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남녀갈등 넘어 혐오로 번진 사회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난다”

기획
2. 남녀갈등

아담(남자) 혼자 살 수 없어 이브(여자)를 지으셨다
남녀갈등 넘어 혐오로 번진 사회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난다”
교회가 성경적 성역할 가르치고, 건강하게 소통하는 광장 돼야

 

우리 사회가 세대, 남녀, 노사, 이념 등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정 계층만의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서 더욱 심각하다.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화합’과 ‘통합’이다. 대립하고, 갈등하는 사회를 화합시키고, 통합시키는 역할은 오직 교회만이 할 수 있다. 모든 세대, 인종, 지역, 문화, 이념을 품을 수 공동체는 세상에 교회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남녀갈등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 살펴봤다.
/ 김영선 기자 k4458@onnuri.org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 같습니다”
지난달 3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려할 정도로 우리사회의 남녀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갈등을 넘어 혐오로 번지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남녀갈등은 어느 순간부터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여사’(운전을 못하는 운전자를 이르는 말), ‘된장녀’(사치가 심한 여성), ‘맘충’(이기적인 엄마들), ‘한남’(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말) ‘김치녀(한국여자를 비하하는 말) 등 남녀를 비하하는 말이 너무 많아졌다. 남녀를 비하하는 말들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직장 등 사회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들불같이 번지고 있는 남녀갈등은 비단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선 교사들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조차 남녀를 비하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게 현 주소이고, 초등학생들의 남녀갈등 또한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한다.
남녀갈등이 표면화되면서 남녀의 의식차이 또한 커지고 있다. 특히 청년들은 성별이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끼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취업할 때 유리한 성별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더니 응답자 절반이 ‘그렇다’고 답했다. 취업에 유리한 성별은 남성(76.3%)이었다. 실제 구직활동을 하면서 성별로 인한 어렴움을 느낀 적인 있다는 구직자가 남성 26.9%, 여성 44.3%로 여성이 남성보다 2배  가량 높았다.
남녀갈등은 결혼에 대한 의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즘 2030세대들은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혼은 불평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61.5%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성별에 따른 차이는 더욱 뚜렷했다. 남성 47.4%, 여성 76.7%가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기혼자 그룹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기혼 남성은 ‘결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63.2%로 전체 응답군 중에서 가장 높았던 반면, 기혼 여성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1.4%를 기록했다.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결혼문화 자체가 불평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여성의 91.1%, 남성의 73.3%가 ‘결혼문화는 양성이 불평등하다’고 응답했다. 남성이 결혼문화는 양성이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가정의 생계를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61.1%)’ 때문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신혼집 마련 등 남성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결혼비용(57%)’, ‘남자는 경제력, 여자는 외모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평가 받는 배우자의 조건(44%)’ 등을 꼽았다.
여성들이 결혼문화는 양성이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맞벌이·외벌이 상관없이 가사는 여성 몫이라고 여기는 가사문화(73.1%)’ 때문이었다. ‘육아를 엄마 몫으로 여기는 여성 중심의 육아환경(69.6%)’, ‘매사 본가가 우선시되는 본가(시가) 중심의 가족문화(46.5%)’가 그 뒤를 이었다.

 

<82년생 김지영>
더 이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다면 남녀의 입장을 한번 들어보자
사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양성평등운동’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행사할 수 있는 교육권과 투표권 등이 여성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S.앤터니 등이 여성참정권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비슷한 시기 철저한 남존여비사상이 주를 이뤘던 조선사회에서 여성들의 인권은 참담했다. 여성들에게 독립적인 인권이나 법적인 권리가 부여되지 않았다. 몇몇 양반가문의 여성들만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근대개항 이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 그 중심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있었다. 조선에 온 선교사들에 의해 조선의 여성들을 위한 근대교육 및 다양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서울 이화학당, 평양 정의여학교 등 다양한 근대교육 기관에서 조선의 여성들이 교육을 받으면서 전통적 사고방식과 계급을 타파하고 남녀평등사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여성교육이 확대됨에 따라 여성들의 사회참여도가 높아지면서 여성들이 사회의 당당한 주체가 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직장, 학교에서 여성들을 상대로 위력을 과시하는 폭력 및 차별행위가 비일비재하고, 이같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감추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남성중심의 사회적 행태가 지금의 여성운동을 촉발시켰다고 이해해도 부족함이 없다.
현재의 남녀갈등 구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세대가 20~30대다. 지금 20~30대 여성들은 학교에서 남녀가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실제 그녀들이 살아온 혹은 살아가는 세상 에서는 평등하지 않았다. 학교, 직장, 심지어 가정에서까지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난무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여성은 엄마들이었다. 20~30대 딸들이 그리는 엄마의 자화상은 늘 참고 고통을 견뎌온 피해자였다. 그 안타까운 모습을 20~30대 딸들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즈음 대한민국 여성들의 목소리를 웅변하는 책이 한권 나왔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여성들의 울부짖음을 대변한 소설 <82년생 김지영>이다. 이 책은 82년에 태어난 김지영이란 여자가 여자라서 받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서술하면서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 책의 줄거리를 조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녀차별의 시작은 집이었다. 김지영에게는 5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남동생의 분유를 먹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할머니에게 혼쭐이 났다. 감히 귀한 손자의 분유에 손을 댄다는 게 그 이유다. 초등학생 때는 지독하게 괴롭히던 남자 짝꿍을 만난다. 담임교사는 김지영에게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는 여자한테 더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그래’라며 참고 이해하라고만 한다. 대학에서 남자친구와 사귀다 헤어졌는데 남자 선배들이 그녀를 ‘씹다 버린 껌’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사회에서도 남녀차별이 이어졌다. 여자는 대학교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서류심사 통과도 어려웠다. 택시기사는 ‘첫 손님으로 여자는 태우지 않는다’며 승차를 거부했다. 결혼하고 출산을 한 김지영이 어린 딸을 돌보다 1,500원짜리 커피 한 잔 마시며 쉬고 있는데 학생들이 그녀에게 ‘맘충’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내뱉는다. 결국 김지영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행해지는 차별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정신병에 걸리고 만다.”
소설 같지 않은 소설에 많은 여성들이 공감했다. 살면서 어렵지 않게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지 않고,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며 양성평등운동을 시작했다.

