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아버지학교 4기’ 열려
요코하마 온누리교회는 지난 4월 18~20일 3일간 요코하마 아버지학교 제 4기를 열었다. 이번 아버지학교에는 45명이 참석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일본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있다. 수료생 45명중 44명이 일본인이었고, 스태프도 대부분 일본인이었다.주제강의와 조별 나눔을 하며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구호를 토대로 참가자들은 가정의 제사장인 아버지로서 정체성을 회복했다. 자기 육신의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무라이 정신과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왜곡된 아버지상을 바로잡았다. 순결 서약을 통해 세상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로 선 아버지가 될 것을 다짐했으며, 부인을 초청해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했다. 수료생들은 하나님 앞에서 남성으로 있는 것, 남편으로 있는 것, 아버지로 있는 것에 대한 커다란 사명을 확인하고, 재출발했다. / 유우주 선교사
▲ 수료생 45명은 아버지의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로 선 아버지가 될 것을 다짐했다. 요코하마 아버지학교 4기 간증 13년 만에 딸과 식사
히로야마 구니요미제 나이 61세가 되어서야 남편이 무엇인지, 아버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저는 딸이 둘 있습니다. 제가 결혼했을 때 아내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전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두 딸은 장녀가 고등학교 3학년, 차녀가 중학교 2학년일 때 함께 세례를 받았고 저도 그 다음해 피해망상이 심했던 어머니가 치유 받는 역사를 통해 48세에 세례를 받았습니다.제가 30대, 40대일 때 일본은 고도성장기로, 집을 사 소유하는 마이홈 주의가 경시되고, 소비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시대였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일하고, 부인은 가정을 지킨다’는 가치관으로 일이 우선이고 가족이 나중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일 때문에 항상 신경질적이었고, 술을 마시면 화를 잘 내 아내와 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곤 했습니다.차녀가 3살 때 머리를 감겨주는데 아이가 눈에 비누가 들어가 아프다는 것을 “그것도 못 참아!”하며 끝까지 감기기도 했습니다. 큰딸에게 공부를 가르칠 때는 이해를 못한다며 몇 번이나 머리를 때린 적도 있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딸들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친구들과 관계가 이상해졌습니다. 차녀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고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자주 화내고 폭행하여 아내와 부딪쳤고 가족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그런데 딸이 계속 좋아지지 않아 불안해서 목사님께 상담을 드리고 성지순례도 다녀왔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딸은 힘들 때면 언제나 “난 뭘 해도 안 돼, 그러니 나에게 기대하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떠올렸을 때 “기쁜 자와 함께 기뻐하며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들렸고, 십자가 밑에서 울고 있는 딸과 함께 우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딸의 눈물을 막아버렸던 나. ‘남자는 울면 안 된다. 강해야 한다’ 라고만 생각했었던 자신을 너무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그러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내 역할을 확실하게 알게 해 준 것은 아버지학교였습니다. 아버지학교에서 저는 제 아버지의 싫은 영향력, 싫은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위한 아버지상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후 딸들과 관계도 변하게 되었습니다.차녀와 사실은 13년 만에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매일 있었던 일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것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딸들에게 슬픈 기억을 남겼지만, 예수님이 그 시간에도 지켜주셨고 지금부터도 딸들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해 주실 것입니다.아버지학교에서 받은 은혜를 전국의 아버지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 수료생 45명은 아버지의 사명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로 선 아버지가 될 것을 다짐했다. 요코하마 아버지학교 4기 간증 13년 만에 딸과 식사
히로야마 구니요미제 나이 61세가 되어서야 남편이 무엇인지, 아버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저는 딸이 둘 있습니다. 제가 결혼했을 때 아내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전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두 딸은 장녀가 고등학교 3학년, 차녀가 중학교 2학년일 때 함께 세례를 받았고 저도 그 다음해 피해망상이 심했던 어머니가 치유 받는 역사를 통해 48세에 세례를 받았습니다.제가 30대, 40대일 때 일본은 고도성장기로, 집을 사 소유하는 마이홈 주의가 경시되고, 소비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시대였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일하고, 부인은 가정을 지킨다’는 가치관으로 일이 우선이고 가족이 나중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일 때문에 항상 신경질적이었고, 술을 마시면 화를 잘 내 아내와 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곤 했습니다.차녀가 3살 때 머리를 감겨주는데 아이가 눈에 비누가 들어가 아프다는 것을 “그것도 못 참아!”하며 끝까지 감기기도 했습니다. 큰딸에게 공부를 가르칠 때는 이해를 못한다며 몇 번이나 머리를 때린 적도 있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딸들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친구들과 관계가 이상해졌습니다. 차녀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고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자주 화내고 폭행하여 아내와 부딪쳤고 가족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그런데 딸이 계속 좋아지지 않아 불안해서 목사님께 상담을 드리고 성지순례도 다녀왔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딸은 힘들 때면 언제나 “난 뭘 해도 안 돼, 그러니 나에게 기대하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떠올렸을 때 “기쁜 자와 함께 기뻐하며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들렸고, 십자가 밑에서 울고 있는 딸과 함께 우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딸의 눈물을 막아버렸던 나. ‘남자는 울면 안 된다. 강해야 한다’ 라고만 생각했었던 자신을 너무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그러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내 역할을 확실하게 알게 해 준 것은 아버지학교였습니다. 아버지학교에서 저는 제 아버지의 싫은 영향력, 싫은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위한 아버지상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후 딸들과 관계도 변하게 되었습니다.차녀와 사실은 13년 만에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매일 있었던 일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것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딸들에게 슬픈 기억을 남겼지만, 예수님이 그 시간에도 지켜주셨고 지금부터도 딸들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해 주실 것입니다.아버지학교에서 받은 은혜를 전국의 아버지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