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우리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남양주 온누리교회와 양지 온누리교회 담당목사가 바뀌었다. 남양주는 안광국 목사, 양지는 도육환 목사가 담당목사로 세워졌다. 안 목사와 도 목사를 만나 예수 만난 이야기부터 앞으로의 비전과 포부에 대해 들었다.

 

<남양주 온누리교회>

쉼이 되어 주는 교회 꿈꾼다 ‘안광국 목사’

안광국 목사 3

“아버지가 목사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방황을 했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건 대학교 1학년 때에요. 당시 제가 폐결핵을 앓았거든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IVF’수련회에서였구요.
아버지 권유로 신학을 공부했어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북경으로 1년 동안 단기사역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박종길 목사님(당시 선교사)을 만났어요. 2002년 박 목사님의 권유로 온누리교회에 오게 되었어요.
온누리교회에서 정말 다양한 사역을 했어요. 두란노 문서사역, 방송사역, 성인 공동체, 청년부, 선교사, 해외 비전교회에서 섬겼거든요. 1기 목회사관학교 기획하고, 부흥축제(OMC) 총무도 여러 번 했어요. 이제는 남양주 온누리교회 담당목사로 섬기게 되었고요. 파란만장하지요? 정말 많은 사역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라요.”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들

 

국내외를 다니면서 사역하다 보니 가족들에게 미안한 점이 참 많아요. 특히 큰 아이에게 정말 미안해요. 초등학교를 다닌 6년 동안 학교를 여덟 군데나 옮겼거든요. 군말 없이 잘 따라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지요.
자주 이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짐이 줄어들더라고요. 그것은 은혜지요?(웃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목 생활했던 것처럼 언제든지 하나님이 보내는 곳에 갈 수 있도록 훈련이 되었어요.
아내와 2000년에 결혼했습니다. 큰 시련도 있었어요. 둘째 아이를 유산한 아픔이 있어요. 그때 정말 큰 고통을 느꼈어요. 시험에 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때 하나님께서 욥기 3장 말씀을 주시면서 저희 부부를 위로하셨어요. 비록 태어나지 못했지만 그 아이가 천국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니 순식간에 회복이 되었어요. 2004년과 2007년에 둘째와 셋째를 입양했고, 올해 초에 넷째도 입양했어요. 아이가 넷이다 보니 정신없고 힘들지만 정말 행복하고 감사해요. 특히 입양한 세 아이들이 큰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해요.

 

무엇을 하든, 어느 곳에 있든지

 

남양주 지역이 굉장히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외국인 근로자도 많다는 것도요. 그들을 비롯한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잘 섬기고 싶어요. 차세대도 잘 양육하고 싶고요. 한 마디로 지친 일상에서 쉼을 얻을 수 있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사역하고, 또 아이 넷을 키우면서 내가 세운 계획들은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세운 계획을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생각하고 행하지 않았는지 반성도 하게 됐고요. 사막의 성자 샤를 드 푸코가 “주님,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제 삶 가운데에서 행하십시오”라고 했어요. 내가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것보다 주님이 원하는 것을 제 삶 가운데에서 행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어요. 무엇을 하든, 어느 곳에 있든지 말씀대로 살면 후회가 없을테니까요.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머물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저와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졍현주 기자 joo@onnuri.org

 

 

<양지 온누리교회>
그래서 행복한 교회 만드는 ‘도육환 목사’

도육환 목사 2

“부모님은 불교신자셨어요. 점도 보고, 정월대보름에는 달을 보고 절을 하는 집이었지요. 어느 날 어머니가 편찮으셨는데 기도를 받고 치유되셨어요. 기적을 경험했지요. 그 사건 이후 온 식구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어요.
주변에서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이 우리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열심이었어요. 가족들의 신앙이 매우 뜨거웠거든요. 군대 가있는 형, 대학교 다니던 둘째 형, 대구에 있던 제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저희 집안이 복음화 되었어요.
저는 재수생 시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삶의 터닝 포인트였지요. 세속적인 생각을 하던 사람이 진리를 만난 것 자체가 감격이었어요. 정말 미치도록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교회에 있는 것이 행복했고, 주님을 섬기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어요.
군에 입대하기 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어요. 그때 목회자로 서원했어요. 그런데 군대를 다녀온 후에 자신이 없어졌어요. 소명도 받고, 서원도 했는데 말이죠. 아마도 제 안에 있는 열등감과 목회자로 산다는 것이 두려웠나봐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절하고 다른 일을 찾고 있는데 하나님이 다시 부르셨어요.
하나님께서 “나의 종으로 오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안됩니다. 못합니다”고 했어요. 그렇게 하나님과 실랑이했어요. 제가 순종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기도의 문을 닫아버리셨어요. 기도가 허공에 떠돌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한두 달 후에 제 풀에 지쳐 순종했어요. 선교사로 부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내 영의 모든 창문을 닫아버리셨어요. 기도도, 은혜도 누리지 못하게 하셨지요. 그렇게 항복하도록 만드셨어요(웃음).

온누리교회와 23년 째 연애 중

 

1989년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신대원 졸업을 앞두고 온누리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어요. 91년도부터 사역을 했으니까 올해로 만 23년 됐네요. 4년을 온누리교회에서 사역하고, 96년 스리랑카 선교사로 파송 받았어요. 그리고 2002년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다 하용조 목사님의 부름을 받고 로스앤젤레스 온누리교회를 개척했어요. 예전에는 ‘윌셔 온누리교회’라고 불렀는데 그곳에서 6년 동안 사역했어요.
스리랑카에서 7년, 미국에서 6년 동안 사역하고 13년 만에 국내로 돌아와 2009년 2월부터 온누리교회 선교본부장을 섬겼어요. 이제는 양지 온누리교회와 두란노해외선교회(TIM)를 섬기게 되었어요.
양지 성도들이 온누리교회 초창기에 누렸던 친밀감과 깊은 예배의 영성을 경험하도록 돕는 목회를 하고 싶어요. 기본에 충실한 교회, 예배에 절대적 가치를 두는 교회, 선교에 헌신하는 교회, 지역민들을 섬기는 교회, 그래서 행복한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 조은실 기자 ces@onnuri.org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