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성막은 지금도 살아있다
신앙에세이
성막은 지금도 살아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다. 성경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을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신 분으로 그려낸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속성은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내가 주 앞을 떠나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며 지옥에 잠자리를 마련해도 거기에 계십니다”(시 139:7~8).
특별히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를 설명할 때 ‘편재’ 혹은 ‘무소부재’라는 표현을 쓴다. 하나님의 편재성과 무소부재를 생각한다면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예배의 장소를 지정하시는 부분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느껴진다. 하나님께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만날 장소를 말씀하셨다.
“거기에서 내가 너와 만날 것이요, 증거궤 위에 놓여 있는 두 그룹 사이 덮개 위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네게 준 계명에 대해 내가 모든 것을 너와 말할 것이다”(출 25:22).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제한을 두시고 만남의 약속을 하신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특별한 장소가 바로 ‘성막’이다.ㅤ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의 구조를 보여주셨다. 유한한 인간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 방법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구약의 제사에서 형식이 매우 강조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지정된 성막과 제사의 외형을 정확히 지켜야 했다. 또 그렇게 형식적 완성도를 갖추면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생각했다.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제사의 본질이 잊혀져 갔고 형식만 보이는 것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과 두려움도 사라져 갔다. 그 결과 마음과 행실이 죄로 가득하게 되었고 형식적인 제사로 인해 하나님은 분노하셨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형식적인 의미만을 가지면서 이스라엘은 심판의 역사를 자초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열려진 생명의 길을 인간은 그 완고함으로 스스로 닫아버렸다. 하지만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졌다. 이 휘장은 두께가 15cm가 넘는 매우 튼튼한 커튼인데, 휘장으로 분리된 지성소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 한 차례 들어가 하나님을 대면하는 장소였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인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동시에 활짝 열린 것이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몸을 찢으셨고, 지성소로 나아가는 영원한 길이 되셨다.
지난달 남양주 온누리교회 차세대 꿈이자라는땅 학생들과 성막의 모형을 복원한 곳에 다녀왔다. 학생들이 성막의 구조와 기구들을 배우고 체험하면서 구약의 제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더 나아가 지금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시는지를 깨닫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막은 출애굽 이후 광야시대를 보여주는 역사 속 기념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그분을 만나는 방법이다. 성막의 구조는 성경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하나님과의 관계와 복음을 설명하는 도구가 된다.ㅤ성경 속 성막의 원리가 성경 지식의 차원을 넘어 오늘 우리의 예배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은혜로 역사하기를 소망한다. 성막은 지금도 살아있다.
/ 변대섭 목사(남양주 온누리교회)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내가 주 앞을 떠나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며 지옥에 잠자리를 마련해도 거기에 계십니다”(시 139:7~8).
특별히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를 설명할 때 ‘편재’ 혹은 ‘무소부재’라는 표현을 쓴다. 하나님의 편재성과 무소부재를 생각한다면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예배의 장소를 지정하시는 부분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느껴진다. 하나님께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만날 장소를 말씀하셨다.
“거기에서 내가 너와 만날 것이요, 증거궤 위에 놓여 있는 두 그룹 사이 덮개 위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네게 준 계명에 대해 내가 모든 것을 너와 말할 것이다”(출 25:22).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제한을 두시고 만남의 약속을 하신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특별한 장소가 바로 ‘성막’이다.ㅤ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의 구조를 보여주셨다. 유한한 인간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 방법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구약의 제사에서 형식이 매우 강조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지정된 성막과 제사의 외형을 정확히 지켜야 했다. 또 그렇게 형식적 완성도를 갖추면 하나님을 만난 것으로 생각했다.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제사의 본질이 잊혀져 갔고 형식만 보이는 것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과 두려움도 사라져 갔다. 그 결과 마음과 행실이 죄로 가득하게 되었고 형식적인 제사로 인해 하나님은 분노하셨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형식적인 의미만을 가지면서 이스라엘은 심판의 역사를 자초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열려진 생명의 길을 인간은 그 완고함으로 스스로 닫아버렸다. 하지만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졌다. 이 휘장은 두께가 15cm가 넘는 매우 튼튼한 커튼인데, 휘장으로 분리된 지성소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지성소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 한 차례 들어가 하나님을 대면하는 장소였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인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동시에 활짝 열린 것이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몸을 찢으셨고, 지성소로 나아가는 영원한 길이 되셨다.
지난달 남양주 온누리교회 차세대 꿈이자라는땅 학생들과 성막의 모형을 복원한 곳에 다녀왔다. 학생들이 성막의 구조와 기구들을 배우고 체험하면서 구약의 제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더 나아가 지금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시는지를 깨닫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막은 출애굽 이후 광야시대를 보여주는 역사 속 기념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그분을 만나는 방법이다. 성막의 구조는 성경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하나님과의 관계와 복음을 설명하는 도구가 된다.ㅤ성경 속 성막의 원리가 성경 지식의 차원을 넘어 오늘 우리의 예배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은혜로 역사하기를 소망한다. 성막은 지금도 살아있다.
/ 변대섭 목사(남양주 온누리교회)
작성자 권찬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