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세상의 길과 믿음의 길

창 13:1~18

 

진정한 비전은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서 바라본 동서남북입니다.

아브람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것처럼 친숙했던 것,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떠나보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전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재훈 목사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을 통해 이 땅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듯이 ‘함께하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제단을 쌓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오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찾아간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그런 상황 가운데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부르심의 약속과 이 상황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며 선택해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애굽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아브람에게 찾아온 두려움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애굽으로 내려갈 때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사실 애굽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면 가나안 사람들이 더 악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래에 대한 위협이 애굽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미 가나안에서도 그런 위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있을 때는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나타나실 때마다 예배하고,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 약속을 따라 가는 사람은 빈들에서도 두렵지 않습니다. 상황이 힘들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제단 쌓는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의 부르심의 약속과 예배하는 일을 잊어버릴 때 상황에 이끌리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

 

이런 실패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많은 재물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십니다. 그가 실패했음에도 결론적으로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는 축복하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인 은혜의 약속을 지켜가고 계셨습니다. 아브람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약속과 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에 붙잡힌 인생,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에 얽매인 인생이 진정 자유로운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축복의 약속을 주시면서 조건이 있었습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조건이었습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은 약속의 상속자로 인류를 구원하신 메시아의 조상, 여인의 후손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그런 인물로 택한 사람이 바로 아브람 한 사람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나안 땅의 유업도 아브람에게 주셨습니다. 롯과 아브람이 둘 다 재산이 많기 때문에 이별한 것 같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 한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려고 그가 책임져야 될 가족과도 이별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심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조카 롯이 독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때에 맞춰서 분리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아브람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위험으로 빠지는 선택

 

이렇게 아브람은 롯과 헤어지기 전에 롯에게 ‘네가 오른편을 선택하면 내가 왼편으로 가고, 네가 왼편으로 선택하면 내가 오른편으로 가겠다’고 너그럽게 이야기합니다. 조카를 사랑하는 마음, 어쩌면 롯의 아버지이자 형제인 하란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아브람의 너그러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불순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롯이 가나안 땅을 선택하겠다고 했으면, 그 가나안 땅을 아브람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문제가 생기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브람은 너그러운 선택을 한 것 같이 보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자꾸 위험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약속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간적으로 볼 때 너그럽고 포용력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관점에서 볼 때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롯은 가나안 땅이 척박했기 때문에 그 땅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은 일 년에 두 차례 우기가 없으면 광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우기가 되면 놀랍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권고하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땅이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그래서 축복의 땅입니다. 그런데 롯은 눈에 보이는 넓고 풍요로운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바라본 땅은 멸망이 예정 돼있는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이렇게 롯이 동편에 정착함으로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됩니다. 롯은 이기적인 목적, 물질적인 탐욕으로 현재 보이는 풍요로움을 근거해서 선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조카 롯이 다른 땅을 선택함으로써 아브람이 그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비전, 하나님의 부르심

 

이렇게 롯이 풍요로운 땅을 선택하고 아브람을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 앞에 다시 나타나셔서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시점을 종합해보면 항상 누군가가 아브람에게서 떠날 때였습니다. 아버지를 떠났을 때, 아들인 이삭을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제단에 바쳤을 때 약속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롯이 떠났을 때 약속을 주셨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있는 곳에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네가 보는 이 온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 그리고 내가 네 자손을 땅의 먼지와 같이 되게 하겠다.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네 자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일어나 이 땅을 동서남북으로 누비며 다녀 보아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겠다’”(14~17절).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바라봅니다. 바라볼 뿐만 아니라 다녀봅니다. 바라보는 믿음과 다녀보는 믿음,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롯이 떠난 이후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 한 번 비전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비전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그 부르심 가운데서 바라본 동서남북입니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나의 비전이 되면 반드시 실망하게 됩니다. 롯이 바라본 것처럼 눈에 보기 좋은 땅, 즉 자신의 육신으로부터 나오는 비전이 아닌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그 약속 위에 서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바라보는 비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아브람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것처럼 친숙했던 것,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것,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떠나보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비전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 정리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