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일어나라!
아이야, 일어나라!
이재훈 목사
위기는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는 계기입니다. 때로는 불행처럼 보이는 사건이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이로’라는 회당장의 어린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나사렛 청년 예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애원했습니다.
유대사회에서 회당장은 신분이 높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입니다. 존경 받는 지성인입니다. 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사렛 청년 앞에 무릎을 꿇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의 열두 살 된 아이가 죽어가자 병을 고치는 능력을 가진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습니다. 불행처럼 보이는 이 사건이 예수님 앞에 나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을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적으로는 불행한 것처럼 보이고, 절망처럼 보이는 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절망은 희망으로 바뀝니다. 불행이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강을 누리게 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힌 ‘야이로’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간청을 듣고 그의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고 있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여인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 예수님의 가던 여정을 잠시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이 마무리 될 무렵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채 마치시기도 전에 야이로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선생님께 더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49절).
소망을 걸고 예수님을 초청했지만 딸이 죽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사람을 보내 딸이 이미 죽었으니 예수님께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오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마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불신도 가득했습니다. 딸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듭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소식을 들으면 마음속에 절망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죽음을 이긴 예수님
죽음은 원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본래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에 대한 징벌의 대가로 심판이 생기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또한 죽음이 두려워 평생 노예로 매여 사는 사람들을 풀어 주시기 위함입니다(히 2:15).
“멸망당할 마지막 원수는 죽음입니다”(고전 15:26).
죽음이 무너지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기뻐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했지만 열두 살 어린 딸이 죽었을 때 그 가정은 절망했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긴 승리자라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셔도 더 이상 할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아이의 생명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예수님의 능력으로 회복시킬 수 있었겠지만 딸이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상황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라도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불신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과 불신에 빠져 있는 야이로에게 네 마디 말씀을 통해 위로하시고 부활의 승리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죽음을 죽인 죽음
“이 말을 듣고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믿기만 하면 아이가 나을 것이다’”(50절).
예수님은 야이로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야이로의 절망을 보셨습니다.
모든 두려움의 근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은 결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이 절망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음 앞에서 행하실 일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어떻게 죽음을 이기셨는지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어떻게 처리하셨는가를 보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인해 드러나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밝히 드러내셨다”(딤후 1:10).
예수님이 죽음을 폐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죽음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죽음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폐하셨습니다. 죽음의 효력을 없애셨습니다. 죽음의 모든 힘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죽음을 죽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죽음을 죽인 죽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망아 너의 권세가 어디 있느냐?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나는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으나 보라, 나는 영원토록 살아 있는 자니 나는 죽음과 음부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다”(계 1:17~18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영원토록 죽음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깨뜨리고 죽음의 힘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죽이고 죽음의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근본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언젠가 찾아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온전히 믿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권세가 어디 있느냐?”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죽음의 열쇠를 가진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있는지를 생각해야합니다. 부활절을 보내며 참된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 ‘잠’
예수님이 야이로에게 두 번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야이로의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아이에 대해 애도하며 크게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마라.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51~52절)
지금 예수님이 비현실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이의 호흡이 끊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하신 말씀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실제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씀하시자 주변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아이가 자고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음은 내용이 바뀐다는 것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은 더 이상 죽은 것이 아니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습니까. 죽음은 잠을 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잠을 자야 합니다. 잠을 잘 때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회복이 됩니다. 잠을 자려면 모든 힘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음이 평안해야합니다. 불안과 초조, 스트레스를 가지고는 잠들 수 없습니다. 생각의 실오라기를 내려놓아야만 잠들 수 있습니다. 잠을 잔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일에 대한 믿음과 소망, 신뢰가 있어야 잠을 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자고 나면 몸이 회복이 됩니다. 신비하게 회복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과 약도 잠보다 좋지 않습니다. 잠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굿바이가 아니라 굿나잇
죽음이 잠이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요. 인생을 살다 보면 잠자리에 드는 순간이 가장 좋습니다. 죽음이 잠이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 살 난 어느 아이가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깨닫고 엄마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 나 이제 죽는 거야? ‘죽는다는 것이 뭐야? 상처 받는 거야?”
엄마는 아이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어 안타까워했습니다. 눈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중 하나님이 아이엄마에게 좋은 생각이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네가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가 들어왔을 때 침대에 눕지 못하고 소파에 그냥 쓰러져 잘 때가 많았지? 그런데 자고 일어나면 네가 누웠던 곳에 있지 않고 깨끗한 옷을 입고 침대에서 자고 있었지? 아빠가 너를 안고, 엄마가 너를 씻겨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혀 침대에 눕혔기 때문이야. 너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엄마아빠가 옮겨 놓은 거야. 죽음이란 바로 그런 거야. 네가 잠들면 하나님이 너를 안아서 하늘나라 침대에 눕혀 주실 꺼야.”
그 아이는 엄마의 말을 믿고 일주일 후에 하늘나라에 마련된 침대에 눕혀졌습니다.
어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가족들에게 굿나잇(Good night!)이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가족들에게 굿나잇(Good night!)이라고 인사를 했는데 한 아들에게만 굿바이(Good bye!)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이 이상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어머니 왜 모든 가족들에게는 ‘굿나잇’이라고 인사를 하면서 저에게만 ‘굿바이’라고 인사를 합니까?”
“애야, 다른 가족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날 소망이 있기 때문에 잠잘 때 하는 인사를 했지만, 너는 다시 못 만날 것 같아 굿바이라고 했다.”
그 아들은 충격을 받고 예수님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도 ‘굿나잇’이라고 애기해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죽음은 굿바이가 아니라 굿나잇입니다. 우리 모두가 죽음을 맞이할 때 굿나잇이라고 인사하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생명을 선물하기 위해
예수님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야이로의 가정에 세 번째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야, 일어나라!’”(54절).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죽은 자를 살리는 장면이 세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나사로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서 장례를 치르러 가던 중에 예수님이 관을 멈추게 하고 ‘청년아 일어나거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오늘 본문입니다. 야이로의 열두 살 난 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아이야 일어나라!’
세 번 모두 예수님이 죽은 자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죽은 지 사흘이 지난 나사로에게도 명령하셨고, 장례 행렬가운데 있는 관을 향해서도 명령하셨습니다. 조금 전 죽은 아이에게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에게도 명령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그 능력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부터 능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 자신을 보호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의 죽음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부활의 생명을 선물하기 위해서입니다.
참된 부활의 신앙
예수님이 네 번째로 하신 말씀은 위트 있는 말씀입니다.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때 그 아이의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아이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55절).
다시 살아난 아이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라고 하신 것은 아이를 다시 현실 속으로 데리고 들어오라는 의미입니다. 죽은 아이가 소생케 되는 기적이 상상속의 일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로 살리셨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현실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매일 일하고, 먹고, 노력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언젠가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의 소망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소망은 더욱 현실에 충실하도록 만듭니다. 다시 살아날 소망이 있기에 아무렇게나 살거나 죽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명을 고귀하게 여기고 사는 인생이 바로 참된 부활의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아이야 일어나라’는 말씀을 통해서 어린 딸을 소생시켰습니다. 이것은 소생입니다. 이 소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에게 임할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떠나기를 바랍니다. 다시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 영원한 생명으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아이야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가정에 찾아가셔서
새로운 생명을 공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나라에 ‘아이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임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이 떠나가고,
부활에 대한 소망과 믿음으로 회복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예수님이 어린 딸을 소생시켰습니다. 이것은 소생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에게 임할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보여주셨습니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