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남편을 호스피스 병상에서 만났다
온누리 호스피스에서 온 편지
이혼한 남편을 호스피스 병상에서 만났다
민경애 권사와 노복식 성도의 그 아름다운 이별
민경애 권사와 노복식 성도의 그 아름다운 이별
15년 전 이혼한 남편을 호스피스 병상에서 만났다. 민경애 권사(양재공동체)는 죽음을 세 달 앞둔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며 끝까지 복음을 전했다. 처음에는 욕을 하고 밀어내던 남편이 결국 하나님의 사랑에 항복했다. 온 가족이 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남편과 이별했다. 온누리 호스피스를 섬기고 있는 김정숙 목사(삼성 서울병원 원목)가 민경애 권사와 노복식 성도의 그 아름다운 이별이야기를 글로 적어 보내왔다.
/ 편집자 주
/ 편집자 주
성도(聖道)라는 칭호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귀한 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70평생 교회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사모하며 입으로 고백하는 것은 기적이다. 15년 동안 이어진 아내의 기도가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기적이란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생명줄을 붙잡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죽음에서 생명의 삶으로 인도된다.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그 시간에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은총을 받는다.
죽음을 며칠 앞두면 변화무쌍한 감정이 드러난다. 그 속에서 전능의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죽음을 앞둔 한 영혼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긴 하나님 나라에 입문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죽음을 며칠 앞두면 변화무쌍한 감정이 드러난다. 그 속에서 전능의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죽음을 앞둔 한 영혼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긴 하나님 나라에 입문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혼한 남편을 돌본 이유 ‘복음’
삼성 서울병원을 섬기고 있는 온누리 호스피스 봉사자 민경애 권사님의 전도 열정은 남다르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언변이 수려하지는 않다. 때로는 버벅거리고, 말솜씨가 별로여서 처음 만나는 사람은 권사님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만나면 권사님의 삶에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민 권사님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신뢰하게 되면 그제야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선한다. 임종예배를 함께 드리며 장례까지 돌보고 나면 남은 가족들도 거의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된다.
민 권사님은 그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남편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 이웃 봉사자들은 민 권사님 남편이 살아계신다는 것도 거의 알지 못했다. 민 권사님은 15년 전에 남편과 이혼하고 자녀들과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9년 전 민 권사님이 삼성 서울병원 봉사자로 합류 했을 때 가정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 남편과 헤어져 따로 살지만 간혹 반찬을 챙겨다 드린다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한 적은 있었다. 뒤에 알게 된 것은 남편의 성격이 유난히 예민하고 완벽주의에다가 모든 분야에 박식하고 분명한 분이셨단다. 민 권사님은 그와 정반대로 그냥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좋은 성품이다. 남편과 성격이 도저히 맞춰지지 않아서 합의하에 따로 살기로 했단다.
시간이 흘러 남편이 폐암 말기가 되었다. 민 권사님은 그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하면 남편을 천국으로 인도할까 생각하며 병문안을 갔다. 상태가 급속히 나빠진 것을 보고 간병인으로 남편 옆자리를 지켰다.
지난 15년 동안 민 권사님은 모든 분야에서 달라져 있었는데 남편은 성격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민 권사님의 돌봄에 고마워 하기는 커녕 불평과 짜증을 내고 함부로 야단치는 상황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민 권사님은 지난 10년 동안 병원선교, 호스피스 교육, 병상실습을 하면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남편을 보살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불평 가득하던 남편이 “언제 이렇게 똑똑해졌냐”며 감탄을 하더란다.
짜증을 들으면서까지 이혼한 남편을 돌본 이유는 복음이었다. 가족들은 남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맏아들은 금식기도를 했다. 아들들도 병상에 나와 아버지를 보살폈다. 그 와중에도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 봉사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중보기도를 시작했다. 나 또한 병상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민 권사님은 “아직도 성질은 살아 있어서”라며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민 권사님은 그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남편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 이웃 봉사자들은 민 권사님 남편이 살아계신다는 것도 거의 알지 못했다. 민 권사님은 15년 전에 남편과 이혼하고 자녀들과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9년 전 민 권사님이 삼성 서울병원 봉사자로 합류 했을 때 가정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 남편과 헤어져 따로 살지만 간혹 반찬을 챙겨다 드린다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한 적은 있었다. 뒤에 알게 된 것은 남편의 성격이 유난히 예민하고 완벽주의에다가 모든 분야에 박식하고 분명한 분이셨단다. 민 권사님은 그와 정반대로 그냥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좋은 성품이다. 남편과 성격이 도저히 맞춰지지 않아서 합의하에 따로 살기로 했단다.
시간이 흘러 남편이 폐암 말기가 되었다. 민 권사님은 그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하면 남편을 천국으로 인도할까 생각하며 병문안을 갔다. 상태가 급속히 나빠진 것을 보고 간병인으로 남편 옆자리를 지켰다.
지난 15년 동안 민 권사님은 모든 분야에서 달라져 있었는데 남편은 성격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민 권사님의 돌봄에 고마워 하기는 커녕 불평과 짜증을 내고 함부로 야단치는 상황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민 권사님은 지난 10년 동안 병원선교, 호스피스 교육, 병상실습을 하면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남편을 보살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불평 가득하던 남편이 “언제 이렇게 똑똑해졌냐”며 감탄을 하더란다.
