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수컷 쥐 두 마리로 새끼 쥐를 만드는 과학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특별기고
“수컷 쥐 두 마리로 새끼 쥐를 만드는
과학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과학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창세기> 11:6)에서 하나님은 야심 차지만 인류의 오판이었던 건설 프로젝트를 보시고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건설을 중단시키신 이유는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이 함께 일하면 적어도 이 지구에서 인간이 신과 같은 능력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은 타락한 사람들에게 문제가 된다. 바벨탑을 건설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계획과 목적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의 이름’을 내도록 놀라운 인간의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생물학적 아빠 쥐로 살아있는 새끼 쥐를 만든 과학팀에 관한 기사를 보자마자 바로 바벨탑이 떠올랐다. <네이처지>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낸 일본 과학팀의 연구를 설명했다. 먼저 두 마리의 수컷 쥐 꼬리에서 피부 세포를 채취한다. 이후 이를 어떤 종류의 신체 조직으로도 분화할 수 있는 세포인 ‘유도 만능 줄기세포’로 전환했다. 과학자들은 이 줄기세포를 여성 세포로 변형시키는 약물로 처리했다. 그다음 차례로 난자기능을 하는 세포를 만들고 수정시켜 암컷 쥐에게 이식시켰다. 99% 실패율을 거치고 마침내 두 마리의 유전학적 아빠 쥐를 가지고 엄마 쥐 없이 살아있는 새끼 쥐 몇 마리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새끼 쥐들은 자라나 정상적으로 번식까지 했다.
<AP 통신>은 “사람들에게도 같은 기술을 사용할 가능성이 멀지만 존재하는 기술”이라며 이 조용한 부분을 요란하게 알렸다. 이 프로젝트 배후에 있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난자 기증이 가지는 윤리적, 법적 문제를 피해 가면서 남성 동성 커플에게 생물학적 아이들을 가질 수 있는 서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기증자의 난자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지만, 생식 과정에서 엄마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무섭도록 터무니없는 생각은 잠시 접어보자. 과학저술가들은 정상적인 번식 생물학을 ‘피해야 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의 꿈이 실현되는 돌파구로써 이 기술이 도래할 것을 오랫동안 예측해왔다. 이 방법이 가지는 엄청난 실패율과 심각한 비효율성 때문에 인간이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개념을 증명하는 것은 이 모든 사회적 우대 정책 세트와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분명히 포유류 종에서 같은 성별의 두 개체로부터 살아있는 자손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 보이는 것이다. 이 시대에는 고인이 된 공상과학 소설가인 마이클 크라이튼의 말이나 적어도 그의 소설 <쥬라기 공원>을 영화로 각색한 내용을 인용할 만하다. 그 영화에서 제프 골드블럼이 맡았던 인물은 “당신 과학자들은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너무 몰두한 결과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멈추지 않았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그의 요점은 과학은 단지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학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절대 할 수 없다. 과학은 기술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윤리를 가르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학이나 과학적 신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C.S. 루이스는 <인간 폐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을 남겼다.
“우리는 소름 끼치게 단순한 방식으로 기관을 제거하고 그 기관이 기능하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가슴이 없는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에게서 미덕과 진취성을 기대한다. 우리는 명예를 비웃으면서 우리 가운데 반역자들이 나오면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말을 거세시켜 놓고 그 말이 새끼를 많이 낳기를 바란다.”
그는 이 글을 특히 교육에서 가치 판단을 없애려는 운동이었던 ‘주관주의’에 관해 썼었다. 이 글은 생식 과정에서 하나의 성을 제거하려는 바벨탑 같은 프로젝트에도 섬뜩하게 잘 적용된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간단하다. “왜 우리는 이 기술을 조사하는가?”, “이 기술은 무엇을 치료하고자 하는가?”, “이 기술이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덜 인간답게 만들 것인가?”
