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_ 선교지에서 꽃핀 회복의 드라마
선교지에서 꽃핀 회복의 드라마

최연숙 선교사(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에서 회복사역은 이제 막 핀 꽃입니다. 카자흐스탄 16개 주에 회복사역이 뻗어나가서 정착하고, 앞으로 현지인 사역자가 더 많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카자흐스탄은 소련에 강제로 편입돼 국가명이 지워져 세상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지 못하던 나라였습니다. 카자흐스탄에 처음 복음이 들어간 것은 1991년, 소련 공산권이 붕괴되고 독립했을 때입니다.
회복이 필요한 땅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에 처음 들어간 것은 1997년이었습니다. 그해 3월에 국제예수전도단(YWAM)은 한국인들을 위해 기독교 기초상담학교를 열었습니다. 그 과정 중에 있던 전도여행으로 저는 학생들을 이끌고 그 전엔 알지 못했던 나라인 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갔습니다. 저희는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첫 날 우리가 비자를 얻도록 도와 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우리 손을 덥석 잡고 이 나라에 들어와 도와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현재 2천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이들이 삶에 변화가 없고 계속되는 실패와 문제가 있다. 영혼에 구멍이 난 사람 같다. 어떻게 저들의 마음을 만져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때 아직 학생이고 전문인이 아니었지만 그런 우리에게 작은 교회를 하는 분이건 큰 교회를 하는 분이건 동일하게 동역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소련은 카자흐스탄 민족을 강제로 뿔뿔이 흩었고, 공산주의를 주창하며 지식인과 부자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남성들의 권력이 뭉치지 못하도록 여성 권위를 강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알코올과 마약, 성을 풀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평균 한 가정 안에 두 명이 알코올이나 마약 등 물질중독에 걸려있습니다. 공산정권은 종교를 없애고 대신 사람들에게 선과 백을 나누는 기준으로 양심에 따르라고 제시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좋으면 자고, 애기를 낳으면 버리는데 아무 가책이 없습니다. 부모가 있지만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이 아닌 결손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낙태가 합법화 되어 있습니다. 최고 50번 수술 받은 여성을 상담소에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갖가지 중독과 다양한 역기능 시스템이 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 문제와 어려움들은 그들의 문제에 비하면 작은 상처로 치부될 정도로 굴곡진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생 이야기를 교회 안에서 한다는 것이 카자흐스탄인들에게는 놀라운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성경이 우리들 마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는 한마디만으로도 그들에게는 복음이었습니다. 수많은 종교를 믿었지만 어떤 신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진 않았는데 도대체 어떤 신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지 놀라며 성경을 봅니다.
회복사역의 도전과 보람
우리는 처음에 내적치유의 도구를 가지고 매년 카자흐스탄에 들어가 3개월씩 일했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최소 5개 도시를 다니며 교회 리더들 700명~800명을 대상으로 성경적인 상담에 대해 기초적인 것을 나눴습니다. 내적치유를 하며 우리는 강의하고 나눔을 했을 뿐인데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엄청난 은혜를 부어주시며 역사하셨습니다.그런 일들을 4년 동안 하고 저는 장기선교사로 그 땅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4년간 같이 카자흐스탄에서 회복사역을 했던 4명이 팀을 이뤄 ‘카자흐스탄 말로 된 상담 도구를 주자’, ‘사람을 세우자’는 목표를 가지고 2000년 9월에 그 땅을 들어갔습니다. 선교 사역을 하던 중 전 암에 걸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암 치료를 마치고 다빈 스미스 박사와 캐롤 사모가 한국인을 위한 중독 상담학교 열었을 때 그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첫째 제 자신을 위해, 둘째 카자흐스탄에 심각한 문제인 중독에 대한 열쇠를 얻기 위해 들어갔는데 최고의 답을 얻었습니다. 카자흐스탄 회복사역에 제2의 장이 열린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2003년 초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다려
회복의 새로운 단계로 중독을 다루는 도구를 소개하기 위한 세미나를 열었을 때 동서남북에서 사역자들이 모였습니다. 강의 첫 시간에 자신을 오픈해 본인의 중독과 회복의 이슈를 나누고 라이프 스토리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첫 시간이 끝나자 50명 중 반 정도가 가버렸습니다. 남은 25명 중 절반은 정을 생각해서 남았다고 말했고 반만이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황했습니다. 그 충격적인 상황은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중독을 다루는 도구라면 적극적으로 받아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YWAM이 변질됐다, 십자가 없는 사역을 한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내적치유를 시작했을 때 엄청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봐왔던 것과 다르게 그때부터 저희는 광야의 시간을 걸었습니다. 인정에서 멀어지고 동역하던 파트너가 갈등하며 떠나갔습니다. 그것이 2년간 계속됐습니다. 저는 “복음으로 충분합니다. 복음 안에는 우리 삶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아무 효력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독으로 너무 강하게 묶여 있어 십자가로 가고 싶어도 못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들의 사람 아닙니까? 이 중독을 다루는 회복사역은 성령님께서 가장 역동적으로 일하시는 강력한 도구고 십자가가 선명히 있는 사역입니다”라고 크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침묵하고 인내하며 2년을 보냈습니다. 2년이 지나고 카자흐스탄 선교가 10년 쯤 됐지만 사역자들은 목회를 계속하고 신학교와 단체를 운영할수록 거듭 재발하는 문제를 직면하게 됐습니다. 소명을 주고 사명을 줘도 사람들이 다시 알코올과 성, 마약으로 돌아가는 쳇바퀴에서 우리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때다 하고 준비했던 도구를 갖춰들고 뛰어들었습니다.지금 생각하니 그 2년간 우리는 탕자가 돌아오길 기다리시고, 화가 난 큰 형을 다독이시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봤던 것 같습니다. 현지인들은 중독을 다루는 도구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엄청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역자들이 이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우리가 판단하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제 막 핀 회복의 꽃
우리는 교회와 협력해 교회 안에서 상담지도자로 세우고 있습니다. 신학교와 신학원에서 중독을 정규과정으로 도입하려 하고 있고, 기독교 중독센터가 열렸습니다. 열방대학에 기독교 상담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모든 상담 도구를 카자흐스탄어,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카자흐스탄에서 회복사역은 이제 막 핀 꽃입니다. 카자흐스탄 16개 주에 회복사역이 뻗어나가서 정착하고, 앞으로 현지인 사역자가 더 많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키르키스탄에도 신학교 사역을 연계해 회복사역의 도구가 들어가 섬기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는 유럽으로, 아시아, 러시아, 몽골, 북아프리카로 모슬렘 지역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되는 나라입니다. 이 회복사역이 그렇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기억해주시고 함께 나가길 바랍니다./ 정리 전성희 기자 shee@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