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드 스미스 목사 주제강의3 | 2008 회복축제
비상의 디딤돌
예수님은 공동체로서의 삶과 개별적인 삶을 동시에 사셨습니다. 그것이 자기분화입니다. 이런 자기분화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어느새 커다란 보아뱀이 와서 여러분의 삶을 삼켜버릴지 모릅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회복이 시작됩니다. 먼저 제가 원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모든 가능한 장소에서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 소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와 동시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 제게 찾아와서 소통하는 일을 하지 않기만 한다면 3년 안에 수십억 원을 벌 수 있게 해 준다고 해도 저는 거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원하는 것과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가로막는 어떤 장애물이 있다면 저는 그것을 제거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원하는 것을 항상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저는 제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아야 내가 원하는 것은 나의 깊은 곳에서 나옵니다. 깊은 영적인 자리로 내려가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갈고 닦아서 여러분의 목표로 삼기 바랍니다. 많은 경우 원하는 목표가 분명함에도 궤도에서 벗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들 중에 특별히 여러분의 관심을 끄는 은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저 먼 곳에 있는 신비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이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인 ‘오픈 핸드’(펼친 손)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움켜진 손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 뜻을 알려줍니다. 사람들은 움켜쥐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불안과 근심에 꽁꽁 묶여 삽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 시작하면 부요해집니다. 제 친구 중에는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보면 자녀나 배우자의 근황을 얘기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건 자녀나 아내가 어떻게 지내는 것이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바람빠진 풍선처럼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자녀와 아내가 그 사람을 진공청소기처럼 집어 삼킨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회복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동반의존의 모습입니다. 내가 사라지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자신을 찾아야 하며 자기의 목소리를 내야만 합니다. 회복은 내가 분리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나 자신에 대해 백 퍼센트 책임을 지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내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절에서 각자 자신에게 책임을 지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공동체 안에 있으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성장에 목사님이 몇 퍼센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부모는 몇 퍼센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0퍼센트입니다. 대신 여러분의 미래에 대한 여러분의 책임은 100 퍼센트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온전케 되는 것은 각자 자신의 책임을 지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내 생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서 비난하는 것을 중단하십시오. 내 선생님, 부모님, 내 어린 시절에 책임을 돌리는 것을 중단하십시오. 내가 희생자라는 생각을 떨쳐내시길 바랍니다. 건강한 경계선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기 시작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아분화의 첫 단계입니다. 자신에 대해 책임지기 온누리교회 출신으로 인디애나폴리스에 상담 인턴으로 온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날 그 자매님이 종이 한 장을 내밀더니 그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녀는 누군가 자기에게 말해주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내담자를 만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해야 하는 등 이미 일반적인 지침은 다 파악한 상태였는데도 그 자매는 그 전까진 상사가 다 지시를 해줬다면서 막무가내였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뒤 그분은 자신의 인생을 추동하는 힘은 라드 목사가 아니라 자신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제 뒤에 숨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때 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당신도 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 이름도 못 들어봤으나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우리는 선택에 의해 이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상호의존입니다. 그런데 전혀 선택의 여지없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은 동반의존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또 내가 무엇이 아닌지를 알게 되면서 상대방과의 관계 속으로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건강하지 못한 경계선의 한 증거는 누군가에게 친해지자마자 모든 것을 다 털어놓는 경우입니다. 관계는 5센티미터 깊이인데 10센티미터 깊이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입니다. 건강치 못한 경계선 때문입니다. 벼락같이 사랑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이 내 생각을 완전히 지배하거나, 내 삶의 중심이 다른 사람에게로 더 치우쳐 있는 경우입니다. 건강한 경계선을 세우신 예수님 예수님은 정말 건강한 경계선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경계선에 대해 한 번도 혼란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신약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끊임없이 밝히십니다. 예수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예수님이 가야하는 길을 막았을 때 예수님은 “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건강한 정서적 자아라는 관점에서 성경을 보십시오. 어떤 때는 베드로가 바울보다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냥 사람들에게 굴복하려고 했을 때 바울이 안 된다고 얘기합니다. 바울은 환영하지 않는 메시지를 가지고 공동체 전체와 얼마나 많이 맞섰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하고는 결국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분명하게 자기정의를 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자기분화란 친밀해질 수 있는 능력과 분리될 수 있는 능력이 동시에 발휘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해 한적한 곳에 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돌아오셨습니다. 세 명을 데리고 기도하러 가셨다가도 무리에게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공동체로서의 삶과 개별적인 삶을 동시에 사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동일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결혼을 하셨거나 자녀가 있더라도 홀로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분화입니다. 이런 자기분화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어느새 커다란 보아뱀이 와서 여러분의 삶을 삼켜버릴지 모릅니다. 예수님께는 지속적인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함께 있음과 분리의 긴장감이었습니다. 이런 자기분화의 모습이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있어야 합니다. 이 경계선을 연습하십시오. 여러분의 건강하지 못한 경계선으로 지금까지 이득을 본 사람은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니 목소리를 부드럽고 신사답게 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경계선을 긋는 연습을 하시길 바랍니다. /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예수님은 공동체로서의 삶과 개별적인 삶을 동시에 사셨습니다. 