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2월 2일 언제까지 기다릴까요?

마태복음 13장 18~30절이번 특별새벽부흥집회도 10일 정도 남겨두고 있습니다. 마라톤으로 말하면 끝마무리를 해야 할 시점입니다. 지금부터는 조금 더 예민하게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영적 민감성을 갖고 관찰하시고 누리시고 축복받기를 축원합니다. 네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참으십시오. 무슨 일이든지 참는 것이 어렵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모든 일이 잘 되는데 참지를 못합니다. 둘째, 기다리십시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는데 그걸 못해서 사고를 칩니다. 셋째, 기대하십시오. 기대를 포기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넷째, 믿고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베푸실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기도입니다. 기도에 빠지면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십니다. 어떤 때는 생각하고 연구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기도가 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바람으로 불로 역사하십니다. 또 생수같이 역사하시고, 이슬비처럼 오십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 나타날지 우리는 모릅니다. 시간, 상황, 체질, 사고방식, 환경 등을 고려해서 역사하십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성령님이 이곳에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니다. 2월 10일 체조경기장 집회는 클라이맥스가 될 것입니다. 남은 기간 동안 뜨거운 열기가 모든 사람에게 퍼지리라 생각합니다.   열매의 조건 ‘좋은 씨와 좋은 밭’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어제 본문부터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배를 타고 청중들과 조금 떨어지셨습니다.(1~2절) 예수님께서 청중들에게 말씀을 전하시면서 3절부터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많이 들었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어떤 씨는 돌밭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있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믿습니다.’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을 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성수하고 새벽기도회에 나온다고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믿음이 생길 수 있는 과정은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믿음은 아닙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씨’와 ‘밭’을 이야기 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씨가 있어도 밭이 없으면 자랄 수 없습니다. 또 아무리 좋은 밭이 있어도 씨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도 있어야 하지만 마음밭도 좋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만났을 때 열매를 맺습니다.  100배 결실의 원리  어제 본문을 보면 인간에게는 네 가지 밭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길가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땅을 뚫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씨가 땅위에 있기 때문에 새가 와서 먹어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강퍅해서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둘째는 돌밭입니다. 돌밭을 보면 겉보기에 흙이 기름져 보입니다. 그런데 삽으로 한번만 뜨면 자갈이 드러납니다. 이런 곳에 뿌려진 씨는 뿌리가 자라지 못합니다. 바람이 불고 햇빛이 들어오면 그냥 넘어집니다. 셋째 가시덤불입니다. 땅은 참 좋아서 씨를 뿌리면 뿌리도 잘 내리고 줄기도 힘차게 솟습니다. 그런데 곧 가시덤불이 줄기를 막아버립니다. 이것이 유혹입니다. 예수도 참 좋지만 돈,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육적인 유혹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유혹해 하나님만 의지할 수 없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밭입니다. 돌도 없고 가시덤불도 없어서 씨가 아무 제한 없이 막 자랍니다.  결론적으로 길가는 불도저로 밀어야 합니다.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마음을 다 깨서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이 돌밭인 사람은 겉은 멀쩡한데 조금만 파보면 세상적인 근심 걱정 염려로 복잡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다 파서 돌을 걸러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랍니다. 셋째, 마음이 가시덤불인 사람은 시험과 유혹의 가시덤불을 다 베어내야 합니다. 넷째, 옥토는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냅니다. 왜 30배 60배 100가 아니고 100배 60배 30배일까요? 축복은 작은 것부터 오지 않고 큰 것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30배입니다. 100배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주인의 선택  비유로 하신 말씀에 대한 그 해석이 오늘 메시지입니다. 18절부터 23절까지가 해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나라와 관련된 또 다른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24~30절) 이 비유는 이렇습니다. 주인이 자기 밭에 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 옆에 가라지를 살짝 뿌리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밀도 자라는데 가라지도 자랍니다. 중요한 것은 가라지가 밀의 영양분을 다 빼앗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들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말했다. ‘주인님께서는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도대체 저 가라지는 어디에서 생겨났습니까?’ 그러자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원수가 한 짓이다.’ 종들이 물었습니다. ‘저희가 가서 가라지를 뽑아 버릴까요?’”(27~28절)이 세상에는 이해하지 못할 일이 참 많습니다. 전쟁, 폭력, 악한 자가 잘 살고,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 같은 일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가라지만 따로 있거나 밀만 따로 있지 않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시험이 참 많습니다. 그것은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라지를 확 뽑아버리면 될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29~30절) 예수님께서는 가라지를 뽑다가 밀이 다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십니다. 마귀는 마치 유괴범과 같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인질로 잡고 방패삼아 도망다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를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많은 사람을 순교시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라지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때문에 참으십니다. 내가 상처받을까봐 내가 뽑힐까봐 기다리시고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참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심판날이 오면 가라지와 알곡을 구분할 것입니다. 가라지가 있다고 겁먹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가라지가 세다고, 가라지가 활개 친다고 ‘세상 망했구나. 하나님이 없나보다.’ 원망하지 마십시오. 당신 때문에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궁극적으로 승리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왜 나를 예수 잘 믿는 곳에 보내주시지 내가 순교할 곳에 보내주셨습니까? 왜 나한테 이런 십자가를 주셨습니까? 왜 저 악한 사람들은 아프지도 않고 건강합니까? 왜 저 사람들은 활개를 치고 돌아다닙니까? 왜 진리를 가진 사람들은 바보처럼 살아야합니까?’ 이 문제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다 아십니다. 그러나 결론은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상처 받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하루도 승리하십시오. 건강하고 믿음으로 사는 하루가 되십시오. / 정리 서철 차장 chol@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