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소나타 특별새벽부흥집회ㅣ7월 11일-하나님 임재의 축복
본문: 시편 11:1~7신앙생활은 고통의 현장, 위기의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깊을수록, 불가능이 많을 수록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신앙생활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지 못한 시험, 위기, 고통이 뒤따릅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소리가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만져지지 않는 그런 영적 어두움도 경험합니다. 동시에 만져지고 들리고 보이고 새로워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시편 기자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높은 영적인 산에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에 대한 환상을 갖습니다. 그러다가도 그들은 한순간에 쓰레기통에라도 들어가는 것 같은, 광야에 던져지는 것 같은, 모든 것을 다 빼앗기는 것 같은 영적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런 탄식의 소리를 많이 합니다. “하나님, 어느 때까지 이십니까. 하나님은 주무십니까.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절망 끝에서 찾아오시는 주님 이런 기도를 하다가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성령의 생각을 집어넣어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생깁니다. 갑자기 내 안에 환상과 믿음이 생기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어깨에 날개를 붙여 주십니다. 그러고는 비상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영적 경험이 바로 시편의 경험입니다. 저는 이런 영적 사실이 일본 땅에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일본 땅은 정말 황무지입니다. 영적 광야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노력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데 날이 갈수록 일본 교회는 작아지고 있습니다. 목사님들도 지쳤습니다. 사모님들은 더 지쳤고, 크리스천들은 기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할 생각을 안 합니다. 일본은 목사님들이 지쳐 떠난 무목교회가 700여 개나 됩니다. 목사님을 다시 모실 수가 없어서 교인들끼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한국에 있어야 할 부흥은 거품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숫자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이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우리에겐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부흥이 이미 한 번 지나갔습니다. 1907년부터 시작해서 70, 80년대를 지나면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오실 때 백만 명이 모였고, 엑스포 74가 있었고, 교회마다 양적 부흥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적인 부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내면적 부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어떻습니까. 이들도 부흥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진을 경험해야 합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을 민족적으로 경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5천명의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가서 뭘 하겠습니까. 가서 기도해야합니다. 엎드려 기도합시다. 서 있기만 해도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시편 11편 1~3절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의뢰하는데 어째서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처럼 산으로 피하여라’ 하고 말하느냐? 보라. 악인들이 화살을 활에 대어 당기고 마음이 바른 사람을 남몰래 쏘려 하고 있구나. 기초가 무너지고 있는데 의인들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네가 기도한다고 하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지 않느냐’하는 이런 영적 비난과 조소들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밖에서도 겪고 내면적으로도 겪습니다. 신앙생활은 이런 고통의 현장, 위기의 끝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영적 경험은 값싼 게 아닙니다. 고통과 아픔과 피와 눈물이 쏟아지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에 하나님은 정말 귀합니다. 누구도 막을 수가 없고, 부정할 수가 없고,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거룩한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옥좌는 하늘에 있으니 그분이 눈을 열어 사람들을 지켜보신다.”하나님 만나는 체험 필요엎드려 캄캄한 데서 절망이 나를 뒤덮고 있을 때 가만히 눈을 떠보니까 하나님이 보이는 겁니다. 옥좌가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느껴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 민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일본에서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실존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낭만도 아니고 꿈도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아프다는 현실. 배고프다는 현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 그런 현실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나 그 현실의 한복판에 주님이 오십니다. 성령이 임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쉬지 않고 계속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어떤 영적 체험과 기적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영적 기적과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오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힘을 주십니다.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너를 간섭하고 있다는 사인입니다. 여러분, 기적은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저를 격려하시는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제가 오랫동안 전도했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 만나고 있으면 붕붕 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소경이 눈을 뜨는 것 같은 사건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지만 이렇게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사건은 정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들입니다. 더 신통한 것은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면 다 이긴 것여러분, 이런 영적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살아난 것입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쿠데타를 당해서 궁궐에서 쫓겨나 산 속으로, 들로, 다른 나라로 피신합니다. 안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다윗은 하나님을 만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내 방패시며 내 영광이시며 내 머리를 드시는 분이니”(시 3:3)라고 선포할 때 그 선포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오늘 여러분이 믿음으로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도전입니다. 오늘 그런 선포와 도전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안 될수록, 어려울수록 정반대로, 거꾸로 하십시오. 그 고통의 현실에 순종하지 마시고, 그런 곳에 여러분의 이성과 상식을 빼앗기지 말고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여러분의 고난이 깊을수록, 어려움이 생길수록, 불가능이 많을수록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의 천국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한 번 기적이 안 일어났다고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은 곧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래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저는 온누리교회를 보면 힘이 납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지나오면서 주일 날 많은 교인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저는 주일 날 예배당에 올라오는 성도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천국의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아시아가 변하고 세상이 변할 것 같은 믿음이 생깁니다. 온누리교회가 이렇게 변했다면 분명이 세상은 변할 것입니다. 11편 4절로 돌아오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거룩한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옥좌는 하늘에 있으니 그분이 눈을 열어 사람들을 지켜보신다”하나님께서 보시면 다 이긴 것입니다. 5~6절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의인들을 시험하시고 악한 사람들과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신다”. 하나님은 의인들을 테스트하고 악인들을 미워합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임하면 마귀의 운명도 보게 됩니다. 악한 사람들의 종말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들이 아무리 거품을 물고 뛰어 들어도 겁나지 않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의로우신 여호와께서는 의를 사랑하시니 정직한 사람은 그분의 얼굴을 보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실제에서 이런 하나님의 임재를 보는 간증이 있는, 은사가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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