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화) | “엇갈리는 준비”
본문 : 누가복음 22장 1~13절
오늘 본문에 보면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가룟 유다이고 또 한 사람은 물동이를 메고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보혈
1절에 보면 유월절이라고도 하는 무교절이 다가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유월절에는 쓴 나물과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습니다. 또 어린 양고기를 먹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끌고 출애굽 할 때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을 때 죽음의 신이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이 유월절을 기억하고 절기를 지켰습니다.오늘날 우리의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유월절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이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웃음을 지으며 폼 나게 살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예수님을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가끔 당시 대제사장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웃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그 사람을 죽여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자와 같은 짐승은 오히려 솔직합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표정과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제사장의 옷을 입고 가장 거룩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생각은 예수님을 죽일 생각뿐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대중, 인기, 권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권력과 인기가 예수님께 빼앗겼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론을 의식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은 다른 것입니다.
유다가 십자가를 준비하는 방법
3~4절을 보겠습니다. “사탄이 그 열둘 중 하나인 가룟이라는 유다에게 들어갔습니다.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어떻게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줄지를 의논했습니다.”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사탄이 들어가자 가룟 유다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디까지 자신이고 어디까지가 사탄이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와 사탄이 섞여진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의지와 사탄의 유혹이 만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죄를 짓고도 사탄이 그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러나 자기 의지가 거기에 개입되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그랬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왔을 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찾아가서 의논했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죽일 것인가에 대해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예수를 죽이고 싶었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스스로 하겠다고 온 사람이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사실은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폼 나는 사람들이니까 겉으로 그러면 안되는 처지였습니다. 때문에 그런 하수인이 필요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만난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가룟 유다에게 돈을 주고 어떻게 예수를 체포할지 음모를 꾸몄습니다. 항상 음모 뒤에는 돈이 있습니다. 대가를 주고 거짓말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가룟 유다라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십자가를 준비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엇갈리는 준비’라고 한 것입니다.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옥합을 깨뜨린 여자가 있습니다. 3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옥합을 깨뜨린 그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을 때 그 여인의 옆에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줘야한다며 정의의 사도처럼 말합니다. 요즘 기독교에 이러한 논리로 접근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자기가 마치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교회를 개혁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가룟 유다입니다. 정의의 수호신처럼 말하는 이들의 뒤에는 사탄의 개입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가난한 자를 생각해주는 것 같고 겉으로 보면 매우 사회학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저 여자는 나의 장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영적 진리를 가룟 유다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십자가를 향한 준비 ‘순종’
그러나 또 한 사람의 준비가 있었습니다. 7~8절을 보겠습니다. “유월절 양을 희생제물로 잡는 무교절이 됐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며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우리가 유월절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여기서 예수님께서 조금 대책이 없는 분처럼 보입니다. 돈을 주면서 준비하라고 하시지 않고 그냥 가서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황당해 어떻게 하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물동이 맨 사람을 따라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집에 가서 유월절 음식을 먹을 방이 어디냐고 물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분이십니다.저는 이 본문의 말씀을 이번에 오키나와와 후쿠오카에서 열린 러브 소나타 집회를 통해 경험했습니다. 일본 사람들, 일본 문화, 일본 역사, 우리의 수준을 따져보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본 열도를 전도할 열정을 주시고, 비전을 주셨습니다. 저는 베드로와 요한과 같이 예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셨기에 그분의 뜻대로 선포한 것입니다. 집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큰 문제가 오키나와로 가는 비행기편이 제한돼 있었던 것입니다. 교인들이 200명 등록하고 나니 이미 비행기 좌석이 마감되었습니다. 그때 전세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전세기도 쉽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항공사에 예수 믿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물동이를 맨 사람과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세기가 준비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물동이를 맨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나귀 새끼를 얻었습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인이 그것을 가져가면 도둑이라고 할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 ‘주님이 쓰시겠다고 해라’라고 말씀하십니다.주님께서 당신을 쓰고 싶다고 하실 때, 우리는 ‘내가 나이가 있는데요’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래도 쓰고 싶다. 내가 네 등 위에 타고 싶다. 너는 힘도 없지만 네 등 위에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싶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똑똑하고, 잘난 척하고,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하는 가룟 유다를 보았습니다. 또 한 사람은 물동이를 매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다락방을 예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그곳에서 진행하십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쓰고 싶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물질을 쓰고 싶어 하시고, 당신의 시간, 당신의 인생을 쓰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등 위에 타고 싶어 하십니다. 힘이 없다고, 내가 어리다고 거부하지 마십시오.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십자가를 향한 준비입니다. 여러분, 배운 지식 가지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정의다, 개혁이다’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못 박는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정리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