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1-양치기와 리더십
Self Upgrade | 특강 1 양치기와 리더십 이어령 박사 (전 문화부장관) "예술가는 감동은 주지만 감동을 뛰어넘는 리더십은 없다.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가 예수님이 걸었던 지도자의 길 예수님처럼 군중 속에서 함께 하는 것이 리더십의 모델이다." 지도자로서의 업그레이드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지도자는 교회 큰 목사님이나 CEO만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가정, 친구 등 어디서나 어느 그룹이든지 그것을 이끌어가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래의 지도자상을 가지고는 안되는 것이 이 시대입니다. 그래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고 오늘의 주제로 바로 그것입니다. 감동을 넘는 리더십 먼저 왜 예술가는 지도자가 못되는가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왜 지도자가 못되는가에 대해 ‘낙타의 눈물’이라는 다큐를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결론적으로 낙타는 웁니다. 큰 눈물방울 흘리며 슬피 웁니다. 낙타는 사막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성서에서도 낙타가 많이 나오지만 좋은 뜻으로 나온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낙타중에서도 새끼를 낳아 돌보지 않는 모성애가 없는 낙타가 종종 있습니다. 모성애가 없는 낙타는 결국 새끼 낙타가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합니다. 이 다큐에서 몽골사람들에게는 모정을 되돌리게 하기 위한 비방이 있다는 것을 소개했습니다. 몽골사람들은 먼 마을에서 악사를 초대해 잘 대접하고 모성애가 없는 낙타를 묶어놓고 연주하게 만듭니다. 그 낙타 앞에서 손자를 많이 키운 할머니가 사랑의 노래를 부릅니다. 낙타가 그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답니다. 그렇게 거칠고 새끼를 돌보지 않던 낙타가 모정이 돌아오게 된다는 얘기입니다.낙타가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사랑이 되돌아오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 감동을 주는 것 문학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낙타를 울린 그 할머니는 감동은 주지만 인도하지는 못합니다.그렇다면 감동을 뛰어넘는 지도력이 뭔가를 생각해봅시다.돈이나 권력으로 그룹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나 권력으로 안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의 맘을 이끄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에게는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 금전과 권력이 현실인 것처럼 보이지만 매력이 느껴져야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다른 동물들은 집 밖에서 인간을 해치지만 같이 살면서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 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쥐를 잡으려고 하고, 여러 가지 덫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는 쥐를 주제로 한 만화를 만들어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디즈니는 쥐를 잡지 않고 사랑으로 재창조했습니다. 페스트가 아니라 웃음과 꿈을 주는 쥐로 바꿔놓았다는 것입니다.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작은 동물도 창조력을 가지고 캐릭터화시키면 사랑과 행복과 꿈의 쥐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게 예술의 힘이고 문화의 힘입니다. 그러나 예술 가지고는 지도자가 못됩니다. 베토벤도 그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지만 사람 하나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고 친구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예술가는 남에게 감동을 주지만 남을 리드하고 남에게 힘을 주고 이끌어가는 힘은 없습니다. 고수의 리더십 오늘날 교향악단 조직을 최고의 CEO 조직이라고 말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지휘자는 관객을 보지 않고 연주자만 보고 지휘합니다. 생산만 했지 소비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관 안하는 회사의 경영자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판소리에서 최고는 고수(鼓手)입니다. 고수의 한 눈은 창을 하는 사람에게 한 눈은 관객을 향해 있습니다. 똑같은 창이라 할지라도 듣는 사람과 노래하는 사람 사이에 고수가 조정을 하는 것입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고수를 통해 우리는 또다른 리더십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오늘날 CEO는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로 이어주는 국악에 있어서의 고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고수 경영론을 주장해 왔습니다.일본에서 ‘바보의 글’이라는 책이 300만부나 팔리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바보는 생각의 벽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그 바보의 벽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보는 모르는데도 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른다고 인정할 때 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99.9% 우리는 바보의 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책을 통해 내게도 바보의 벽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생각하니까, 기독교를 안다고 생각하니까 못가는 것입니다.우리에게는 바보의 벽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해야 하는데 아는 척을 합니다. 좀더 눈을 넓히고 마음을 넓히고 자신을 인정하는 것도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리더십 그렇다면 2000년간 우리를 지도해온 예수를 통해 어떤 리더십을 볼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이스라엘 나사렛에서 예수살렘까지의 거리, 그것이 지도자의 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일생을 통해 우리에게 참다운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길을 알면 리더십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되려고 하는 지도자의 모델은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지도자였을지라도 베드로와 유다 같은 배신자도 나왔습니다. 가룟 유다, 베드로, 도마도 있고, 그 제자들이나 그 당시 창녀, 바리세인 그 모두를 포함한 것이 지도자입니다. 항상 적이 있고, 배신자가 있고, 비방하고 모함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끌어가는 더 큰 힘이 리더십입니다. 그것을 보여준 것이 예수님이셨습니다.‘예수 예루살렘에 재림하시다’라는 작품에서 보면 지도자는 우리의 어디에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그러한 예수님 같은 지도자는 못되지만 불신자든 기독교인이든 리더자로서 팀을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입니다. 기존의 지도자의 상을 깨고 예수님을 모델로 삼으면 업그레이드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예루살렘에 재림하시다(James Elsor)’는 그림을 통해 리더십의 위치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그림에서 보면 예수님은 그 많은 양떼 사이에 보이지 않게 그 무리 가운데 서 있습니다. 대게는 긴 지팡이를 들고 양떼들 앞에서 양을 치거나, 뒤에서 양떼들을 모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구시대적 리더십이라 할 수 있습니다.양떼는 위로 올라가는 성격이 있습니다.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인도하는 지도자는 백전백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리형 리더십은 실패를 불러온다는 것입니다.이 그림에서 보면 예수님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고 군중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군중 속에 있는 예수님이 미래의 지도자상이라고 봅니다. 문득 보았을 때 옆에 있는 사람처럼 동행하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이 세워놓으신 리더십의 모델입니다./ 정리 임재금 기자 lig14@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