 

<90년생 김지훈>
남성들에 대한 역차별이다

 

여성평등운동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남성들이 ‘역차별’이라고 들고 일어났다. 그 즈음 <82년생 김지영>에 대항하는 <90년생 김지훈>이 등장했다. 이 책은 ‘남성역차별 시대 남성인권을 위한 책’을 표방하고 있다. <90년생 김지훈>은 출판도 되지 않았는데 1주일 만에 펀딩을 통해 수익금 1천만 원을 벌었다. 그렇다면 왜 많은 남성들이 <90년생 김지훈>에 공감하는 걸까? 남성들도 일상에서 느끼는 성차별적인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쪼잔하게 왜이래”, “남자가 그것도 못해” 등 지나칠 정도로 남성성을 강요받고, 남성들에 대한 성의식이 매우 낮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예를 들어 종편방송 JTBC에서 남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서 남성들이 소변을 본 다음 손을 얼마나 씻는지를 보도했고, 공중파방송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서도 샤워장면을 방영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한 국방의 의무를 남성들만 부담하는 것도 성차별이라는 의견이 있다. 지난해 여성들도 징병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우스갯소리로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군대가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남성만의 실질적 독박 국방의무 이행에서 벗어나 여성들도 의무 이행에 동참하도록 법률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주요 논점은 ▲여성단체가 양성평등을 주장하며 군 가산점 혜택을 폐지시켰으니 여성들 또한 법률 개정을 통해 남성과 동일한 군 복무를 이행하여야 한다. ▲여성의 신체적 차이로 인해 징병이 되지 않는다면 여성 간부와 여경 모집 또한 중단 되어야 한다 등이다.
남성들이 토로하는 또 다른 역차별은 결혼 비용이다. 과거에는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의 사회진출 기회가 적어 경제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여성들 대신 남성들이 결혼비용을 부담했다. 그런데 요즘은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데 여전히 남성들이 결혼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1996년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당시 결혼비용은 남자 4,355만 원, 여자 3,628만 원이었다. 2016년 MBC PD수첩의 보도에 따르면 결혼비용이 남자 8,078만 원, 여자 2,936만 원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결혼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남성들이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은 잠재적 피해자?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

 

