양식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날마다 신실하게 채워 주십니다.
여러분, 욕심은 채워지지 않지만 필요는 반드시 채워집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필요가 무엇일까요. 마음속에 있는 무거운 짐과 상처 그리고 용서하지 못한 것을 털어 버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는 미움과 아픔, 상처와 용서하지 못한 것들을 털어 버리고 하나님과 친밀함을 나누는 것입니다. 또한 날마다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공격을 피해 보호를 받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간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만 자신의 힘으로 시험과 악을 이기려는 사람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악과의 전쟁입니다. 영어의 ‘evil(악마)’을 거꾸로 하면 ‘live(살다)’입니다. 산다는 것은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기도의 시작은 ‘경배’, 끝은 ‘찬양’
주기도문은 경배의 기도로 시작해 찬양의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주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주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 6:9~10).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께 있습니다. 아멘”(마 6:13).
경배의 기도는 개인의 기도제목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왜 찬양의 기도가 마지막에 나올까요. 하나님이 내 삶 속에서 행하시는 일로 아버지를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간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배와 찬양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찬양으로 끝나지 않으면 자기중심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가 응답되는 이유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아도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로 천국을 누리는 비결
“그러나 제가 누구기에, 제 백성들이 누구기에 이렇게 많은 것을 드릴 수 있게 하셨습니까? 모든 것은 주께로부터 나온 것이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드린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처럼 주께서 보시기에 나그네며 잠깐 머무는 낯선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서 사는 날은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성전을 지어 드리려고 준비한 이 모든 풍족한 것은 다 주의 손에서 나온 것이며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대상 29:14~16).
이것은 다윗의 송영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인간에게 속한 단어가 아닙니다. 모든 권세와 영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께 있다’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또 나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이 영원토록 있기를 빕니다’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계 5:12~13).
모든 능력과 부귀, 지혜와 힘, 존귀와 영광 그리고 찬양이 아버지께 있음을 날마다 고백하는 것이 천국에서의 삶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비결은 성령님을 간구하고 기도로 영광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새로워지고 날마다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정리 조은실 기자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