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이재훈 목사
살다 보면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느 한편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문제입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것은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12년 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바보의 벽>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동경의대 명예교수 요로다케시가 쓴 책입니다. 그 책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것은 듣지 않는 것을 가리켜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선택적 지각’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정보들이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데 마음속에 내재된 생각, 세계관, 가치관, 편견, 선입견 등이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선택해서 듣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성부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실제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를 보고 어떤 제자들은 천둥이 쳤다고 했고, 어떤 제자들은 천사가 예수님께 말했다고 했습니다. 동일한 소리를 듣고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왜 같은 소리를 듣고 다르게 해석을 한 것일까요.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다

“어째서 너희는 내가 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그것은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요 8:43).
청력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혼이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고정관념과 세계관 때문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듣는지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선택해서 듣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듣는지와 어떻게 듣는지를 살피라고 했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육체의 귀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미움, 편견과 선입견으로 듣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고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8절).
귀가 있는 사람을 가리키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들을 귀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무리들 모두가 들을 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 비유를 통해 모든 무리들이 들을 귀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임하는 과정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자 그 중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사람들에게 밟히고 하늘의 새들에게 다 먹혀 버렸다. 어떤 씨는 바위 위에 떨어졌는데 싹이 돋았지만 물기가 없어서 곧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어떤 씨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서 그 기운을 막아 버렸다. 또 다른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 100배나 많은 열매를 맺었다”(5~8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과정을 농부가 뿌린 씨가 자라는 과정으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순식간에 만드는 나라가 아닙니다. 정치제도를 변혁해서 만드는 나라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씨앗이 심겨져 열매 맺는 과정과 같습니다. 세상에 찾아오신 예수님이 씨앗이 되고, 그 씨앗이 전파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단계로 만들어집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제자들에게 씨앗이 심겨지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집니다.  그 씨앗이 성장해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파됩니다. 마지막으로 그 씨앗으로 인해 열매들을 수확합니다. 이러한 단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뤄집니다.

끊임없이 씨뿌리는 농부

예수님은 씨앗이 뿌려진 네 종류의 밭에 대해서도 설명하셨습니다. 네 종류의 밭은 길가 같은 밭, 돌밭, 가시덤불이 가득한 밭, 좋은 밭입니다. 대부분 나쁜 밭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밭이기 때문입니다. 열매 맺는 좋은 밭은 4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농부가 씨앗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씨가 떨어진 곳이 길가인지, 돌밭인지, 가시덤불 밭인지를 보고 씨앗을 뿌리면 되는데 왜 좋지 않은 밭에 씨앗을 뿌렸는지 질문할 수 있습니다. 씨앗을 심어보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된지 압니다. 어디든지 좋은 밭이면 이런 비유가 나올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땅은 척박합니다. 곳곳에 돌이 가득합니다. 예루살렘은 나무로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했습니다. 그만큼 돌이 많습니다. 나무가 부족하기 때문에 돌로만 집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돌이 흔하고, 흙이 귀한 곳에서 좋은 밭을 골라서 씨를 뿌릴 수 있겠습니까. 또 씨앗을 뿌리다 보면 돌밭과 길가로도 씨앗이 뿌려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계십니까. 복음은 좋은 밭과 좋지 않을 밭을 가려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밭을 가진 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끊임없이 전하는 농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 본 사람은 이것을 실감할 것입니다.

토양은 변화됩니다

여러분, 복음을 들은 사람 중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아니면 영접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까요. 영접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좋은 밭은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머지 4분의 3이 완전히 추수 될 때까지 끊임없이 씨앗을 뿌립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끊임없이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 집에 나온 예화를 소개하고자합니다.
어떤 사람이 스펄전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해야지 듣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왜 전합니까?”
스펄전 목사님이 이 질문을 듣고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분필을 가지고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을 표시해보십시오. 그러면 제가 그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구분할 수 없습니다. 길가든, 돌밭이든, 가시밭이든 우리는 그것을 규정하고 평가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 비유를 읽으면서 나쁜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마음이 단단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고, 돌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평생을 사는 사람이 있고, 가시덤불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규정하면 안 됩니다. 씨 뿌리는 사람과 씨는 변화될 수 없지만 토양은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밭을 비유로 드신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어떤 땅이라도 갈아엎으면 좋은 땅이 될 수 있습니다. 땅 속에 바위가 들어 있는 바위를 부술 수 있습니다. 가시덤불은 태우면 됩니다.
평생을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평생을 돌밭과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처럼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정지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길가와 돌밭, 그리고 가시덤불로 덮인 밭이 변화됩니다.