그것이 자기분화입니다. 이런 자기분화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어느새 커다란 보아뱀이 와서 여러분의 삶을 삼켜버릴지 모릅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회복이 시작됩니다. 먼저 제가 원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모든 가능한 장소에서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 소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와 동시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 제게 찾아와서 소통하는 일을 하지 않기만 한다면 3년 안에 수십억 원을 벌 수 있게 해 준다고 해도 저는 거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원하는 것과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가로막는 어떤 장애물이 있다면 저는 그것을 제거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원하는 것을 항상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저는 제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아야 내가 원하는 것은 나의 깊은 곳에서 나옵니다. 깊은 영적인 자리로 내려가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갈고 닦아서 여러분의 목표로 삼기 바랍니다. 많은 경우 원하는 목표가 분명함에도 궤도에서 벗어납니다. 그럴 때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들 중에 특별히 여러분의 관심을 끄는 은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저 먼 곳에 있는 신비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이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제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인 ‘오픈 핸드’(펼친 손)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움켜진 손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 뜻을 알려줍니다. 사람들은 움켜쥐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불안과 근심에 꽁꽁 묶여 삽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 시작하면 부요해집니다. 제 친구 중에는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보면 자녀나 배우자의 근황을 얘기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건 자녀나 아내가 어떻게 지내는 것이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바람빠진 풍선처럼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자녀와 아내가 그 사람을 진공청소기처럼 집어 삼킨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회복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동반의존의 모습입니다. 내가 사라지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자신을 찾아야 하며 자기의 목소리를 내야만 합니다. 회복은 내가 분리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나 자신에 대해 백 퍼센트 책임을 지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내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절에서 각자 자신에게 책임을 지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공동체 안에 있으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성장에 목사님이 몇 퍼센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부모는 몇 퍼센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0퍼센트입니다. 대신 여러분의 미래에 대한 여러분의 책임은 100 퍼센트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온전케 되는 것은 각자 자신의 책임을 지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내 생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서 비난하는 것을 중단하십시오. 내 선생님, 부모님, 내 어린 시절에 책임을 돌리는 것을 중단하십시오. 내가 희생자라는 생각을 떨쳐내시길 바랍니다. 건강한 경계선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기 시작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아분화의 첫 단계입니다. 자신에 대해 책임지기 온누리교회 출신으로 인디애나폴리스에 상담 인턴으로 온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날 그 자매님이 종이 한 장을 내밀더니 그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녀는 누군가 자기에게 말해주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내담자를 만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해야 하는 등 이미 일반적인 지침은 다 파악한 상태였는데도 그 자매는 그 전까진 상사가 다 지시를 해줬다면서 막무가내였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뒤 그분은 자신의 인생을 추동하는 힘은 라드 목사가 아니라 자신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제 뒤에 숨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때 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당신도 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 이름도 못 들어봤으나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우리는 선택에 의해 이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상호의존입니다. 그런데 전혀 선택의 여지없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은 동반의존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또 내가 무엇이 아닌지를 알게 되면서 상대방과의 관계 속으로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건강하지 못한 경계선의 한 증거는 누군가에게 친해지자마자 모든 것을 다 털어놓는 경우입니다. 관계는 5센티미터 깊이인데 10센티미터 깊이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입니다. 건강치 못한 경계선 때문입니다. 벼락같이 사랑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이 내 생각을 완전히 지배하거나, 내 삶의 중심이 다른 사람에게로 더 치우쳐 있는 경우입니다. 건강한 경계선을 세우신 예수님 예수님은 정말 건강한 경계선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경계선에 대해 한 번도 혼란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신약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끊임없이 밝히십니다. 예수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예수님이 가야하는 길을 막았을 때 예수님은 “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건강한 정서적 자아라는 관점에서 성경을 보십시오. 어떤 때는 베드로가 바울보다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냥 사람들에게 굴복하려고 했을 때 바울이 안 된다고 얘기합니다. 바울은 환영하지 않는 메시지를 가지고 공동체 전체와 얼마나 많이 맞섰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하고는 결국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분명하게 자기정의를 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자기분화란 친밀해질 수 있는 능력과 분리될 수 있는 능력이 동시에 발휘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해 한적한 곳에 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돌아오셨습니다. 세 명을 데리고 기도하러 가셨다가도 무리에게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공동체로서의 삶과 개별적인 삶을 동시에 사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동일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결혼을 하셨거나 자녀가 있더라도 홀로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분화입니다. 이런 자기분화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어느새 커다란 보아뱀이 와서 여러분의 삶을 삼켜버릴지 모릅니다. 예수님께는 지속적인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함께 있음과 분리의 긴장감이었습니다. 이런 자기분화의 모습이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있어야 합니다. 이 경계선을 연습하십시오. 여러분의 건강하지 못한 경계선으로 지금까지 이득을 본 사람은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니 목소리를 부드럽고 신사답게 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경계선을 긋는 연습을 하시길 바랍니다. /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