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렙공동체의 영원한 멘토 ‘강찬석 장로’
12년 멘토생활 은퇴 … “새벽이든 밤이든,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갔다”
지난 5일, 갈렙공동체 예배에서 특별한 순서가 진행됐다. 공동체 초창기부터 멘토로 섬겨온 강찬석 장로 멘토 은퇴식이 바로 그것이다. 강 장로는 갈렙공동체 창립부터 지금까지 12년 동안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청년들을 섬기고 또 섬겼다.
새로운 비전을 품고 떠나는 강 장로를 축복하는 갈렙공동체 청년들의 마음 한편이 시렸다. 그 동안 강 장로가 보여준 헌신과 열정을 도저히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들도, 리더십들도 아쉬움에 눈물 흘렸다. 참아보려고 애썼지만 한번 터져 나온 울음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지난 12년 동안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탓일까. 강 장로도 석별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고 싶어 갈렙공동체의 영원한 멘토 강찬석 장로를 만났다. 그는 일흔이 넘었지만 선한 눈웃음이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정현주 기자 joo@onnuri.org
강찬석 장로는 1988년 온누리교회에 등록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사역하고 있다. 처음 7년은 교도소사역을, 이후에는 군선교사역을 14년 동안 섬겼다. 2003년부터는 대학청년부 갈렙공동체 멘토로 섬겼다. 갈렙 청년들의 대부(代父)가 됐다.
“갈렙 공동체가 처음 생겼을 때는 모임 장소조차 없었어요. 할 수 없이 우리 집에서 기도모임을 했습니다. 아내(최종순 권사)가 밥 해먹여가면서 말이죠.”
강 장로 부부는 물론 아들도 갈렙공동체와 인연이 깊다. 갈렙공동체 초대MC가 강 장로의 아들이다. 이 정도면 강 장로가 아니 강 장로 가족이 갈렙공동체와 시작을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년 동안이나 갈렙공동체를 섬기던 강 장로가 멘토 자리에서 은퇴한 이유가 무엇일까. 새로운 비전과 후배 멘토들을 위해서다.
“갈렙공동체에는 15명의 멘토들이 있어요. 제가 터줏대감 마냥 버티고 있으면 청년들과 다른 후배 멘토들이 친해지기 어려워요. 그래서 은퇴를 결심했어요.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알아야지요.”
노자가 말한 공수신퇴(功遂身退,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가 떠올랐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역시 아름다웠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강 장로는 갈렙공동체 청년들과 12년을 동고동락했다. 청년들을 가족처럼 여겼다. 때로는 가족보다 더 친한 관계를 맺었다.
“갈렙공동체 멘토 역할은 나에게 사역이 아니었어요.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일을 어떻게 사역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강 장로는 새벽이든 밤이든 청년들이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마다않고 달려갔다. 그런 강 장로의 진심과 열정은 청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갈렙공동체 청년들도 그를 친아버지 이상으로 따랐다. 메신저, 전화, 문자 등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락했다.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했다. 오죽했으면 한 청년이 이런 농담까지 했을까.
“장로님한테 하는 것처럼 친아버지한테 했으면 아버지가 신나서 저를 업고 다니셨을 거에요.”
잊을 수 없는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번은 청년 한명이 결혼식을 앞두고 급하게 연락이 왔어요. 저보고 부모 자격으로 결혼식장에 와달라고 하더군요.”
알고 봤더니 부모와 진로문제가 뜻이 맞지 않아 혼자 한국에 나와 살고 있던 형제였다. 예수 믿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하던 부모가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를 한 것이었다. 아무리 청년들을 가족처럼 아끼는 강 장로도 이 부탁은 들어주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를 찾아와 펑펑 우는 신랑신부를 보고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영적인 아버지로서 내가 대신 결혼식에 참석했어요.”
이처럼 청년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강 장로를 찾았다. 그런 청년들이 때로는 귀찮기도, 피곤하기도 할 법 한데 강 장로의 대답이 놀랍다.
“청년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멘토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부모한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털어놓는 청년들을 어떻게 외면하겠어요.”
힘들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이트클럽에서 예배드렸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예배드리기 위해서 술과 담배 냄새가 찌든 곳을 청소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어요. 예배드릴 때마다 그 작업을 해야 했지요. 힘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기도 해요.”
“마지막 한 자리 남았을 때 나를 불러다오”
12년 동안 갈렙공동체 담당목사만 10명도 넘게 바뀌었다. 예배 장소도 마땅치 않아 나이트클럽, 테크노마트 등을 전전해야 했다.
“예전에는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예배를 드렸는데 지금은 300명 정도로 줄었어요. 예배당이 비어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지요.”
그래서일까. 청년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청년들에게 당부했다.
“얘들아, 열심히 해서 빈자리를 채워라. 너희들은 할 수 있다. 빈자리 다 채우고 마지막 한 자리 남았을 때 나를 불러다오”
강 장로의 사랑과 열정이 갈렙공동체 청년들의 가슴 깊이 뿌리 박혔을 것이다.
<멘토님, 감사합니다!>
“청년보다 더 청년 같은 장로님”
장로님은 지난 12년 동안 갈렙공동체 청년들을 지켜주신 영적 아버지셨습니다. 갈렙공동체 청년들이 아웃리치 갈 때마다 챙겨주시고, 함께 해 주셨지요. 입으로만 하는 멘토링이 아니라 행동과 섬김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2012년 몽골 아웃리치팀을 위해 기도해주시면서 우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때 장로님께서 청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의 일이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 달려오시던 장로님은 갈렙공동체의 영원한 멘토입니다.
늘 우리 곁에 계셨기에 헤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청년보다 더 청년 같은 장로님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힘든 일이 있거나, 지쳐 있을 때 마다 신경써주시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던 장로님을 기억합니다. 저희들도 장로님을 따라 열정적으로 살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강신희 자매(양육MC)
“사랑합니다, 장로님”
장로님은 아마 저보다 갈렙공동체 지체들의 이름을 더 많이 알고 계실 겁니다. 그만큼 청년들에게 관심이 많으셨지요. 청년들을 만나면 한 사람 한 사람 악수해주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언젠가 장로님께 “바쁘신데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더니 “나는 쉬고 싶지 않아, 수정아. 천국 가서 쉴 거니까 지금은 열심히 달릴 거야”라고 말씀하셨던 것 기억하세요? 그때 제가 많이 지쳐있을 때였는데 장로님의 그 말씀 덕분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장로님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리더로, 품고 계신 열정 이 시들지 않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장로님이 가신 그 길을 따르겠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사랑합니다 장로님!
/이수정 자매(다락방장)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