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5 송구영신 40일 새벽기도회_12월24일>시편 2편 1~12, 박종길 목사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있다. 믿음을 갖았기 때문에,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어려움과 고난, 박해를 받을 때도 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빼앗겨야 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세상에는 마치 하나님을 부인하기도 하며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기도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손짓과 사랑의 손을 내밀지만 세상은 그 손을 거부하고 끊임없는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세상을 향하여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끊임없는 사랑의 손길, 마음을 나누고 계신다. 그것이 어쩌면 예수그리스도의 성탄이라는 아주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오늘 시편 2편 말씀은 왕이 등극하는 모습이 나온다. 왕에 대한 이이갸기가 나와서 제왕시라고 말하기도 하고, 왕이 등극하는 등극시라고도 말한다. 시편 2편은 시의 운율을 따라서 3행 4연의 구절을 가지고 있다. 모두 12절이 3절씩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앞부분에 첫 3절은 우리들에게 1. 세상은 하나님을 거부한다 는 것을 보여준다.
1절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절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절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이방 나라들이 세상의 군항들이 나서서 관원들이 나서서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자”라고 이야기한다.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메시아, 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 열왕과 민족들, 세상에 관리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키고자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결박과 사슬로부터 벗어나고자 모의하고 있다. 어쩌면 이 시편기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세상의 많은 왕들과 관리들, 세상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싫은 것이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고자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싶은 것이다. 원래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을 때는 사람과 하나님은 하나였다. 하나님을 사람을 만들 때 만물과 자연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 하나님의 이미지가 사람 안에 있다. 사람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람을 만들었지만 죄는 결코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피하고자 하고 하나님을 거부하고자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랑을 나타내주기 위해서 그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것이 성탄이다. 그런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축복하고 기뻐하는 것이 성탄절이다. 우리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는데, 너무나 즐거운 기쁜 날이다. 크리스마스라는 것, 마스라는 것이 예배드린다는 것인데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성탄절의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게 세상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피해간다. 성탄절에 들려지고 보여 지는 영화들을 보면 아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자기 독생자를 주기까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성탄절의 주인공이 산타인 것 같다. 산타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성탄절은 백화점이 대목을 잡아서 파는 날인 것 같다. 성탄절의 주고받는 카드가 있다. 아기 예수님에 대한 것은 많지 않고, 성탄절 나누는 카드는 악마의 카드도 있었다. (펼쳐보면 귀신같은 것이 혀를 쭉 내밀고 소리를 내는 것이 있었다)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그리스도는 사라져버리고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우리에게 오시는 메시아를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기뻐합니다, 환영합니다, 메리크리스마스라는 말 대신에 미국에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Happy Holiday라고 한다. 노는 날, 쉬는 날, 공휴일 같이 즐거운 날, 그 정도로만 되어있다. 어찌 보면 세상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피하고, 그것이 바벨탑을 쌓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이 시편 기자가 이 세상이 어떤 것인지, 이 세상의 왕들이, 지도자들이, 관리들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하나님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피할 뿐 아니라 배척할 뿐 아니라, 심지어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박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 하나님은 웃으신다.
4절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절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절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놀라운 것은 시편 기자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어떠신가, 이 세상이 모략을 꾸미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거부하고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할까 하는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웃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오만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적들을 향해 하나님은 웃으신다는 것은 한 마디로 가소롭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비웃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 믿는 자를 핍박, 박해하고 마치 자기들이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바벨탑을 쌓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웃으신다는 것이다. 그 웃음, 미소는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이 얼마나 그들이 가소로운지, 이 세상이 가소로운지 직접 나서지도 않으시고 하나님이 왕을 세우겠다고 하셨다. “나의 왕을 내가 세우리라” 하나님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거부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이기는 것처럼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그들은 가소로운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웃으시며 한 왕을 세우겠다 시온에서 등극시키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 왕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고백하는 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시는 것이고, 진짜가 오면 가짜가 물러나는 것처럼 진짜 왕이 등극하면 가짜 왕들이 패하는 것처럼, 빛이 드러나면 어둠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것처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그리스도, 메시아, 이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어린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빠가 최고인줄 안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지만, 아빠가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다 할줄 아는 아빠를 믿고 있는데, 아빠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편안함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웃으시고 계시는 것이다. “염려하지 마라” 저와 여러분에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서 어려움을 겪고 의인이 핍박을 받고, 무고히 고통을 받고, 죄가 득세해서 승리하는 것 같고, 하나님은 무시당하여서 쓰러지는 것 같지만 교회는 그 힘을 잃어가는 것 같고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손가락질 하며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소리치는 것 같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니 하나님이 웃으시고 계시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한 왕을 세우는데 아기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을 다스릴, 메시아 그리스도를 왕으로 세우는데 하나님 이 땅에 어둠을 물리치시고 빛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하시고, 하나님은 그 왕을 통해서 이 세상을 심판하고 계신다는 말씀 하시고 그 왕을 통해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신다고 말하고 그 왕을 통해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왕을 통해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당신의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상처와 고통과 질병에서 회복시켜주시고, 하나님은 그 왕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신다는 것이다. 그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 가운데 오셔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수고하고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아기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 가운데 오셨을 때 주신 이름은 무엇인가, ‘임마누엘’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아기 왕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시켜주셨을 뿐 아니라, 그 분이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말씀해주고 계신다.
3. 너는 내 아들이라.
