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나를 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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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나를 살렸어요”
백혈병 진단 받고도 반주자 자리 지킨 장정윤 자매
요셉공동체에 가면 짧은 머리를 한 예쁜 자매가 반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녀의 이름은 장정윤이다. 요셉공동체 지체들에게 그녀에 대해 물으면 한결같이 “요셉공동체의 살아있는 예배자”라고 소개한다.
장정윤 자매는 11년 동안 요셉공동체를 섬겼다. 그동안 공동체에서 받은 사랑과 기도, 후원이 그녀를 요셉공동체의 살아있는 예배자로 세웠다. 그녀의 삶에 큰 위기가 있었다. 스물다섯 살에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녀는 투병 중에도 요셉공동체 반주자의 자리를 지켰다. 숨은 진주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토요일에는 요셉공동체 예배팀 팀장으로, 주일에는 어머니가 섬기는 교회 반주자로, 평일에는 청소년 밴드부 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가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 김미림 기자 mirim@onnuri.org
그녀에게는 몹시 아픈 날로 기억되는 순간들이 있다.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집안 곳곳에 경매 딱지가 붙었다. 친척집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생활은 고되고 팍팍했다. 고추장에 밥만 비벼먹던 시절을 보냈다. 다섯 가족이 방 한 칸에 옹기종기 모여 눈물 흘리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작은 교회 목사다. 그녀는 엄마에게 아웃리치를 가고 싶다며 기도를 부탁했는데 그 기도가 응답됐다. 전액 후원을 받아 아웃리치를 갈 수 있었다. 가기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는데 아웃리치에서도 통증이 있었다.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렸다. 아웃리치에서 돌아오자마자 병원을 찾았는데 MRI 검사를 받아야한다고 했다. 병원비가 없어 MRI 검사를 받지 않고 한의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잇몸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치과 치료비도 부담이었다. 진료비 6만원이 없어 친구가 대신 진료비를 냈다. 그 날 저녁, 고열에 시달렸다. 온 몸에 큰 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음 날 찾은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님, 제발 돈 안 드는 병이었으면 좋겠어요. 돈이 없어서 아프면 안돼요.”
↑ 장정윤 자매의 병원에 방문해 준 온누리교회 지체들.
초밥과 회 그리고 흰 봉투
그녀에게 10월 7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다급히 찾은 병원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사주겠다고 말했다. 엄마의 말을 듣고 앞으로 벌어질 일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예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회와 초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해 질 무렵 검사결과가 나왔다. 비참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었다. 당장 항암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근처 미용실에 갔다.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그리고 그녀가 찾은 곳은 투명한 커튼이 쳐진 무균실이었다. 그곳은 차가웠다. 4인실 침대에서 홀로 지내야했다. 무균실은 보호자 출입도 금지된 곳이다. 무균실 입원 첫 날 엄마가 간호사에게 간곡하게 부탁해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녀는 투병 중에도 밝았다. 그녀가 해맑게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요셉공동체 지체들의 사랑 때문이었다. 10월 7일 입원 한 이후 요셉공동체 지체들이 끊임없이 병문안을 왔다. 병문안 온 인원이 무려 400여 명이나 됐다. 그들의 문병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한 팀이 오면 다른 한 팀이 대기했고, 또 다른 팀은 뒤에서 기도를 했다. 백짓장 같이 하얀 얼굴에 부르튼 입술을 본 공동체 한 형제가 장정윤 자매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하나님, 정윤 자매 가정에 물질문제도 해결해주십시오.”
그 때 저 멀리서 엄마의 아멘소리가 들렸다. 병문안 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던 찰나에 엄마의 손에 흰 봉투가 쥐어졌다. 봉투를 주고 간 형제는 꼭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흰 봉투에는 200만원이 들어있었다. 그녀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것은 하나님의 증거야”
백혈병이 완치되기까지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1차 항암치료는 40일 동안의 고통을 의미했다. 가난과 백혈병은 역설적으로 그녀의 가정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요셉공동체는 그녀가 투병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치료비를 모금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기 위해서 공동체 멘토들과 협의체 청년들이 매일 찾아와 기도해주고, 격려해줬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요셉공동체를 담당했던 교역자는 통닭이며, 쌀을 짊어지고 그녀의 집을 심방했다. 또한 그녀의 혈액형은 AB형이었다. 그녀가 항암 치료를 할 때마다 요셉공동체 혈액형 AB형인 형제들이 달려와 수혈을 도왔다.
2차 항암치료 중 기적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골수 공여자를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백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골수이식 공여자를 3명이나 찾았다. 건강하고 젊은 남성 공여자에게 골수를 이식 받기로 했다. 의사는 하루 정도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그녀의 가족이 여행을 떠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공여자가 골수이식을 포기했다는 소식이었다.
또다시 슬픔이 찾아왔다. 골수이식을 받지 못하면 또 한 차례 항암치료를 받아야했다. 끝없는 육체적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면역력이 저하되면서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점막이 헐어 빨간 소독약으로 입 안을 매번 소독했다. 물을 마시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머리카락도 빠지기 시작했다.
의사가 그녀에게 또 다른 치료법을 제안했다. 자가 골수이식이었다. 타인의 골수 이식은 부작용이 많지만 재발율이 없고, 자가이식은 부작용이 없지만 재발율이 50%나 됐다.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았다. 결국 자가 골수이식을 받기로 했다. 골수이식은 고용량의 항암제를 투여하는 고통이 뒤따랐다.
자가 골수이식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새 삶을 찾았다. 감사가 넘치는 제2의 인생이 활짝 열렸다. 1년 넘게 투병생활 하면서 성격도 바뀌었다. 소심하고, 어둡던 그녀가 밝고, 감사가 넘치는 사람으로 변했다. 짧은 헤어스타일도 익숙해졌다. 모자를 벗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녀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여러 차례 기적을 경험했다. 한번은 타인의 골수이식을 받으려면 조혈모세포 협회에 800만원을 납부해야 했다.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당시 요셉공동체를 담당하던 교역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목사님은 외국에 가기 전에 봉투를 건네셨다. 요셉공동체 멘토님이 헌금을 하신 것이었다. 그 봉투에는 1천만 원짜리 수표가 들어있었다. 퇴원할 무렵 원무과에서 전화가 왔다. 병원비를 찾아가라는 연락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한 요셉공동체 청년이 그녀의 병원비를 계산하고 사라진 것이었다. 그녀는 숨은 천사들을 통해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2011년 5월, 그녀는 병동에서 유일하게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가 되었다. 지난 11년 동안 한시도 예배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던 그녀에게 일어난 기적이었다. 그녀는 지금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제2의 인생을 힘차게 살고 있다. 그녀에게 기적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 하냐고 물었다. 힘차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예배가 나를 살렸어요.”
작성자 김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