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선교 역사를 한눈에 ‘광주 양림동역사문화마을’
특집
한국 선교, 그 흔적을 찾아서
크리스천이라면 꼭 한번…
호남 선교 역사를 한눈에 ‘광주 양림동역사문화마을’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본지에서는 ‘한국 선교, 그 흔적을 찾아서’를 주제로 여행도 하고, 기독교 순례도 할 수 있는 선교여행 코스를 추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코스는 호남 선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이다. 선교사들의 생활상과 근대화 상징이 된 건축물, 아기자기한 예술품에 푸짐하고 맛도 좋은 남도음식까지 맛볼 수 있는 선교여행지다.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남구에 있는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여행지다. 근대화의 상징이 된 건축물과 예술품, 맛좋은 남도음식까지 맛볼 수 있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곳이 호남선교를 개척했던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서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깊이 묵상하는 이들이 드물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을 선교여행지로 추천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TV에서나 볼 수 있는 다방, 의원, 의상실 등 고풍스런 옛 멋을 뽐내는 건물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옛 풍경과 이야기가 마냥 신기한 어린아이부터 추억을 회상하는 어르신까지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의상실에 가면 개화기 멋쟁이들이 입던 원피스와 양복을 대여해 주는데 그 옷을 입고 당시 사람이 되어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은 크리스천들을 위한 기독교 순례지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 일대는 미국남장로교의 호남선교 스테이션이었다. 살아있는 선교박물관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생활상과 시대상 등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호남 선교와 선교사
호남선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하나님의 사람은 유진벨 선교사와 오웬 선교사다. 그들이 바로 광주선교를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에는 유진벨 선교사와 오웬 선교사를 기념하는 기념관과 저택 등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근처에 광주 최초의 신식병원인 광주기독병원과 수피아여자고등학교도 있다. 광주지역 선교역사 뿐만아니라 교육, 문화, 의료시설의 변화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1904년 12월 25일 광주 양림동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을 찾아와 주민들과 함께 처음으로 예배를 드린 이가 바로 유진벨 선교사와 오웬 선교사다. 첫 예배 설교제목이 ‘땅에는 평화, 사람에게는 은총’이었는데 그 예배에는 주민 200여 명이 참석했다. 선교사들의 임시사택을 건축할 때 구경 온 주민들을 초대한 것이다. 유진벨 선교사는 자신의 사택마저 전도도구로 활용했다. 아쉽게도 유진벨 선교사의 사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우일선 선교사 사택과 오웬기념각 등 당시 건축한 건축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고풍스러운 멋을 자랑하는 건축물이 들어섰을 때 양림동 주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산간벽지에 살던 주민들의 눈에 비친 서양식 건물은 신세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진벨 선교사와 동료들은 건축, 의료, 교육 등을 선교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복음 이외에 결코 희망이 없습니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 탐방은 관광안내소에 들려 지도를 얻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지도에 표시된 볼거리를 하나씩 방문하면 되는데 유진벨기념관을 가장 먼저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알고 보면 더 큰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유진벨기념관에 가면 호남선교 역사를 한눈에 확인 할 수 있다. 특히 유진벨 선교사가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읽으면 큰 도전을 받는다.
“밥은 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음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되려면 그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진벨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한 첫 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있는 글귀다. 당시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음식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힘들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주민들에게 환영받지도 못했다. 유진벨 선교사는 전남 나주에서도 선교를 하려 했는데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포기한 상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 어떤 역경이 있어도 복음 전하는 일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유진벨 선교사가 그토록 헌신했던 이유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잘 담겨있다.
“이 백성들에게는 복음 이외에 결코 희망이 없습니다.”
복음의 불모지였던 양림동에 복음이 전해지자 그 씨앗이 자라 열매 맺기 시작했다. 광주지역 곳곳으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목포, 군산 등 주로 항구 주변에서 시작했던 선교활동이 내륙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양림동에 병원, 학교, 성경공부방, 교회, 주택 등을 지어놓고 선교에 활용했다. 그 덕분에 유진벨 선교사의 임시사택은 광주 진료소가 됐고, 그의 집 사랑방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학교가 됐다.
그 다음 코스는 수피아여학교, 광주기독병원, 우일선 선교사 사택, 오웬기념각, 선교사묘소 등으로 이어진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 바깥쪽에 있는 수피아여학교와 광주기독병원부터 둘러보면 수월하다. 광주기독병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념관도 있다. 당시 광주기독병원에서는 놀란, 우월순(우일선), 서서평 선교사 등이 사역했다.
“한국인 의사는 질병을 확인하기 위해 그 반점을 불에 태워야 하며, 그것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불에 달군 철로 지졌다. 치료약으로 쟁기 끝부분을 쌀알 크기의 작은 조각으로 두들겨서 삼켰다.”
광주기독병원의 2대 원장 우월순 선교사가 남긴 기록이다. 무속과 주술을 통한 치료가 일반적이던 당시 사람들이 선교사들 덕분에 과학적이고 서구적인 치료를 받게 됐다.
광주기독병원 맞은편에는 수피아여학교가 있다. 수피아여학교는 1908년 개교했다. 당시 선교사들에게 교육선교는 매우 중요한 사역이었다. 호남선교부연례 보고서에 ‘학교선교는 가장 큰 전진’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선교사들이 집중했던 사역이었다. 수피아여학교는 1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성장하며 명문학교로 발돋움 했다.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학생들을 배출해내고 있다. 배유지 기념예배당, 수피아홀, 윈스보로우홀 등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어비슨기념관 2층에는 카페가 있는데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다. 어비슨 선교사는 농촌 재건운동 및 문맹퇴치를 위해 힘쓴 선교사다.
그 다음 행선지는 오웬기념각이다. 오웬 선교사는 유진벨 선교사와 함께 호남선교의 개척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시골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다 과로로 1909년 소천했다. 오웬기념각은 예배당 및 집회장소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강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마지막 코스는 우일선 선교사 사택과 선교사 묘소 탐방이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양림산 중턱에 있다.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주택이다. 잔디밭에서 올려다보는 2층 사택이 얼마나 멋있는지 모른다. 우월순 선교사는 오방 최흥종 목사와 함께 나병환자들을 돌보는데 한평생을 바친 하나님의 사람이다.
양림동역사문화마을 탐방 종착점은 양림산 선교사 묘소다. 이곳에는 선교사 22명이 잠들어 있다. 양림산을 5분 남짓 오르면 선교사 묘소가 나온다. 유진벨 선교사, 서서평 선교사, 오웬 선교사 등 이곳에서 순교한 선교사들과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천국에 간 선교사들의 자녀들의 무덤이 있다.
양림산 선교사 묘소에서 만난 김선후 씨는 “선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면서 “크리스천이라면 꼭 한번 방문해야 할 여행지”라고 소개했다.
문의: 양림동역사문화마을 관광안내소 062-676-4486
추천코스 유진벨기념관-광주기독병원, 수피아여학교-어비슨기념관-오웬기념각-우일선선교사자택-선교사 묘소
작성자 김영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