최근 여성인권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 계기가 있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도화선이었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인근 주점에서 일하던 남자가 한 여성을 살해했다. 범인은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남자 6명은 그냥 지나치고 여성을 살해했다는 점에서 ‘여성혐오범죄’라는 의견이 나왔다. 불특정 다수를 노린 ‘묻지마 범죄’라는 의견과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여성혐오범죄 쪽으로 추가 기울었다. 그러자 네티즌들이 피해자를 추모하는 운동을 벌이면서 “여자라서 죽었다”고 소리쳤다.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포스티잇에는 “남아 있는 여성들이 더 좋은 세상 만들게요” 같은 여성혐오범죄를 지적하는 글들이 수두룩했다. 여자는 잠재적 피해자라는 논리는 비약이라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실제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범죄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고 성범죄에도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조사한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50.9%가 전반적인 사회 안전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남성(40.1%)보다 10.8% 높은 수치다. 부문별로는 범죄발생(73.3%), 신종질병(65.5%), 정보 보안(53.4%) 순이다. 범죄발생에 대한 불안은 여성이 남성보다 12.7% 높고, 성폭력 피해자는 여성(2만 6116건)이 남성(1478건)보다 약 17배나 높았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강도를 당한 여성 피해자가 2006년 2512건에서 2016년 5분의 1수준으로 감소한 반면 성폭력과 폭행은 2배 이상 증가했다. 여성 성폭력 피해자는 21~30세(9644건)가 가장 많았다. 20세 이하(7986건), 31~40세(3357건)가 그 다음 순이었다. 올 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외침이 있었다. 미투(#MeToo)운동이다. 미투운동을 통해서 한국사회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미투운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며 그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이다. 2017년 10월 미국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의 제안으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됐다. 한국에서는 법조계에서 시작된 미투운동이 문단계, 연극계 등 문화·예술계, 정치계까지 번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미투운동은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은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큰 효과가 있었는데 조금씩 흐릿해지면서 남녀갈등 양상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여론재판이나 거짓 미투(무고) 때문이었다. 미투운동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은 사실과 관계없이 지목된 그 자체만으로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잃었다. 무고한 미투로 목숨을 끊은 교사와 교수도 있었다. 무고한 여성은 가벼운 처벌만 받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대검찰청이 성폭력 범죄에 대한 매뉴얼을 개정하면서 남성들의 불만이 더욱 커졌다. 개정된 성폭력 범죄에 대한 매뉴얼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성폭력을 가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피해자를 무고 혐의로 역고소한 경우 성폭력 사건 수사가 끝나기 전에는 검찰이 무고 사건 수사에 착수하지 않기로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고발당한 경우 무고죄로 고소하는 것이 보통인데 최소한의 방어수단을 잃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펜스룰’이다. 펜스룰은 2002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한 인터뷰에서 “아내 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된 용어다. 많은 남성들이 ‘내가 하는 행동들이 의지와 관계없이 성폭력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된 최소한의 방어적 행동이라고 주장했지만 여성들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여성운동계에서는 펜스룰에 대해 “성폭력 안 저지르고 여성과 일하는 법을 모르면 배워야”한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사회의 남녀갈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남녀갈등을 뛰어 넘어 남녀혐오로 번지고 있어 심히 우련된다.

 

혐오와 혐오가 오가면
소통과 이해될 리 없다

 

어제 광화문 광장에서 여성들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자고 피의자가 여자라서 경찰이 더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반면 일반적인 몰래카메라, 리벤지포르노 같은 사건의 피해자는 여성이고, 피의자가 남성이라서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항의하는 집회였다. 이뿐만 아니라 ‘여성 경찰관 90% 비율 임용’, ‘여성 경찰청장 임명’, ‘문무일 검찰총장 사퇴’, ‘판·검사 등 고위 관직 여성 임명’,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촬영·유포·판매·구매자에 대한 강력 처벌’, ‘디지털 성범죄 국제공조수사 강화’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지난달 7일 대학로에서 열린 3차 집회에서는 ‘문재인 재기해’라는 문구를 외친 퍼포먼스가 논란이 됐다. ‘재기해’라는 단어는 2013년 한강에 투신한 고 성재기 대표(남성연대)를 비하하는 말로 자살하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문재인 재기해’라는 문구는 ‘문재인 대통령 자살해’라는 의미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편파수사는 아니며 일반적으로 남성 가해자는 엄벌하고, 여성가해자는 가볍게 처리됐다”는 발언에 대한 항의였다. 해도 너무한 극단적인 표현이 오가는 집회를 두고 남성들은 ‘웜퇘지들이 쿵쿵거린다’며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웜퇘지는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인터넷 사이트 ‘워마드’를 이용하는 여성들은 맷돼지 같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남자를 만나본적도 없는 매력적이지 못한 여성들이나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혐오와 혐오가 오가면 소통과 이해 될 리 없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말하면 배신자로 낙인을 찍는다. ‘보빨남’(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자 편을 드는 남자), ‘흉자’(여자지만 남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라는 말로 낙인을 찍으면서 동성끼리 갈등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남녀갈등 극복 위한 교회의 역할

 

극으로 치닫는 남녀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20세기에 배우지 못하고, 단순한 노동력으로 취급받던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운 주체가 교회였다. 바로 그 교회가 다시 한 번 성평등과 건강한 여권신장을 위하여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 남녀가 건강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이 되어줘야 한다. 인터넷과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남녀 간의 무분별한 의사소통은 건강한 토론은 고사하고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지게 할 뿐이다.
또한 교회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성 역할을 가르쳐야 한다. 남녀는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할 투쟁의 대상이 아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베려하고, 도우며 함께 살아야 할 한 몸이다(창 2:24). 하나님은 아담(남자) 혼자서 살 수 없기에 돕는 배필 이브(여자)를 지으셨다(창 2:18). 또한 성경은 남녀는 헐뜯고 빼앗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에게 복종하는 사이라고 말하고 있다(엡 5:21).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 하듯 해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엡 5:21-33). 비신자들에게 성경적 성 역할을 가르치고 설명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천들이 성경적 성 역할을 삶으로 살아내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살아있는 계몽운동이 될 수 있다. 교회와 성도들이 앞장서서 가정, 학교, 일터에서 서로를 먼저 베려하고, 존중하고, 사랑하자. 남녀갈등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한다는 사명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작성자  김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