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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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집회 2_ 창조된 사람, 창조하시는 성령

창조된 사람, 창조하시는 성령  >>> 이동원 목사 (지구촌교회) 시편 8편 4~6절 성령은 우리 안에서 만물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거룩한 주권을 회복해주십니다. 그때서야 나는 나를 제대로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도우신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회복의 복음입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8편에 매우 중요한 질문이 나옵니다. 인간 역사 속에서 나왔던 수많은 질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다면 “도대체 사람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인간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사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시편 8편 4절에 ‘사람이 무엇이기에’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성경의 기자가 스스로 묻고 하나님의 대답을 듣습니다. 성령의 영감에 의해서 그 대답을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인간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가장 정확한 대답을 주실 분이 있다면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그 분만이 정확한 대답을 주실 것입니다. 인간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시편 8편을 통해 대답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으로 지음 받은 존재 첫째로, 인간은 하나님의 깊은 생각과 깊은 사랑 속에서 지어진 존재입니다. 그것을 시편 기자는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보겠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들을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4절)개역개정판 성경에 ‘사람’, ‘인자’ 이 두 가지의 다른 단어가 나옵니다. 원문에도 다르게 나와 있습니다. 처음에 나온 ‘사람’은 히브리어로는 ‘에노쉬’라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에노쉬는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아주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인자’도 사람을 나타내는 단어인데 히브리어로 ‘벤 아담’이라는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벤’이라는 말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흙을 의미합니다. 즉 ‘벤 아담’은 ‘흙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시편 기자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쉽게 깨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 혹은 한계성만을 강조하려고 인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쉽게 깨지고, 쉽게 상처받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깊은 생각을 하셔서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생각 속에서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에서 ‘돌봄’은 하나님의 깊은 애정을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깊은 사고와 깊은 사랑 속에서 지어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고 아프고 지친 인생을 살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깊은 생각과 계획, 사랑 속에서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지금도 하나님의 본래의 사랑을 우리 안에 확증해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본래 지으신 모습대로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도록 지어진 존재 둘째, 인간은 하나님을 닮도록 지어진 존재입니다.“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5절)여러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했다’는 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다는 것은 정말 굉장합니다. 또한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영화와 존귀, 이 두 개의 단어는 본래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낼 때 성경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인간이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고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가장 많이 쓰신 단어가 ‘그 종류대로’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인간만은 ‘하나님 같이’ 만드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 창조의 독특성입니다. 인간만이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물론 인간이 타락했을 때 우리 안에 있는 죄는 인간의 영광과 존귀를 어느 정도 허물어뜨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순간, 그리고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일어나는 가장 놀라운 사건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입니다. 이것을 기독교 교리에서 성화의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주권을 회복시켜주시는 ‘성령’  셋째, 인간은 만물의 청지기로서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6절) 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은 인간을 다 지어놓고 나서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십니다. 다스림의 주권을 위임받은 우리는 청지기라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옛날 개념인데 요즘 개념으로 말하면 매니저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맡아서 관리하는 자들입니다. 만물과 자연, 사회, 역사, 가정, 교회를 잘 다스리도록 위임을 받은 것입니다. 가장 좁은 의미에서 말하자면 내 자신을 잘 다스리면서 한평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내 자신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죄 문제 때문입니다. 죄는 인간의 청지기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방해요인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의 보혈만이 인간의 죄 문제에 대한 유일한 대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지금도 오셔서 우리의 이 죄를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밖에 없었던 그 죄로 인해서 우리를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정죄를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 그 분을 구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 순간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때부터 성령과 나 사이에 동행이 시작됩니다. 그 때부터 성령은 우리 안에서 만물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거룩한 만물의 주권을 회복해주십니다. 그때서야 나는 나를 제대로 다스리기 시작합니다. 가정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 자리에 서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도우신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회복의 복음입니다. 성령의 통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생을 회복시켜 주시는 그 놀라움과 영광스러움을 내 삶 속에서 목격하고 계십니까. 내 인생을 제대로 다스리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면서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도록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삶의 길이가 바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주권 앞에서 순종하고 날마다 그의 뜻을 이루어가는 생애인 것입니다. 예수님이니까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가능했지만 사람에게도 가능할까요.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그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딤후 4:7~8) 우리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 아니겠습니까. / 정리 박영주 기자 pyjoo@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