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 기적마저 부인하는 교만
마태복음 10장 1~15절오늘까지 양수리에서 패션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2차에 걸쳐 진행하고 있는 패션집회는 스태프까지 약 2800여 명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둘째 날 기도를 시켰는데 중간에 기도를 끊을 수 없어서 1시간 반을 자신들이 알아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앞에서 기도 인도 하지 않아도 기도가 터져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제도 가보니 중고등학생들이 자신과 가정과 학교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저는 이 민족에게 소망이 있다는 걸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씨앗, 거룩한 그루터기를 남겨 두시는 것처럼 이 민족 곳곳에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거룩한 세대, 거룩한 족속을 심어 두신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이 선포될 때에 다음 세대에 거룩한 부흥이 있을 지어다. 오늘 본문은 장터에서 아이들이 함께 놀다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함께 노는 친구들입니다. 그런데도 함께 놀다가 상대방이 맘에 안 들어 싸우는 것. 바로 우리 세대가 그런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응하지 않는 세대피리는 결혼식 노래입니다. 한쪽에서 피리를 불면 한쪽에서는 춤을 춰야 하는 것입니다. 애도하는 노래는 장례식 노래입니다. 한쪽에서 ‘아이고 아이고’ 하면 다른 쪽에서는 울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피리를 불었는데도 친구들이 춤을 안 춥니다. 애곡을 했는데도 친구들이 울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왜 안 울고 왜 춤을 추지 않았느냐면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서로 맘에 안 들어서 받아들이지 않고 싸우는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세대를 비유하는 말씀입니다.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기도할 때에 하나님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이 땅의 다음 세대들이 본받지 말고 하나님을 철저히 받아들이고 믿고 사람을 신뢰하는 놀라운 부흥이 있게 하옵소서. 왜 못 받아들일까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내 방법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아내가 남편을, 자식이 부모를 못 받아들일까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내가 남을 싫어하는 까닭은 여러 가지 때문이 아니라 한 가지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 좋아도 목소리가 자기 맘에 안 들면 싫다고 합니다. 다 좋아도 옷 입는 스타일이 맘에 안 들면 싫다고 하는 게 이 세대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으면 다 싫어도 한 가지 때문에 좋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가 오지 않고 사탄이 역사하기 시작하면 다 좋아도, 기적도 체험하고 말씀도 깨달아도 예수 믿는 사람이 싫으면 하나님도 싫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역사하시면 세대가 바뀌고 족속이 바뀌는데 다 맘에 안 들어도 한 가지 때문에 하나님이 좋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이 세대가,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세대가 되길 바랍니다. 이 민족의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친구들을 받아들여 함께 아름답게 동역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8~19절을 보면 요한이 와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니깐 사람들은 요한더러‘저 사람이 귀신 들렸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잘 먹고 마시니까 먹보에다 술꾼이라고 합니다. 요한은 금식해서 싫고 예수님은 많이 드셔서 싫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타락한 세대의 모습입니다. 은혜 받은 세대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요한은 금식해서 좋고 예수님은 함께 어울려서 드시니까 좋다고 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이 사람은 통성기도해서 좋고 이 사람은 묵상기도해서 좋다고 하지만 세대가 타락하면 이 사람은 시끄럽게 통성기도해서 싫고 이 사람은 너무 조용히 기도해서 싫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민족이 은혜가 임한 민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대 간의 차이가 없어질 지어다. 부모 자식 간의 차이가 없어질 지어다. 이 민족이 성경에 있는 말씀을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가 아니라 기적도 믿어지고 나를 사랑한다는 말씀도 믿어지고 문화와 역사를 넘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으로 믿어지는 거룩한 세대, 축복 받은 세대, 행복한 세대, 부흥의 세대가 될지어다. 순수하고 거룩한 세대로마서 12장 1~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하 목사님께서 간증을 읽으실 때 앉아서 듣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이 민족이 거룩한 민족이 되는 구나. 거룩한 세대가 되는 구나.’ 본문 20~24절을 보면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 도시 이름이 6개가 나옵니다. 도시 이름 가운데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은 기적이 많이 일어났는데 하나님을 거부한 도시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소망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드리는 이 서울 땅이 거룩한 땅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적의 도시, 은혜의 도시가 될지어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CGNTV로 예배드리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기적의 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적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미국 부흥의 역사를 보면 아주사 거리만 지나가도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땅에 비행기로 내리기만 해도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기적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적을 체험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기적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기적도 임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도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로마서 14장에 보면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합니다. 옆에 사람이 방언을 하면 방언하는 사람만 믿음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하나님이 있음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기적은 체험한 사람이 믿음의 통로가 되지만 전혀 믿지 않았던 사람도 그 기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오순절 날 방언이 터지고 기적이 일어났을 때 예루살렘 전체가 소동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25~27절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학식이 많고 배운 것이 많은 사람과 어린아이. 학식이 많고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어린아이는 하나님을 받아드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반응하는 사람과 반응하지 않는 사람.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성도들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 민감성이 있기를 바랍니다. 남들은 그냥 지나가는데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찾아내는 능력이 바로 영적 민감성입니다. 기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장터에서 서로 싸우는 모습이 아니라 거룩한 세대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적과 은혜를 다 받아들이는 어린이처럼 순수한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과자 하나에도 기뻐하던 그 어린아이처럼 말씀 하나에 변화되는 모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30절에 모두 내게로 오라고 예수님께서 초대하고 계십니다. 모든 문제를 안고 예수님께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나와 응답받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