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토)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
누가복음 23장 39~56절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더불어 바라바와 시몬의 십자가를 배웠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를 꼭 져야 했던 바라바가 자유를 얻었습니다. 저는 바라바가 우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사람들인데 예수님 때문에 자유를 얻고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뒤바뀐 운명, 예비된 축복 저는 바라바가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종종 생각합니다. 과거로 돌아갔을까요? 아닙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과거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도 좌절하며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뒤로 갈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도 뒤돌아가지 않기를 바라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미래로 나가야 합니다. 시골에서 올라오다가 예기치 못하게 로마 군인에게 끌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이 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시몬은 처음에는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를 지면서 예수님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고, 그 이후에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잠시나마 질 수 있었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면 희생과 고통도 기쁨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이번에 우리는 나귀 새끼를 묵상했습니다. 나귀가 자신의 등을 예수님께 빌려드린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여러분의 등을, 어깨를 예수님께 빌려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가 교회에 왔고 예수님께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교회에 자기 발로 오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친구에게 속아서 왔고 끌려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와서 보니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 없이는 못 삽니다. 교회 없이는 못 삽니다. 이것이 나의 삶이 된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교회에 와서 제일 억울한 사람은 예배만 드리고 가는 사람입니다. 무엇이든지 하십시오. 예수님께 등을 빌려 드리십시오. 시간도 드리고, 돈도 드리시고, 마음과 열정도 주님께 드리십시오. 십자가에서 만난 메시아 이제 드디어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사형을 언도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십니다. 십자가의 길은 자기가 못 박혀 죽어야 하는 십자가를 자기가 지고 가는 길입니다. 그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못박혔습니다. 분명히 신경도 끊어지고 혈관도 끊어졌을 것입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십자가형은 죽음을 연장시켜서 고통을 겪게 하는 잔인한 형벌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받은 고통은 온 인류의 고통이 집약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통을 당하심으로 온 인류가 해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곁에는 정말 십자가형을 받아야 할 두 강도가 같이 있었습니다. 골고다 언덕의 세 십자가는 인류의 영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는 모두 강도 같은 죄인이지만 구원받는 자가 있고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강도는 끝까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독합니다.(39절) 여러분,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흔히 말하는데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강에 떨어져 자살을 하려는데 떨어지면서 예수님을 믿었을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두 강도가 그랬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한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했고, 다른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을 모독했습니다. 악한 사람의 특징은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반항합니다. 가장 위대한 순간 구원 받은 강도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모독하는 자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입니다. (40~41절) 저는 여러분이 마귀에게 동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생각, 세상의 유혹에 동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구원 받은 강도는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라며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구원이 시작됩니다. 둘째, 구원 받은 자는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죄가 있지만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라고 말하기만 해도 구원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셋째, 구원을 요청합니다.(42절) 여러분, 마지막 순간이라도 예수님을 생각하면 구원이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다.”(롬 10:13) 이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 말씀인지요. 이 강도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요. 구원의 요청은 그가 과거에 잘못했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회복시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도 구원의 요청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입니다. 그는 성경을 읽지도, 일대일 제자양육을 하지도, 전도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42절)라는 말 한마디였습니다. 그 말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말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43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멘. 이 대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완성된 구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은 오전 9시였습니다. 정오까지 예수님은 갖은 모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9시부터 정오까지 이 세 시간이 가장 힘드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오가 되자 갑자기 태양이 빛을 잃고 침묵이 덮였습니다.(44절) 그리고 예수님께서 정신을 잃고 있다가 깨어나셔서 외치신 말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 15:34;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째서 나를 버리셨습니까?)입니다. 이 말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버리실 만큼 저 인간들을 사랑하십니까’ 라는 말도 되고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실 만큼 인류의 죄가 무겁고 힘든 것이었습니까’라는 말도 됩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완성의 기도를 하십니다. “다 이루었다.”(요 19:30)만약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하시지 않았다면 인류의 구원은 미완성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때 예수님은 분명히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침표를 찍은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여, 제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46절)라고 위탁하십니다. 이렇게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 죽음이 찾아와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하나님은 한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백부장입니다.(47절) 이 사람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믿음의 사람은 축복의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 배우자, 자녀, 부모 등 어떤 분이 죽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50절)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해서 무덤에 모십니다.(53절) 여러분, 우리는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축제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고통, 아픔, 슬픔을 축복으로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이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 정리 서철 차장 chol@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