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자녀로서의 기도(누가복음 11장 9~13절) / 조정민 목사

조정민 목사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전혀 구하지 않는 사람, 게을러서 찾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땅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고난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 권면의 말씀에 앞서 우리가 무엇을 구할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직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너희에게 더해 주실 것이다”(마 6:33).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약속을 기억합니다. 그런고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것에는 우선순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으니 그것부터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순서대로 구하면 나머지를 다 채워주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구하십시오
천국과 지옥의 비유는 간단합니다. 천국은 긴 젓가락으로 남의 입을 먹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은 그 젓가락을 자기 자신의 입에 가져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은편에 있는 사람을 떠먹여주면 문제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비록 이 천국과 지옥의 비유가 우리가 어렸을 때 들은 비유이지만 얼마나 적절합니까.
구할 것은 언제, 무엇을, 왜 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구한다는 것은 목적과 가치의 문제입니다. 크리스천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구하지 않는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복음을 잘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생과 천국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을 구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문제에서 잘못 빗나가는 것은 옷을 입을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과 같습니다. 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가치관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크리스천은 세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육신의 정욕, 인생의 자랑을 구합니다. 이것들은 눈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이 아닌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는 것의 출발점은 그것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가치관은 우리 안에서 정립됩니다. 우리 안에 세워지지 않은 것이 어떻게 밖에서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안에서 추구할 수 없는 것은 밖에서도 추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추구하고 우리 안에서 바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바로 세워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밖에 나가서 두드려야 합니다.
찾으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구할지 안다면 이제는 무엇을 찾을지를 두리번거리게 될 것입니다. 언제 찾을 것이고 어디서 찾을 것인지 구체적으로 찾기 시작할 것입니다. 찾으라고 할 때에도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어릴 적에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보물은 뜻밖의 장소에 있습니다. 보물이 없는 데 보물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곳곳에 보물을 숨겨 두셨습니다. 찾으라는 것에는 ‘있다는 것’이 전제이고 또한 ‘내 눈 앞에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시면 우리가 즉각 찾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찾되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찾기만 하면 약속대로 보물은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세계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분명한 가치관이 있다면 분명한 세계관도 있는 것입니다.
찾는 것도 세상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하는 건 목적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다가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찾는 건 밖에서 찾아야 합니다. 찾으러 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밖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그런 것을 찾아낸다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찾아냈는지 궁금해 하지 않겠습니까. 두드리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찾고 또 찾으면 결국 발견합니다. 그러나 즉각 우리의 눈앞에 안 보일 때는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따라 두드립니다. 우리는 그렇게 두드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목적에 합한 세상을 찾아 헤매는 사람입니다.
두드리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매일 새벽제단에서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을 똑같이 구하고 갈망해야 합니까. 우리의 신앙이 10년, 20년 동안 성숙되어 간다면 우리의 기도는 자연적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3년이나 예수님을 좇아다니고 배웠지만 기도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주기도문에 없는 단어는 ‘나’입니다. 주기도문에는 ‘우리’라는 단어만 여섯 번이 나옵니다. 우리를 위해 구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공동체입니다. 크리스천은 출발에서부터 공동체이고 끝까지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왜 구하고 찾고 두드립니까. 그 동기를 점검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왜 구할 것인가가 분명하다면 찾고 두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시대적 소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온누리교회가 전도와 선교에 목숨을 걸었던 까닭도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주님이 원하는 방법으로 찾았고 두드렸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지금 여기까지 와있는 지 모릅니다. “너희 가운데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또 자녀가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아버지가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1~13절)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것이 결론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위해 찾고 두드릴 때에는 우리의 체면이 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그것을 이겨내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것을 위해 부르짖을 때 성령이 충만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남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릴 때 성령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