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사칼럼] 원더풀 라이프는 계속된다!
권사칼럼
원더풀 라이프는 계속된다!
김형석 교수(전 연세대 철학과)가 ‘원더풀 라이프’ 세미나의 첫 문을 열어주셨다. 더욱 뚜렷한 면모로 입술의 열매를 나눠주시며 인간의 존엄성으로 우리를 일깨워 주셨다. “인생은 고생이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이라면 멋있지 않은가?”라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 나눠주셨다. 그 강의를 듣고 있는 늦은 밤, 기억의 창고에 걸어뒀던 나의 70대가 떠올랐다.
60대 중반부터 여러 육신의 아픔을 겪다가 70세를 바라보는 겨울에 팔이 골절됐다. 팔에 깁스해서 주저앉아 있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감사하라고 하셨다. “감사할 게 없는데 어떻게 감사해요?”라고 투덜거렸는데도 계속 감사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의 강권 가운데서 “어떻게 감사하지?”라고 묻다가 감사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한 번 한 사람에게 감사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3년 가까이 편지를 보내니까 편지 보낼 사람이 생각나지 않아서 “나는 나에게 감사하는가?”라고 물었다. 나에게 편지를 쓰려고 앉았는데 가시처럼 걸려있었던 어떤 기억이 툭 튀어나왔다. 그것을 정리하고나서야 무의식에 걸어두었던 올무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두란노서원 출판부에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으로 시작되는 ‘들어가는 말’을 보내 출판을 타진했다. 두란노서원에서는 저작권 문제에 걸린다며 첫걸음에 퇴자를 당했다. 나는 2001년 등단해서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시인이다. <내 뼈의 뼈>, <풀섶 풀잎사귀 귀로 앉아>, <몇 갈래 길에서 이미마을로>, <이슬은 영원하다> 4권의 시집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좋아도 남의 시를 쓸 수 없는 마당에 내 시로 교체하면 어떨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수요예배에서 영화감독 김상철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마약에 중독된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는 그 마음이 공감되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도 그들을 돕는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번째 스무 살이라며 특별한 오브제를 만들어 준 딸 덕분에 내 나이가 들통났다. ‘정말 80년을 살았구나’ 스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불만이 들끓고 있는 사회에 ‘감사’라는 화두를 던질 수 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내 등을 떠밀 듯 책을 출판하게 하셨다. 이미 준비된 글로 말이다.
<내가 나에게 쓰는 감사편지>라는 제목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표지를 고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한 천사를 보내 주셨다. 그 더분에 놀랍게 예쁜 책이 출간되었다. 모든 수익금은 베텔중독센터에 보내기로 했다.
그날 밤, 김형석 교수가 뇌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면서 100세 시대를 살아내시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셨다. 하나님이 60대에 나에게 시(詩)를 선물로 주셨고, 70대에는 감사를 주셨다. 이제 80대에는 무엇을 더하여 주실까? 하나님 뵙는 그 날까지 원더풀 라이프는 계속될 것이다. 나의 85세를 꿈꾼다. 서점에서만 책을 샀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온라인으로 책을 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시대마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일을 이루시고, 새롭게 다가오는 미래의 문을 어떻게 열어주실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 장갑생 권사(강촌공동체)
김형석 교수(전 연세대 철학과)가 ‘원더풀 라이프’ 세미나의 첫 문을 열어주셨다. 더욱 뚜렷한 면모로 입술의 열매를 나눠주시며 인간의 존엄성으로 우리를 일깨워 주셨다. “인생은 고생이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이라면 멋있지 않은가?”라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 나눠주셨다. 그 강의를 듣고 있는 늦은 밤, 기억의 창고에 걸어뒀던 나의 70대가 떠올랐다.
60대 중반부터 여러 육신의 아픔을 겪다가 70세를 바라보는 겨울에 팔이 골절됐다. 팔에 깁스해서 주저앉아 있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감사하라고 하셨다. “감사할 게 없는데 어떻게 감사해요?”라고 투덜거렸는데도 계속 감사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의 강권 가운데서 “어떻게 감사하지?”라고 묻다가 감사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한 번 한 사람에게 감사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3년 가까이 편지를 보내니까 편지 보낼 사람이 생각나지 않아서 “나는 나에게 감사하는가?”라고 물었다. 나에게 편지를 쓰려고 앉았는데 가시처럼 걸려있었던 어떤 기억이 툭 튀어나왔다. 그것을 정리하고나서야 무의식에 걸어두었던 올무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두란노서원 출판부에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으로 시작되는 ‘들어가는 말’을 보내 출판을 타진했다. 두란노서원에서는 저작권 문제에 걸린다며 첫걸음에 퇴자를 당했다. 나는 2001년 등단해서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시인이다. <내 뼈의 뼈>, <풀섶 풀잎사귀 귀로 앉아>, <몇 갈래 길에서 이미마을로>, <이슬은 영원하다> 4권의 시집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좋아도 남의 시를 쓸 수 없는 마당에 내 시로 교체하면 어떨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수요예배에서 영화감독 김상철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마약에 중독된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는 그 마음이 공감되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도 그들을 돕는 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번째 스무 살이라며 특별한 오브제를 만들어 준 딸 덕분에 내 나이가 들통났다. ‘정말 80년을 살았구나’ 스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불만이 들끓고 있는 사회에 ‘감사’라는 화두를 던질 수 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내 등을 떠밀 듯 책을 출판하게 하셨다. 이미 준비된 글로 말이다.
<내가 나에게 쓰는 감사편지>라는 제목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표지를 고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한 천사를 보내 주셨다. 그 더분에 놀랍게 예쁜 책이 출간되었다. 모든 수익금은 베텔중독센터에 보내기로 했다.
그날 밤, 김형석 교수가 뇌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면서 100세 시대를 살아내시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셨다. 하나님이 60대에 나에게 시(詩)를 선물로 주셨고, 70대에는 감사를 주셨다. 이제 80대에는 무엇을 더하여 주실까? 하나님 뵙는 그 날까지 원더풀 라이프는 계속될 것이다. 나의 85세를 꿈꾼다. 서점에서만 책을 샀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온라인으로 책을 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몰랐던 시대마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일을 이루시고, 새롭게 다가오는 미래의 문을 어떻게 열어주실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 장갑생 권사(강촌공동체)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