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 하나님의 일꾼의 승리
하나님의 일꾼의 승리
고후 6:1~10
/ 이재훈 목사
사도 바울을 통하여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기 때문에 복음을 체험한 사람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복음은 사도 바울의 말을 통해서만 전해지지 않았고 그의 삶을 통해서도 전해졌습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확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서입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큰 확신으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과의 갈등 속에 있었던 사도 바울이 어떤 태도로 어떤 권면을 주었는지가 고린도후서를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배경은 갈등 과정에서 오히려 복음이 무엇인지가 분명히 나타납니다. 인생에서 어떠한 갈등과 고난이 있다면 복음이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체험할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재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세상 속에 보여줄 좋은 기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받은 자,
은혜에 대하여 빚진자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우리가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십시오. 말씀하기를 ‘내가 은혜 베풀 만한 때에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1~2절).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것은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혜가 임했는데도 은혜가 없었던 사람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사도 바울의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동행하고,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이 은혜를 잊어버리고 은혜가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은혜가 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빚진자의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은혜에 대하여 빚진 자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그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사랑에 빚진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다른 사람도 경험할 수 있게 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 않을 수 없는 빚진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빚진 마음을 가진 사람 중에서 사역자를 부르십니다. 직분을 주십니다. 빚진 마음에 온전히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명자를 부르십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은혜에 빚진 마음을 가지고 온전히 사명에 충성된 사람에게는 고난도 무너뜨릴 수 없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어떤 환경과 시련, 세상의 유혹도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승리를 경험합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를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고, 은혜 속에 거하고,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하는 빚진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보다 복음을 변호하기를 원했고, 하나님 은혜의 사역자 된 자신의 직분을 변호하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와 그에 대한 분노와 자존심 등을 고린도후서에 쓰고 있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가 성령의 감동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변호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는 바울이 어떤 부르심과 직분을 확신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미 3장에서부터 자신이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5장에서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절’이라고 했습니다. 6장에서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들로 추천하려고 애씁니다. 우리는 많은 인내와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감옥에 갇히는 것과 난동과 수고와 자지 못함과 배고픔 가운데 하나님의 일꾼들로 지냅니다”(4~5절).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라는 말씀은 큰 영광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는 표현은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도와드린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절대 필요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일하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알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뿐입니다. 인간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나님이 일 할 수 있는 분이라면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일꾼이 최고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일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 영광을 체험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의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수록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처럼 복음에 빚진 마음을 가지고 온전히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았던 그에게 최고의 고난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에게는 고난이 피해 가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좋아하는 상황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상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결정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실 때 좋은 상황을 추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분은 고난의 삶을 사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은 고난의 삶이라고 각오해야 오해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 때 고난이 없는 삶을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고난으로부터 해방되고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고난으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온전히 사셔서 그리스도 외에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이 사라질 때까지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 될 때까지 고난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때도 고난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난을 다른 태도로 받게 됩니다. 고난을 완벽하게 이기게 됩니다. 고난 속에서 영광을 체험합니다. 고난 속에서만 증거할 수 있는 은혜의 증거자가 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삶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이것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삶입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은 은혜만 받고 은혜에 따라오는 고난은 거부하는 것입니다. 은혜에 따라오는 고난은 은혜가 전해지는 데 있어서 요구되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골로새서 1장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이 불충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완전한 고난이요, 다 이루신 고난입니다. 그러나 남은 고난이 있습니다. 은혜가 증거되는데 필요한 고난입니다. 은혜와 함께 고난받는 것을 마땅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혜에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헛되지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과의 화목,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과 일하는 삶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기에 은혜가 전해지는데 필요한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받은 고난의 목록을 나열합니다. 그 고난을 어떤 태도로 이겼는지를 설명하고, 마지막에 자신이 경험한 승리를 고백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들로 추천하려고 애씁니다. 우리는 많은 인내와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감옥에 갇히는 것과 난동과 수고와 자지 못함과 배고픔 가운데 하나님의 일꾼들로 지냅니다”(4~5절).
많은 인내가 요구되는 고난들입니다. 이 고난들을 세 개씩 한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습니다. 환란, 궁핍, 곤란은 사역자로서의 일반적으로 겪는 고난입니다 매 맞음, 감옥에 갇힘, 난동은 바울에게 특별히 주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가해진 고난입니다. 수고, 자지 못함, 배고픔은 바울 스스로 자초한 고난입니다. 바울이 이 고난을 어떤 영적 태도로 대했는지도 설명합니다.
“또한 우리는 순결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친절함과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합니다. 또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6~7절).
영적 태도에는 성령의 능력, 은사, 열매가 포함됩니다. 순결함, 지식, 오래 참음, 친절함은 성령의 은사이기도 하고 열매이기도 합니다. 개역개정에는 ‘성령님의 감화’라고 되어 있는데 성령님의 임재가 있고, 외적인 영역에서는 거짓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 의의 무기가 있습니다. 성령님의 임재가 때로는 어떤 성품과 인내와 은사를 통해 우리를 강건하게 하지만, 외적으로는 말씀과 의의 무기와 능력을 통해서 우리가 고난을 이기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꾼의 올바른 자세가 무엇입니까? 요약하면 ‘성령 안에서 인내하라’입니다. 외부의 상황과 사람들에 의해서 주어진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과 화목한 자, 은혜에 빚진 자,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자의 삶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고난을 이기고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성령의 능력,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이 임하면 세상의 엄청난 압력도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능력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나타나는 반전의 승리를 고백합니다.
하나님 일꾼의 승리
“영광과 모욕, 비난과 칭찬을 동시에 겪으며 일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하고 무명한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8~10절).
바울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 일꾼의 승리를 역설적인 수사학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속이는 사람 같으나 진실했습니다. 비방하는 사람들이 볼 때 바울은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기에 때로 계획이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어떤 유명한 사람의 추천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속이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는 진실을 했습니다. 그는 무명한 사람 같았지만 그는 유명했습니다. 이 시대에 바울은 유명하지만 당시 바울은 무명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그는 무명이었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유명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름을 아신다면 유명한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 같으나 살아 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많은 죽음의 위기를 겪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그가 살아났습니다. 바울은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못 박히는 죽음을 경험했지만 날마다 부활의 생명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의 삶에 얼마나 많은 근심이 있었겠습니까? 가장 큰 근심은 동족 유대인이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개척하고 돌보던 많은 교회도 그의 관심이었습니다. 가장 큰 근심을 준 교회는 고린도교회입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근심도 바울의 기쁨을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또 바울은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한 자로 가난한 자가 되신 것은 우리 모두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성령 안에서 체험한 사람은 이 땅에서는 가난한 사람 같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함으로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역설의 은혜, 역설적인 승리의 고백을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큼 체험할 수 있는지가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입니다. 세상적인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평가가 더 중요합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일꾼이 경험한 바울의 승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승리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때로 그 은혜가 증거되기 위하여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떠한 고난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인생은 깨어질지라도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에
그 이름의 능력이 우리에게 능력이 될 줄로 믿습니다.
고난을 이기고, 시험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며 승리하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승리를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