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1월 29일 가려진 예수님의 참 모습

마태복음 12장 14~29절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바람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바람을 맞을 수는 있습니다. 나는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지만 내리는 비를 맞을 수는 있습니다. 성령은 태풍과 같습니다. 성령은 파도와 같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새벽기도회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이번 40일은 좀 특별합니다. 누가 1만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새벽에 깨워서 데리고 오겠습니까? 우리 마음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서 너나 할 것 없이 ‘이번 기회에 은혜를 받아야겠다.’, ‘이번 기회에 하나님을 만나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서울만 이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있든지 없든지, 온라인이든지 오프라인이든지 상관없습니다. 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부흥 운동이 이랬습니다. 집회를 시작했는데 끝내지를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회개의 역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 또 하루 집회가 연장되면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의 가정과 개인과 사업과 삶의 모든 영역에 태풍처럼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령의 파도와 태풍 속에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은사를 받는 날입니다. 교회는 은사 공동체입니다. 은사가 없는 교회, 성도는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은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격이 변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비전이 잉태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헌신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비전을 받으면 나이, 소유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까를 생각합니다.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생각하고, 불평보다는 감사하게 되고, 약점이나 단점을 보기보다 좋은 점을 보게 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주일 본문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제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가, 본질과 정신을 잘 찾아서 지키는 것이 중요한가입니다. 안식일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런 실수를 참 많이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본질은 잊혀지고 형식만 남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제도만 봅니다. 그러니 기쁨이 없고 시험에 듭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납니다. 수십 년 동안 교회를 다녔는데도 예수님은 없고 형식만 배웁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형식과 형태는 무시할 수는 없지만 본질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리석게도 예수를 믿으면서 껍데기만 붙들고 신앙생활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처음에는 복음을 믿다가도 우리는 그것을 전통, 습관, 율법으로 만듭니다. 온누리교회도 조심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온누리교회가 신선했는데 20년 정도 되니까 자꾸 굳어가려고 합니다. 이것을 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순식간에 타락하고 전통과 제도만 남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네가 더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긍휼입니다.(6~8절) 이것을 놓치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제도만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끊임없이 말씀으로 돌아가십시오. 본질로 돌아가십시오. 형식과 제도와 방법은 틀려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질만 잡는다면 우리는 결코 후회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실망했다가도 다시 돌아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제사냐 긍휼이냐, 형식이냐 내용이냐, 율법이냐 은혜냐 하는 것이 주일날 본문의 내용이었습니다.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이 안식일을 소홀히 여기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제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마리 양의 비유를 드십니다.(9~13절) 예수님께서 12절에서 말씀하신 “하물며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라는 부분에 밑줄을 치십시오. 바리새파 사람들의 문제점은 병든 사람을 가지고 예수님을 고소할 구실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참 잔인합니다. 제도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확신을 증명하기 위해 이처럼 약자들을 이용해 잔인한 짓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이 양보다 귀하다고 하십니다.   예언의 응답과 하나님의 나라  월요일 본문을 보겠습니다. 여전히 바리새파 사람들은 은혜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예수를 어떻게 하면 죽일까 음모를 꾸밉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14~15절) 진짜 훌륭한 사람은 알면서 속아줍니다. 바보는 속고, 똑똑한 사람은 속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속아줍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속을 다 아시면서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면서도 소문을 내지 말라고 하셨을까요?(16절) 예수님의 목적이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 거룩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7~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소문을 내지 말라고 하신 진짜 이유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예언의 응답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움직이는 원칙은 예언의 응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원칙과 방향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이익이냐 손해냐를 묻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물으십시오. 하나님의 뜻이면 손해를 보더라도 하십시오. 힘들어도 하십시오. 수치를 당해도 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이익이 있더라도 하지 마십시오. 거절하십시오. 예수님은 이 원칙이 분명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음모를 또 다시 꾸몄습니다.(22~24절) 바리새파 사람들은 굉장히 독특한 사람들입니다. 귀신이 나갔는데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니까 귀신의 왕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았다고 합니다. 제도에 익숙한 사람은 궤변에 능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말을 끼워 맞춥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주장을 멋지게 되받아 치셨습니다.(28~29절) 귀신은 여러분의 병을 고치거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점으로 여러분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귀신들려서 점을 치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점을 보는 카페도 있습니다. 잡지, TV, 신문에 운세가 등장합니다. 귀신들의 장난에 말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재미삼아 부적을 갖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이 귀신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빛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능력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믿음의 기도를 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가서 승리하십시오. 할렐루야!/ 정리 서철 차장 chol@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