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주일강단 - 이 비밀이 크도다

이 비밀이 크도다
 
엡 5:21~33
/ 이재훈 목사 
 
가정은 우리의 가장 평안한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가장 치열하고 비참한 전쟁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에서는 우리의 허물과 죄와 모든 단점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배우자에게는 어떤 단점도 감출 수 없습니다. 결혼이란 나보다 나를 잘 아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입니다. 결혼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만 가지면 아픔을 겪고, 상처를 입게 됩니다. 결혼은 자기 발견의 방편이자 오직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통로입니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그 이상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두 사람의 사랑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32절에서 “이 비밀이 큽니다”고 했습니다. 부부의 관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를 통해 부어지는 비밀이 크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전체가 이 비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이 비밀이 드러났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는 결혼과 가정을 통해 이 비밀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남편이 되시고, 
영원히 우리를 기뻐하신다
 
“너는 여호와의 손에서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우리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될 것이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여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네 땅을 ‘쓸쓸한 여인’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너를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여인’이라고 부르고 네 땅을 ‘결혼한 여인’이라고 부를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좋아하시고 네 땅을 신부로 맞는 신랑이 돼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듯 너를 지으신 분이 너와 결혼하실 것이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듯 네 하나님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다”(사 62:3~5). 
이 말씀에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비밀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남편이 되시고, 영원히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창조의 목적이 깨어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영원히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와 결혼하시고 남편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기뻐하시고, 인간과 연합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지상에 결혼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성경은 결혼으로 시작해서 결혼으로 끝납니다. 창세기에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서로 부부가 되는 결혼 제도를 창설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을 보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임하는 것을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어린양의 대속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깨어졌던 관계가 화목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영원한 연합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결혼은 일종의 비유, 예표, 상징, 훈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은 이들이 하나님과 친밀감을 누리는 영원한 기쁨을 미리 맛보고, 바라보고, 그것을 향하여 살도록 일시적인 관계를 이 땅에 존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비밀이 크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심으로 그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머리 됨과 순종의 조화 회복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순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성령 충만은 혼자만의 영적 경험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순응하는 모습입니다. 가장 먼저 부부관계에서 나타납니다. 아내에게 먼저 명령을 주고 남편에게 명령을 줬습니다. 명령이 서로 다릅니다. 아내에게는 순종의 명령을 강조하고 있고, 남편에게는 사랑의 명령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은사와 같습니다. 아내와 남편에게 주어진 이 명령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이고, 시급하고, 중요하고, 절박하게 순종해야 할 명령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순종하듯 하십시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몸의 구주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들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22~24절). 
이 말씀은 시대적인 여성관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가정 안에서 회복되기 위해서 부부관계에 최우선으로 있어야 할 관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는 순종은 굴욕적이고 강압적이고 비인격적인 순종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기쁨과 감사로 인격적, 자발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순종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라면 순종이 기쁨이요 행복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아내의 머리라고 하신 것은 근원, 원천이라는 의미입니다. 군림하고 지배하고 마음대로 하는 머리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머리는 쉴 수 없습니다. 머리는 계속 몸을 섬기는 역할을 합니다. 머리는 섬김이자 희생입니다. 사랑의 수고입니다. 머리가 원천, 근원이라는 것은 몸이 머리로부터 모든 신경을 움직여서 살아가듯이 남편의 사랑이 아내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에게서 나왔듯이 남편이 사랑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에게 주어지는 사랑의 책임이 남편의 머리 됨입니다.
또한 아내가 남편의 머리 됨에 순종한다는 것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남편의 모든 생각을 무조건 동의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죄를 짓는 일에 동의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남편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 출발이 순종입니다.  
“아내들이여,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이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일지라도 말이 아닌 아내의 행실로 인해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두려움으로 행하는 여러분의 깨끗한 행실을 보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벧전 3:1~2). 
머리다워야 순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함으로써 머리답게 변화시켜 갈 수 있습니다. 최초 부부관계에 있었던 죄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죄가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자에게 먼저 뱀이 유혹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동산 중앙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신 말씀을 어기도록 유혹을 했을 때 여자 스스로 결정하고 불순종하고 남편에게 따라하도록 했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 아내 스스로 머리 됨의 위치에 오른 것입니다. 남편에게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죄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머리 됨이 파괴되는 순간입니다.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임신의 수고로움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네가 괴로움 속에서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 하나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다”(창 3:16). 
여성에게 해산의 수고와 고통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 하나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는 부분을 주목하십시오. 이 다스림은 선한 의미가 아닙니다. 남성의 힘으로 짓누르는 다스림입니다. 여러분, 깨어진 가정은 아내가 남편을 머리로 지배하려 하고, 남편이 지배당하지 않고 폭력으로 강압합니다. 죄가 깨뜨린 머리 됨과 순종의 조화를 회복하는 첫걸음은 남편의 머리 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타락의 순서와 하나님의 책망 순서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머리에 책임을 물으신 것입니다.  
 
십자가가 중심에 있는 가정 
 
“남편들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심같이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말씀을 통해 교회를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해서 거룩하게 하시고 티나 주름이나 다른 지저분한 것들이 없이 교회를 자기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서도록 해서 오직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을 먹이고 보살피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하시듯 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25~30절). 
이 명령을 보면 세 번씩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주심같이 하고, 교회를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해서 거룩하게 하신 듯이 하고,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하라는 명령이 머리 됨의 책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하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고, 영광스러운 모습이 되도록 거룩하게 이끌었습니다. 남편의 책임은 아내를 자신의 생명을 다해 희생할 뿐만 아니라 아내가 영광스러운 아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내가 되도록 이끄는 책임도 있습니다.  아내의 마음에 상처와 아픔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광스러운 아내가 되도록,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내가 되도록 하는 것이 남편의 책임입니다. 머리 됨은 남편이 아내를 다스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희생, 거룩, 사랑의 짐을 누가 먼저 지느냐의 문제입니다.  
머리와 몸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연결해 주었습니다. 죄는 머리 됨과 몸의 관계를 깨뜨렸지만, 십자가는 예수님이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가 그분의 몸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십자가 중심이어야 합니다. 십자가가 중심이 되어 있지 않은 부부관계는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중심이 된 관계는 내가 사랑해줄 대상을 기다립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랑해 줄 대상을 만난 것을 결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각오로 사랑하고 희생하는 대상을 내가 순종할 대상으로 만난 것을 결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십자가가 중심에 있느냐 없느냐가 이처럼 차이가 있습니다. 십자가가 중심에 없는 가정은 아무리 많은 물질과 부귀영화가 있어도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중심에 있는 가정은 영원한 하나님과의 연합을 미리 경험하는 부부관계이기에 세상의 모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복된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