7절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절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절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 그 왕을 이 땅 가운데 시온에 세우시면서 왕에게 명령하신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향해 이야기하신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한다. 낳았다는 것은 탄생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부활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도바울이 안디옥 설교에서 이 말씀을 인용한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 행 13:33)
이 말씀을 보면서 놀라운 사실은 시편 2편은 사도바울도 읽었다. 시편 2편에 기록한바와 같이 사도바울은 이 말씀을 외운 것이다. 내가 읽는 이 본문을 사도바울도 알고, 읽고, 외웠고, 인용했구나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죄 값을 치루기 위해 무덤가운데 들어가셨지만 하나님께서 그 예수를 일으키사 약속을 이루셨는데, 너는 내 아들이 내가 너를 낳았다고 한다. 낳았다는 것은 새로 태어났다는 의미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킨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아이들이 태어나면 다(부모와 가족들 모두) 좋아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기뻐한다. 그 아이에 대해 꿈을 갖는다. 어떤 아이가 될까,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줄까에 대한 생명의 탄생을 너무나 좋아한다. 아이는 우리의 희망이니까 우리는 너무나 기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태어남과 함께 죽음이라는 것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태어난 탄생이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희망, 꿈을 갖고 즐거워한다. 그런데 죽기 위해 태어난 생명이 있다. 운명 지어진 것이다. 그것을 구약 성경에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비참한 죽음, 고통스러운 죽음이다. 사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죽음을 성경은 이야기한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생명이 태어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은 왜 태어나셨는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태어나셨다. 십자가의 죽음을 위해 태어나셨다. 어떤 점에서보면 예수님의 탄생이 기쁘기도 하지만, 슬프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예수님의 탄생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태어난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의 자녀들이 태어난 것과는 조금 다른 어려움이다. 그렇지만 성탄을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축하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비록 십자가를 지기 위해 태어난 인생이고, 이 땅 가운데 낮아짐으로 오신 것이지만 골고다가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 결론인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망의 권세를 깨트린 부활의 역사에 있다. 십자가의 처참한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고, 우리의 죽음을 통해 죄를 대속하시고 삼일 만에 그 분을 일으켜 세우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죄의 권세, 죽음, 심판의 권세를 깨트려 우리에게 영생의 문을 여시는 천국의 문을,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이 결론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결론을 알기 때문에 더욱 기뻐하고 탄생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위한 탄생에서 슬프고, 힘들지만 그러나 그 결론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최후 승리를 얻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고 구언의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낳았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분명히 선언하시는 것이다. 사망의 권세가 심판의 권세가 죄의 권세가 결코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동일하게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 고통 받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렵고, 낙심되어 쓰러질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는 내 아들이라” (요즘은 여자들이 많아서 하나님이 아들만 이야기해서, 서운해 하실 수도 있지만 그런건 아니죠. 남자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딸이 됩니까, 우리가 어떻게 자녀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을까요. 놀라운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들이 되고 딸이 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요1:12)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인 것이다.
하나님은 너는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사망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살 것이다. 내가 너를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놀라운 것이다. 성탄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가운데 오신 사건은 기쁨의 함성이 기쁨의 감격이 기쁨의 이유가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가운데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인간이 가진 마지막 최대의 한계가 사망이고, 죽음 아니겠습니까, 죽음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내 모든 것을 끊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너를 낳았다는 것은 사망을 깨트리시고 이기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흘 만에 무덤에 머물게 하지 않으시고 사망 가운데 두지 않으시고 아기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일으켜세우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을 일으켜세워 주실 것이다.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뿐 아니라 우리를 자녀 삼아주실 것이다. 그 분이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딸이라 사망의 권세가 음부의 권세가 너를 결코 해치 못하리라고 말씀해주는 것이다.
4.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
10절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절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절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 그래서 다시 이야기한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 왕들을 향해서 관리들을 향해 이야기한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을 섬기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고 이야기한다. 입 맞춘다는 것은 그 분에게 복종하고 경배하는 상징의 표현이다. 아기 예수 그리스도께 하나님의 아들에게 복종하고 경배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아들에게 복종하고 경배하는자는 복을 받지만, 그의 아들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배척하는 자는 멸망한다고 이야기해준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을 받을 것이다. 여기 보면 하나님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말한다. 여호와께 피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치고 낙심되고, 힘듭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시기를 축원한다.
여러분이 두렵고, 무섭고, 염려가 여러분을 지배하는가. 하나님께 피하시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시편 2편의 마지막 결론은 우리에게 두 갈래 길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주의 자녀로 삼아지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섬기기를 거부하는가다. 시편 1편의 결론처럼 시편 2편도 우리에게 두 갈래 길을 이야기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 시편 1:6.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 하나님께 피하는 자,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는 하나님 그 사람을 인정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배척하는 자, 악인의 길은 망한다고 나와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쳐서 일어날 힘이 없고 우리 자신도 믿을 수 없어서 우리 자신을 홀로 연약해서 나도 나에게 실망하여 더 이상 의욕조차 없습니까, 질병 때문에 고통하고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재정 때문에 힘들어하십니까, 자녀 때문에 피눈물을 쏟고 계십니까, 자신의 영생의 문제에 대해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오늘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이야기하신다. 그 분은 웃으신다. 이 세상이 아무리 하나님을 거부하고, 바벨탑을 높이 쌓아도 하나님을 부인하지만 너무나 가소롭기 때문에 웃으신다. 도리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세워주셨다. 저와 여러분을 구원의 자리로, 어둠에서 빛 된 자리로, 사망에서 생명의 자리로 인도해주시며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며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 때문에, 어려움 때문에 고통 속에 눈물을 흘리게 되어 질 때, 질병과 재정과 자녀와 미래의 문제로 신음하게 되어 질 때 친히 못자국난 그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는 주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축원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그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축원한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