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인간의 실수에도 무효화되지 않는 언약(창 12:10~20) - 이재훈 목사

 

 

아브람을 향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입니다.

그것을 ‘언약으로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

있다할지라도 부르심대로 그 사람을 끌고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인류 가운데 한사람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는 셈의 후손 가운데 아브람을 택하여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부르심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의 부르심입니다. 그것을 ‘언약으로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언약은 쌍방의 계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아브람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언약은 주권적이며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셨고 약속을 주시고 떠나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아브람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은 다른 어떤 언약보다도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상황, 조건에 상관없는 하나님의 부르심

 

 

아브람에게 ‘부르심’은 사실 잡아당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아브람이 말씀대로 따라갔다고 쓰인 것을 보고 아브람의 믿음을 과대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인생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아브람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이기보다는 그가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생의 죽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로부터 받는 긴장,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 종합적인 상황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람을 몰아붙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 있다할지라도 부르심대로 그 사람을 끌고 가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알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르심을 포기할 수 있는 유혹을 견딜 수 있는가’입니다. 내가 포기할 수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포기해도 그 길을 다시 가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있으면 내가 과거에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아내 사래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되고, 땅이 없었지만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았고, 땅의 모든 족속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있으면 우리의 능력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부르심의 열매를 맺고야 마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아브람의 생애가 자세하게 기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르심을 따라 믿음으로 사는 여정이 그렇게 쉬운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실패와 좌절과 유혹에 넘어가는 연약함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오늘 아브람의 인생을 자세히 보여주십니다. 이 과정을 보면 아브람이라는 인물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연약하고 불신앙하고 좌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감당할 수 없어 상황에 흔들리는 아브람의 모습을 통해 바로 저와 여러분의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이후에 일어나는 아브람의 모든 사건은 1~3절에 나온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해석하면 됩니다. 우리 인생의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서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역사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인생은 해석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고 신실하게 지켜나가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아브람의 인생을 평가해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르심에 뒤따르는 이해할 수 없는 시련

 

 

하나님의 부르심이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일지라도 우리의 순종의 첫걸음은 연약할 수 있습니다. 일단 아브람의 순종이 연약했다는 것은 어제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의 순종은 아버지 데라에 의하여 제지되기도 했습니다. 아브람은 갈데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떠났지만 아버지가 가기 싫다고 하면 갈 수 없는 상태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강하게 부르셨을 때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와 이별하고 조카 롯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한 땅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땅은 아브람의 이름으로 문패가 박힌 땅이 아닌, 함의 자손 중에서도 잔혹하고 포악한 가나안 자손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족속은 이미 노아 시대에 저주받은 족속이니 아브람 시대에도 악한 족속이었습니다. 그런 민족들이니 아브람은 눈치를 보고 내려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머문 땅에 큰 기근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믿음은 기근을 만납니다. 믿음은 반드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만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왔는데 기근이 온 것입니다. 수험을 치는 학생에게는 반드시 시험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험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견고해집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아브람에게 찾아온 가나안 땅에서의 첫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기근이 왔을 때 양식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이 뭐가 그리 문제가 될까요. 그런데 아브람에게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일 수 있는데 그 땅으로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은 기근이 있는 땅이지만 버티고 씨름을 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험을 통해 사람이 생각하는 선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선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선은 모든 상황과 형편이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도 부르심을 따라 그곳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은 흉년을 넘어 그 기근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고민하지 않고 너무나 쉽게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르심을 따라 내려갈 때 상황과 환경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황은 나의 선택과 상관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지금 기근은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환경은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떠한 믿음의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선택에 따라 환경이 언제나 바뀔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 기근이 왔지만 아브람이 그 상황 속에서 믿음의 선택을 했다면 환경은 바뀌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

 

 

이제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가 큰 위험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내를 바로에게 빼앗길 뻔한 위험입니다. 불신앙의 선택은 반드시 위험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또한 위험은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우리가 온전히 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애굽에 내려가 거리를 걷다보니 사람들이 아내 사래를 주목합니다. 아브람의 마음에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누이라고 합니다. 왜 성경은 이러한 수치스러운 일을 기록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있는 인격적 자질 때문에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바로의 귀에도 이 일이 들어갑니다. 사래가 바로의 궁으로 불려갑니다. 그 대가로 아브람은 많은 선물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래를 보호하셨습니까.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창세기 12장 1~3절에 의해 해석해야 됩니다. 만약 사래가 바로의 자손을 낳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바로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람과 사래는 애굽을 나오면서도 큰 재물을 갖고 나옵니다. 불순종하고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창대케 하시겠다는 약속을 계속 지켜나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거절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