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독자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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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아버지

있잖아요? 아버지

 

“열여섯 나이에 의용군 자원입대할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방송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던진 첫 질문이었습니다. 아스라하게 멀어 진 6,25 전쟁 당시의 일들을 새삼스레 되짚는 것은 심상찮은 근년의 정세와 무관하지 않아서일 겁니다.
그 때는 사회 전체 분위기가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습 남침을 당한 석 달 동안 피난하지 못 하고 서울에 남아서 온갖 궁핍과 공포를 겪어야 했던 민초들은 전세가 역전되어 날마다 듣는 북진 소식에 가슴이 격동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이르렀다는 뉴스에 이제야말로 통일이 코앞에 다다랐다는 기대에 부풀어 폐허가 된 집이며 학교 건물들은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웃집의 남학생들은 저마다 의용군에 자원을 하고 한 끼 먹을 것이 없는 어른들도 죽 한 그릇을 서로 나누며 희망에 차 있었습니다, 살아서 지옥 같은 석 달을 견디어 낸 것만으로 족했으니까요
그러나 벌떼같이 밀려오는 중공군에 의해 다시금 피난 짐을 싸야만 했습니다. 여학생이라고 가만있을 수 있느냐고 여자 의용군에 자원했던 소녀들은 멋도 모르고 고된 훈련을 받던 중에 인천으로 실려 가 군 수송선에 실려 부산으로 가야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나 부산항에 다다른 일행은 모래흙이 버적거리는 헌 교실에 짐짝처럼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유리창이 깨어져 바닷바람이 사정없이 옷 속으로 스미는 마룻바닥 에서 새우처럼 삼삼오오 부둥켜안고 잠을 청하는데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가 합창이 들려왔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것입니다. 벌떡 일어나 어둠에 묻힌 밤을 따라 부르려는데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감수성 예민한 예술소대 일행은 왕하고 단체 울음이 터졌습니다, 달은 왜 그다지 밝고 파도 소리는 어찌 그리 높던 지요.
대신동 수원지에서 사격 훈련까지 마친 것은 이른 봄 새싹이 움틀 무렵이었고 제일 처음으로 물어물어 면회를 와 준 사람은 목사님이었습니다, 공부할 나이에 이게 웬일이냐며 돈 3만환을 주고 가셨습니다. 동료 한 아이와 외출을 해서 바이론 쉘리 등 시집과 한아운의 소설 등 둘이 들기에도 버거울만큼 책을 사 들고 와서 도서실을 꾸몄습니다. 그 배고프고 어린 나이에 꽈배기 하나도 사 먹지 않고 몽땅 책을 사 가지고 왔던 것을 오랫동안 스스로 신통하게 여겼습니다. 늦둥이 철들 듯 오랫동안 지켜 주신 분의 영광을 그렇게 가로챘던 것을 피가 맺히게 회개합니다.
/ 고은정 권사(서초A공동체)

고은정 권사

작성자  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