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성인

[맛있는 말씀 해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요 9:3).

맛있는 말씀 해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요 9:3).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만난 예수님께 “랍비여,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제자들이 물었다. 그들에게 고통은 반드시 누군가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엎었다.
‘드러내시려는 것이다’의 원어 ‘φανερωθῇ(파네로테)’는 ‘드러내다’, ‘명백히 보이게 하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일이 단지 육체적 치유를 넘어 더 깊은 영적 진리를 보여주기 위함임을 암시한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신 직후, 이 눈먼 사람에게 실제로 빛을 주심으로써 그분이 영적 어둠을 몰아내는 참 빛이심을 증명하셨다.
우리는 ‘인과응보’ 논리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좋은 일은 내 노력의 결과이고, 나쁜 일은 내 잘못의 결과라고 여긴다. 내가 삶의 주인이 되어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려는 것이다. 종교개혁가 존 칼빈은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행운이라고 부르는 우연적인 일들조차 다스린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이 모든 상황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일깨워 준다.
나에게도 이 진리를 깨닫게 된 경험이 있다. 얼마 전 어머니가 소천하셨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어머니는 홀로 나와 여동생을 키우시느라 많은 고난을 겪으셨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내가 믿음 안에서 자라는 것을 당신 삶의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셨고, 나는 그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아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어느 주일, 예배를 마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의 휴대폰을 확인했더니 내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가 “엄마,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연락드릴게요”였다. 한 달 전 메시지였다. 그 순간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내가 좀 더 살 가운 아들이었다면’이라는 후회와 함께 어머니의 죽음이 마치 내 책임인 것처럼 느껴졌다. 깊은 자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런데 성경을 묵상하던 중에 오늘 본문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하나님이 “네 엄마의 죽음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나의 뜻”이라는 분명한 마음을 주셨다. 그 순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 어머니의 죽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라 하실 수 있습니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네 잘못이 아니다. 내 계획이다”라는 내 안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명확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하나님은 ‘아버지에게 연락하라’는 또 다른 마음을 주셨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순종하고 20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께 어머니의 소식을 알렸다. 어머니 장례 이후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긴 시간 사업 실패와 배신으로 많은 아픔을 겪으셨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믿음에서 멀어져 계셨다. 그 순간 ‘하나님이 아버지를 만나게 하시려 했던 것이구나. 믿음 없이 살아오신 아버지의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 나를 아버지 앞에 세워놓으셨구나’를 깨달았다. 어머니는 이미 믿음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계시지만, 아버지에게는 구원의 회복이 필요했다. 지금은 아버지도 교회에 나가시며 믿음의 첫걸음을 내딛고 계신다.
청교도 토마스 왓슨은 “하나님의 섭리는 가장 작은 일에까지 미친다”고 말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 심지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조차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아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진리가 무거운 자책감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것을 기억하면 도움이 된다. 첫째,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분별하라. 둘째,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라. 셋째, 영적 멘토와 공동체의 지혜를 구하라. 특히 고통 중에는 공동체의 위로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등불이 된다.
<잠언> 16장 9절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앞길을 계획한다 해도 그 걸음은 여호와께서 이끄신다”고 말씀한다. 우리는 자기 책임과 하나님의 주권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최선을 다해 살 되, 모든 결과를 내 책임으로만 여기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요한복음> 9장 끝에서 눈먼 사람은 단순히 육체적 시력만 회복한 게 아니다. “주여, 제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영적 시력까지 얻었다. 우리의 고통도 단순한 시련이 아닌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혹시 삶에 이해하기 어려운 아픔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더 크고 놀라운 계획을 신뢰하며, 고통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로 사용되는 은혜가 우리 삶 가운데 있기를 소망한다.
/ 신현민 목사 (평택온누리교회)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