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대청

청년,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다/W공동체

 

“받은 사랑 돌려주는 것이 제 꿈입니다”
청소년들 가르치고, 사랑 베풀고 있는 W공동체 정채린 자매

 

청춘의 터널을 쉽게 빠져나가는 정답은 없었다. 지난 1일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만난 W공동체 새가족 그룹 순장 정채린 자매는 자신을 성공한 청년은 아니지만 평범함, 성실함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청년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사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에게 질 좋은 교육과 사랑을 전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녀는 지난해 W공동체 부대표 MC로 섬겼고, 올해는 새가족 순장으로 섬기고 있다. ‘중보기도자’라고 불릴 때 가장 기쁘다고 했다. 그윽하게 향기 나는 그녀가 궁금해졌다. 그녀가 만난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었다.
/ 김미림 기자 mirim@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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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린 자매는 유명 문제집 회사에서 중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인터넷 강사다. 사실 그 직업은 그녀가 꿈꾸던 것이 아니었다. 3년 동안 임용고시를 준비했는데 실패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아르바이트 하게 되었는데 그 일이 그녀를 인터넷 강사로 만들어줬다.
그녀는 학창시절 만난 좋은 선생님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녀도 교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다. 자신도 좋은교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에는 교사의 직분이 남달라보였다. 쉽게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교사의 역할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교사가 되는 꿈을 꾸고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3년 동안 임용고시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학생들을 가르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3년 동안 준비한 임용고시는 매번 낙방이었다. 마지막 시험만 통과하면 합격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실패자라는 딱지가 붙은 것 같았다. 고된 고시생 생활을 해왔다. 눈뜨면 책상에 앉아 공부했다. 그런데 시험만 보면 실패하고, 또 공부하기를 반복했다.
“돈 없는 아이들이 공부 못하고, 돈 많은 집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것을 보면서 열등감에 사로잡혔었어요.”
어느 날. 세 번째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의무감으로 책상에 앉아있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길을 찾아야하는지 고민하면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임용고시 준비생이 아니라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그런데 이력서를 쓰면서 한계를 느꼈다. 자신의 스펙과 학력, 경력이 아무것도 없었다.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마구잡이로 이력서 쓰고 지원하기를 반복했다. 교사, 강사, 과외 선생님으로 용돈벌이를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벽돌이라도 쌓겠습니다.”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인터넷 강의 회사인데, 이력서를 지참하고 면접을 보러오라는 전화였다. 순간 당황했다. 이력서를 넣은 적 없는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의심스럽고, 회사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냥 안갈 수는 없었다.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하겠다고”기도한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모든 주권을 맡기기로 해 찾아간 곳은 문제집 회사였다. 면접결과는 합격이었다.
“저희 회사에서는 신입교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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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강의하는 정채린 자매.

 

그 한마디가 그녀를 살게 했다

 

처음에는 회사 입사 조건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 수준의 보수에 계약직이었다. 그래도 경력에 한 줄 정도 추가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해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다.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다보니 러브콜이 들어왔다. 그때 그녀는 청년들이 직장에 대해 갖는 고민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됐다. 문제는 바쁜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신앙을 돌볼 겨를이 없어지고, 삶의 목표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임용고시 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되었다. 그녀가 다시 찾게 된 것은 기도의 자리였다. 그 모든 과정이 믿음의 훈련 과정이 있었다.
그녀는 20대 초반에 가정에서 홀로 믿음 생활을 해왔다. 홀로 믿음 생활은 이어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힘들 때마다 그녀는 공동체에 와서 예배를 드렸다. 기도와 섬김이 그녀의 신앙을 지켜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한국 문학작품을 모르는 선교사 자녀들에게도 자신이 녹화한 동영상과 문제집을 보냈다. 그렇게 선교지에서 국어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선교사 자녀들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한국 문학과 국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었다. 재능기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계약직 교사로도 섬기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 청소년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이 교실이기에 찾아 간 것이다. 그녀가 청소년들을 이토록 애타게 찾아가는 이유는 자신이 교사로부터 받은 사랑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교사에게 받은 사랑을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녀가 5살 때, 아버지가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로인해 가정 경제가 무너지면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가보고 싶던 학원한번 가보지 못했다. 출발선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100미터 달리기를 해도 늘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똑같은 출발선에서 뛰었지만 사교육을 받은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앞서 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희망이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빛이 임했다. 그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선생님이 바로 그 빛이었다. 그녀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두 번이나 쓰러졌다. 그녀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뇌경색 경험이 있는 아버지가 두 번이나 쓰러진 것은 삶의 끝자락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아침 학교 책상에 앉아 울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엎드려 있으면 담임선생님이 찾아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주었다.
“오늘은 괜찮니? 좀 어때? 힘드니?”
그 한마디가 그녀를 살게 했다. 아버지도 건강을 회복하셨다. 그때 그 사랑을 잊지 못해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그토록 나눠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삶이자 희망이 되었다.

 

제자에게 온 한통의 편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제가 받은 사랑을 돌려줘야죠.”
그녀의 꿈은 ‘즐기는 직업, 제자를 낳는 직업’이다. 그녀에게는 이미 수많은 제자들이 있다. 그녀가 인터넷 강의와 계약직 교사로 열심히 뛸 수 있는 원동력은 제자들 때문이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눠주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어느 날 청소년들을 가르치던 중에 한 아이가 책상에 엎드려 자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왜 그렇게 피곤한지 물었다.
“밤에 잠을 안자니까요.”
그녀는 그 학생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그 학생의 어머니는 가출했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다.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는 언어폭력을 일삼았다. 그녀는 그 학생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눠주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실천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 친구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앞으로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은데 확률적으로는 희박한 성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 성적으로는 택도 없겠죠? 저도 알지만 노력할겁니다. 성인이 되어 정신과 의사가 된다면 첫 월급으로 선생님에게 밥을 살 거에요.”
그녀는 다짐대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돌려주고 있었다. 사회에 아름다운 빛을 비추고 있다.

작성자  김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