놀라운 생명력 지닌 말씀

열매 맺지 못하는 첫 번째 토양은 길가와 같이 단단한 마음입니다. 길가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많이 밟아서 표면이 단단합니다. 씨앗이 땅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말씀이 들려오지만 마음속에 심기지 못합니다. 마음이 단단해서 말씀을 마음에 품지 못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잘못된 교육, 가치관, 세계관들에 의해서도 마음이 단단해졌습니다. 들을 귀 없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단해진 마음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로운 영을 줄 것이다. 내가 너희 육신으로부터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너희에게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겔 36:26).
성령님은 단단한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킵니다. 길을 가다 보면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에서도 꽃이 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단단한 길가라도 작은 틈이 있으면 그 속에 씨앗이 심겨지고, 그 식물이 자랍니다. 놀라운 생명력입니다.
사탄은 단단한 마음에 뿌려진 씨앗을 가져갑니다. 언젠가는 그곳에 성령의 단비가 내려 좋은 토양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말씀의 생명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말씀의 씨앗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단단한 길가라도 작은 틈만 있으면 변화시킵니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두 번째 열매 맺지 못하는 씨앗은 돌밭에 뿌려진 씨앗입니다.
“바위 위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잠시 동안 믿다가 시련이 닥치면 곧 넘어지는 사람들이다”(13절).
유대지역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보다 처음에는 훨씬 빨리 자란다고 합니다. 돌밭은 위는 흙이지만 속에 돌이 있습니다. 열기가 있는 돌에서 온돌 효과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먼저 싹이 납니다. 그런데 경험 많은 농부들은 먼저 싹이 났지만 그 식물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땅 속에 돌이 있기 때문에 싹이 먼저 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결국 뿌리내리지 못하고 시듭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현상을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만 마음속에 단단한 바위가 있어 뿌리내리지 못하는 신앙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겉만 무성한 신앙입니다. 시련이 오면 시들어버리는 신앙을 표현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열심, 감정적인 흥분은 어쩌면 돌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을 수 있습니다. 내 감정이나 내 열정으로 하는 신앙생활이 참 신앙의 증거는 아닙니다.
말씀의 씨앗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살펴야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동의하는 것 같지만 마음 중심에는 단단한 바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겉이 아니라 속을 바꿉니다. 우리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마음속에 있는 바위를 깨뜨려야합니다. 그것은 보혈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마음속에 있는 바위를 깨뜨렸으면 좋겠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돌덩이를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깨지지 않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깨뜨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단단한 바위를 깨뜨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가시덤불을 성령의 불로 태워라

세 번째 열매 맺지 못하는 토양은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입니다.
“가시밭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이 세상의 걱정과 부와 쾌락에 사로잡혀서 자라지 못하고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14절).
가시덤불 밭은 나쁜 흙이 아닙니다. 좋은 흙입니다. 문제는 가시덤불이 먼저 자란다는 것입니다. 흙의 좋은 기운을 가시덤불이 가져가 버립니다.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 밭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마음 밭이 나쁜 사람들은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연한 사람들이고 선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분별없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처럼 말입니다. 세상의 쾌락에 마음을 사로잡힌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매 맺지 못합니다. 말씀의 씨앗을 받기는 하지만 가시덤불이 먼저 자랍니다.
쾌락은 대개 나쁜 것들이지만 좋은 것도 있습니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즐거움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잃어버릴 때 그것이 가시덤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시덤불을 성령의 불로 태워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 안에 말씀보다 우선순위가 되는 모든 가시덤불들을 태워야  좋은 밭이 됩니다.

말씀을 간직하고 붙잡는 묵상

마지막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좋은 땅입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 그 말씀을 굳게 간직하고 인내해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15절).
‘굳게 간직하고’라는 표현은 묵상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묵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밭을 갈아엎는 과정이 바로 묵상입니다. 말씀과 성령의 임재를 통해 길가와 같은 밭을 갈아엎고, 마음속에 있는 바위를 깨뜨리고, 가시덤불을 태우는 과정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정신적 활동이 아니라 내면의 활동입니다. 내 마음 속에 말씀과 성령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내 안에 임하도록, 성령의 역사가 내 안에 임하도록 마음을 여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을 하는 데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상황이 바뀌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끝까지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의지하고, 말씀을 기대는 것이 인내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내가 기대했던 상황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말씀을 간직하고 붙잡으면 말씀이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습니다.

마음이 우선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이는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기 때문이다”(잠 4:13).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고, 사람의 마음을 토양에 비유한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아담은 흙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흙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흙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흙은 씨앗을 받아 열매를 맺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말씀을 받아 열매를 맺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흙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다양합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은 마음입니다. 사역도 아니고 일도 아닙니다. 비전도 아닙니다. 내 마음이 어떠한가. 길가와 같지는 않는지, 돌밭은 아닌지, 가시덤불 밭은 아니지, 좋은 밭인지를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이 어떤 영역은 단단하고, 어떤 영역은 좋은 밭일 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가 공존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세 종류의 마음상태에 놓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선한 농부입니다. 말씀과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말씀과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우리 마음 밭을 올려 드립니다.
열매 맺는 좋은 밭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모두가 들을 귀 있는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순종하고 인내함으로 열매 맺는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입니다.
마음을 살피십시오. 포기하지 말고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