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을 즐기라
빌 4:4~6
<프랜시스 챈 목사>
“최고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당한 사실을 믿고 기뻐하십시오.하나님이 영원히 내 편이라는 사실을 기뻐하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빌 4:4).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명령은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을 전달할 때 쓰이는데 하나님은 기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저는 이 명령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 명령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이모는 저를 볼 때 마다 행복하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슬퍼 보이는 물고기 얼굴을 보며 저의 모습을 비유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저는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저와 반대로 어떤 사람은 항상 즐거워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큰 기쁨을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십시오. 주께서 가까이 계십니다”(빌 4:5).
여러분, 관용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에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관용을 베푸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 마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늘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이 주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웃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항상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강조하면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평생 근심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평생 근심하지 않고 살았을 때 인생의 끝에는 얼마나 큰 행복이 자리잡고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심 없이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능하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면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서 계속 염려한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음직한 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의문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확신이 생기기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문제와 근심거리를 자신에게 의탁하고 우리는 근심 걱정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명령에 순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날 때마다 저는 아주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말씀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저의 성장 과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기 위해 무척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아버지가 날 사랑하셨다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저를 뒷마당 나무에 매달아 놓고 굵은 나뭇가지로 때리셨습니다. 저는 너무 고통스러워 절규하며 아버지께 그만 때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저를 풀어주지 않고 저를 나무에 매달아 둔채로 가버리셨습니다. 한두 시간 뒤에 형이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제가 열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정말 슬펐지만 마음 한편에는 기쁜 마음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죄책감이 듭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
여러분, 성경에 등장하는 탕자의 비유를 아시지요.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을 모두 탕진하고 돼지우리에 갇혀 버리는 이야기입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를 실망시킨 잘못을 했지만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서 하인이 되겠다고 하면 아버지가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태도가 이 아들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탕자의 아버지처럼 우리에게 오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만 용서하고 사랑을 베푸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육적인 아버지와는 다릅니다.
“여러분이 아들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속에 보내셔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아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상속자입니다”(갈 4:6~7).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믿고 받아들여야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저는 돌아온 탕자를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안아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육신의 아버지는 다릅니다. 한때 제가 육적인 아버지와 하나님이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것은 사건입니다. 저는 그 사건을 제 자녀가 태어났을 때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들과 마찰이 생길 때마다 저는 어떤 평화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그분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계십니까. 또한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스스로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주 안에서 기뻐하라
만약 여러분의 자녀를 누군가가 끌고 가서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여라!”고 외친다면 아버지로서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절대로 참지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인내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일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어 주신 분께서 어떻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롬 8:31~32)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백부장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떠났다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을까요.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은 장본인으로서 두려움과 공포 떨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보면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을 즐기십시오.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과 은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리고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했다는 사실을 믿고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은 영원히 내 편이라는 사실을 기뻐하십시오.

/ 정리 황치연 수습기자 hcy@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