성관계와 생식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어떠한 ‘의무’도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과학적 바벨탑을 쌓고 있다. 과학이라는 공유된 언어와 기술을 통해 우리는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C.S. 루이스가 관찰했듯이 우리는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제거하고, 생물학이 나타내는 사랑과 상호보완성을 차갑고, 냉소적인 기술로 대체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C.S. 루이스는 이러한 노력을 “인간 폐지”라고 불렀다. 엄마가 없는 아이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여성 폐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 척콜슨, 셰인 모리스
두 마리의 생물학적 아빠 쥐로 살아있는 새끼 쥐를 만든 과학팀에 관한 기사를 보자마자 바로 바벨탑이 떠올랐다. <네이처지>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낸 일본 과학팀의 연구를 설명했다. 먼저 두 마리의 수컷 쥐 꼬리에서 피부 세포를 채취한다. 이후 이를 어떤 종류의 신체 조직으로도 분화할 수 있는 세포인 ‘유도 만능 줄기세포’로 전환했다. 과학자들은 이 줄기세포를 여성 세포로 변형시키는 약물로 처리했다. 그다음 차례로 난자기능을 하는 세포를 만들고 수정시켜 암컷 쥐에게 이식시켰다. 99% 실패율을 거치고 마침내 두 마리의 유전학적 아빠 쥐를 가지고 엄마 쥐 없이 살아있는 새끼 쥐 몇 마리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새끼 쥐들은 자라나 정상적으로 번식까지 했다.
<AP 통신>은 “사람들에게도 같은 기술을 사용할 가능성이 멀지만 존재하는 기술”이라며 이 조용한 부분을 요란하게 알렸다. 이 프로젝트 배후에 있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난자 기증이 가지는 윤리적, 법적 문제를 피해 가면서 남성 동성 커플에게 생물학적 아이들을 가질 수 있는 서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기증자의 난자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지만, 생식 과정에서 엄마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무섭도록 터무니없는 생각은 잠시 접어보자. 과학저술가들은 정상적인 번식 생물학을 ‘피해야 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의 꿈이 실현되는 돌파구로써 이 기술이 도래할 것을 오랫동안 예측해왔다. 이 방법이 가지는 엄청난 실패율과 심각한 비효율성 때문에 인간이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개념을 증명하는 것은 이 모든 사회적 우대 정책 세트와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분명히 포유류 종에서 같은 성별의 두 개체로부터 살아있는 자손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 보이는 것이다. 이 시대에는 고인이 된 공상과학 소설가인 마이클 크라이튼의 말이나 적어도 그의 소설 <쥬라기 공원>을 영화로 각색한 내용을 인용할 만하다. 그 영화에서 제프 골드블럼이 맡았던 인물은 “당신 과학자들은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너무 몰두한 결과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멈추지 않았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그의 요점은 과학은 단지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학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절대 할 수 없다. 과학은 기술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윤리를 가르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학이나 과학적 신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C.S. 루이스는 <인간 폐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을 남겼다.
“우리는 소름 끼치게 단순한 방식으로 기관을 제거하고 그 기관이 기능하기를 요구한다. 우리는 가슴이 없는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에게서 미덕과 진취성을 기대한다. 우리는 명예를 비웃으면서 우리 가운데 반역자들이 나오면 충격을 받는다. 우리는 말을 거세시켜 놓고 그 말이 새끼를 많이 낳기를 바란다.”
그는 이 글을 특히 교육에서 가치 판단을 없애려는 운동이었던 ‘주관주의’에 관해 썼었다. 이 글은 생식 과정에서 하나의 성을 제거하려는 바벨탑 같은 프로젝트에도 섬뜩하게 잘 적용된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간단하다. “왜 우리는 이 기술을 조사하는가?”, “이 기술은 무엇을 치료하고자 하는가?”, “이 기술이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덜 인간답게 만들 것인가?”
성관계와 생식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어떠한 ‘의무’도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과학적 바벨탑을 쌓고 있다. 과학이라는 공유된 언어와 기술을 통해 우리는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C.S. 루이스가 관찰했듯이 우리는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제거하고, 생물학이 나타내는 사랑과 상호보완성을 차갑고, 냉소적인 기술로 대체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C.S. 루이스는 이러한 노력을 “인간 폐지”라고 불렀다. 엄마가 없는 아이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여성 폐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 척콜슨, 셰인 모리스
원문: breakpoint(20230330)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