짜증을 들으면서까지 이혼한 남편을 돌본 이유는 복음이었다. 가족들은 남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맏아들은 금식기도를 했다. 아들들도 병상에 나와 아버지를 보살폈다. 그 와중에도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 봉사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중보기도를 시작했다. 나 또한 병상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민 권사님은 “아직도 성질은 살아 있어서”라며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을 ‘성도’로 변화시키다
지난 5월 10일 전화를 받고 남편이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으로 달려갔다. 먼저 와 계신 오륜교회 봉사자 두 분과 함께 병상을 찾았다. 민 권사님은 방금 전까지도 복음을 전했다고 했다. 남편이 항암주사를 맞아 혼수상태임에도 복음을 전하면 “고마해라 시끄럽다, 그 말할라면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환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나눴다. 질병의 고통을 겪는 환우의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부분을 터치하면서 질병이 죽음까지 인도할 수 있다는 현실에 대해 이해를 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어도 모든 가족이 함께 만날 그 곳을 소개했다.
“우리의 마지막 본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구원자 예수님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시면 ‘거룩한 성도’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 받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처음에는 얼굴에 어떤 긴장감이 서렸다. 그러면서 아내를 원망하듯 바라보았다. 성령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열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설명을 마치자 성경을 두 손으로 빼앗더니 보이지도 않은 글자를 들여다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기운이 없어 떨리는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성경을 들고 계셨다. 이 모습을 본 민 권사님이 그동안 전한 복음이 열매 맺고 있다는 사실에 싱글벙글 했다. 계속해서 말씀을 나누고 세례를 베풀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돌아가고 있음을 믿습니까?”
“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올까? 큰 소리로 확답을 해 주시니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민 권사님이 전했던 복음을 강력하게 거부했던 마음속에 임재하신 성령의 역사는 한 순간에 남편을 ‘성도’로 변화 시켰다.
홀로 외로이 살아온 15년 세월과 질병의 고통과 절망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아버님을 호적에 올려주자는 맏며느리의 제안에 따라 노복식 성도는 호주(戶主)로 복귀했다. 온 가족이 아무런 이해타산 없는 사랑을 베풀 때 손자손녀의 할아버지로, 아들들의 아버지로, 민경애 권사님의 남편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노복식 성도의 세 달 동안의 병상생활은 민 권사님이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는 시간이었다. “매일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가버리라고 때를 써도 한 번도 밉지 않았어요. 더 따뜻하게 닦아주고 주물러 줬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갈면서도 아낌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었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들이 해야 할 아가페 사랑이다. 노복식 성도의 장례예배에는 양재공동체 성도들이 함께했다. 장지는 문막 온누리동산이었는데 그 장소가 노복식 성도에게 베풀어지는 특별한 또 하나의 축복이요 은혜였다. 김사무엘 목사님과 피현희 목사님 묘소 곁에 노복식 성도님을 안치했다. 집례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이 부럽다며 한마디씩 하셨다. 노복식 성도님은 교회 한번 나오시지 않고도 좋은 장소에 묻히셨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이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장례를 마무리 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우리들의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실현되고 있다. 노복식 성도님과 민경애 권사님은 우리가 아가페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교훈을 남겼다. 전도가 어려운 성도가 있다면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실현해 보라 권면하고 싶다.
/ 김정숙 목사(삼성 서울병원 원목)
나는 환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나눴다. 질병의 고통을 겪는 환우의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부분을 터치하면서 질병이 죽음까지 인도할 수 있다는 현실에 대해 이해를 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어도 모든 가족이 함께 만날 그 곳을 소개했다.
“우리의 마지막 본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구원자 예수님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시면 ‘거룩한 성도’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 받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처음에는 얼굴에 어떤 긴장감이 서렸다. 그러면서 아내를 원망하듯 바라보았다. 성령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열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설명을 마치자 성경을 두 손으로 빼앗더니 보이지도 않은 글자를 들여다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기운이 없어 떨리는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성경을 들고 계셨다. 이 모습을 본 민 권사님이 그동안 전한 복음이 열매 맺고 있다는 사실에 싱글벙글 했다. 계속해서 말씀을 나누고 세례를 베풀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돌아가고 있음을 믿습니까?”
“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올까? 큰 소리로 확답을 해 주시니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민 권사님이 전했던 복음을 강력하게 거부했던 마음속에 임재하신 성령의 역사는 한 순간에 남편을 ‘성도’로 변화 시켰다.
홀로 외로이 살아온 15년 세월과 질병의 고통과 절망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아버님을 호적에 올려주자는 맏며느리의 제안에 따라 노복식 성도는 호주(戶主)로 복귀했다. 온 가족이 아무런 이해타산 없는 사랑을 베풀 때 손자손녀의 할아버지로, 아들들의 아버지로, 민경애 권사님의 남편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노복식 성도의 세 달 동안의 병상생활은 민 권사님이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는 시간이었다. “매일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가버리라고 때를 써도 한 번도 밉지 않았어요. 더 따뜻하게 닦아주고 주물러 줬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갈면서도 아낌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었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들이 해야 할 아가페 사랑이다. 노복식 성도의 장례예배에는 양재공동체 성도들이 함께했다. 장지는 문막 온누리동산이었는데 그 장소가 노복식 성도에게 베풀어지는 특별한 또 하나의 축복이요 은혜였다. 김사무엘 목사님과 피현희 목사님 묘소 곁에 노복식 성도님을 안치했다. 집례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이 부럽다며 한마디씩 하셨다. 노복식 성도님은 교회 한번 나오시지 않고도 좋은 장소에 묻히셨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이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장례를 마무리 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우리들의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실현되고 있다. 노복식 성도님과 민경애 권사님은 우리가 아가페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교훈을 남겼다. 전도가 어려운 성도가 있다면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실현해 보라 권면하고 싶다.
/ 김정숙 목사(삼성 서울병원 원목)
작성자 김영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