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성인

[맛있는 말씀 해설] “…평생을 여호와께 바치고 결코 그 머리에 칼을 대지 않겠습니다”(삼상 1:11).

맛있는 말씀 해설
 
“…평생을 여호와께 바치고 결코 그 머리에 칼을 대지 않겠습니다”(삼상 1:11).
 
성경에 ‘하나님은 한나에게 자식을 주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지 않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문이나 대문을 닫을 때’ 표현한다. 하나님이 한나의 태의 문을 닫으신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한나는 태의 문이 닫힌 것으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다만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에게 업신여김과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비참함을 느꼈을 뿐이다. 
‘결핍’ 자체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악하므로 결핍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받는 것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 하지만 스스로 결핍에 대한 세상의 가치 기준을 버릴 때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을 붙들고 일어설 때만 회복되고, 바로 설 수 있으며, 하나님 은혜 안에 있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믿음이 결핍되고, 세상 것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그리스도인은 사라지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한나가 주변에 의해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그녀의 기도는 결핍이 채워지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나에게는 결핍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때론 결핍이 길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단은 결핍을 무질서하게 흔들어댄다. 그래서 결핍의 환경을 이길 힘이 필요하다. 결핍을 이길 힘은 바로 어린 양이 지셨던 십자가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결핍을 이기기 위해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변에서 놀림 받는 상황이 한나의 입을 마르게 했다. 그리고 무릎 꿇게 했다. 하늘을 향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보인다. 불평하며 한탄하던 것들이 중지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보인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억울하고 답답하다는 한탄뿐인 고백이다. 
한나가 기도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내 마음에만 집중하면 실수를 저지른다. 한나의 기도를 한마디로 말하면 ‘복수나 원한은 구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고통을 발견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나는 강력하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다. 한나에게도 아이가 없었고,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하나님에게도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람이 없음을 발견했다. “나만 아들이 없는 게 아니야! 하나님에게도 아들이 없구나! 하나님의 나라를 살릴 아들이 필요하구나!”를 발견하고 기도의 마지막에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십시오”라고 요청한다.
한나는 사실 ‘아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히브리어로 아들을 뜻하는 ‘벤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씨’의 의미가 있는 ‘제라’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아들 대신 더 넓은 의미로 ‘씨’를 달라고 한 것이다. 즉, 이스라엘에 약속된 아들을 구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씨는 사단과 싸우는 영적으로 새로워진 아담의 후손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사단의 의도를 막고 승리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제라’는 <창세기>에 나오는 약속의 본문에서 여호와의 언약을 믿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인 메시아의 씨를 뜻한다. 
한나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비참함을 막기 위해 아들을 구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던 사람이었다. 한나의 시선은 하나님의 마음에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아들’이 필요했다. 제사장 엘리는 나이가 늙고 구별 능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그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이미 타락했다. 제사장만 타락한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 타락했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치유할 아들을 기다렸다. 
한나의 기도는 복수와 채움을 위한 게 아니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기도의 단어가 바뀐다. 
“제게 유익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필요한 아들을 주십시오. ‘벤’이 아니라 ‘제라’를 주십시오” 
한나는 기도대로 아들을 얻게 된다. 그 이름이 ‘사무엘’이라고 성경에 기록한다. 이것이 믿음이고, 신앙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기도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기도하면 이 길이 답을 얻는 길이며, 살길임을 깨달을 것이다.
/ 조동욱 목사(양재B공동체)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