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특별새벽부흥집회 1월 10일 말씀 | 하용조 목사

아름다운 이인자, 겸손한 일인자 본문: 누가복음 3장 15~38절

 

무조건 예수님이 좋다고 말하십시오. 내 영적 능력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분 편에 서십시오. 예수님 중심으로 사시고 모든 영광을 그분께 돌리십시오. 모든 예배는 예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던 백성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혹시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그들 모두에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이제 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진 분이 오실 텐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도 풀 자격이 없다.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눅3:15-16)사람들이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를 혼돈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특별한 신의 모습으로 왔다면 사람들은 혼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초인으로 또는 영웅으로 왔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금방 알아봤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함부로 대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화려한 옷을 입고 기적을 베푼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혼돈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뚫어지게 보면 거기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예수님입니다. 세례 요한은 중요한 말을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은혜는 여기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선언을 해야 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의 인간에 불과합니다.” “나는 구원받아야 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지극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나는 실수할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이것을 행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온누리교회가 아무리 커도 부족하고 연약한 실수할 수 있는 집단입니다. 목사님들도, 장로님들도 실수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유리그릇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주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세례 요한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16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 자신을 완전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해가 안 되도 예수님에게 아부하십시오. 아부도 계속하면 충성이라고 합니다. 무조건 예수님이 좋다고 말하십시오. 내 영적 능력이 거기까지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예수님 편에 서십시오. 예수님 중심으로 사시고 모든 영광을 예수님께 돌리십시오, 모든 예배는 예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불과성령의 세례를 받으십시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 중에 평화로다. 여러분 말끝마다 예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십시오. 어떤 분들은 말끝마다 “주여 주여~” 합니다. 그게 너무 심하면 이상해 보이지만 괜찮습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서 샘솟듯 나와야 합니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주인이시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주님 없이는 살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보다 더 존귀한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와 바꿀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순간순간 세례 요한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의 신발 끈 풀기조차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세례를 주지만 그건 물세례요 예수님이 오셔서 주시는 세례는 불과 성령의 세례입니다. 우리가 물세례를 받았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불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물세례 받고난 다음 성령과 불세례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그 세례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17절입니다.“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며 알곡을 창고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심판의 시급성, 심판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인공이 되시는 것입니다.18~20절 보겠습니다.요한은 결국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선포하고 예수님을 높였기 때문에 그 결과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시련을 겪고 오해를 받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재수 없거나 억울한 일이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욕을 먹고 핍박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런 의미에서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상징이요,  심볼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고난이 없는 것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한 번도 고난을 겪어본 적이 없다.’ 이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어두움은 빛을 거절합니다. 세상은 빛을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뚫고 나아가는 믿음과 용기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21절입니다.“모든 백성이 세례 받을 때에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자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나는 너희들과 다르니까.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으니까” 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특권의식이 예수님에게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이것이 대속의 개념입니다. ‘안 해도 되지만 해주는 것’ 이때 감동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이니까 안 해도 돼’가 아니라 아버지라서 청소하고 설거지도 해 보십시오. 물을 떠다 부인의 발을 씻겨주십시오. 그럴 때 감동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1절 보십시오. “모든 백성이 세례받을 때에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자 하늘이 열리고” ‘하늘이 열렸다’라는 말은 ‘하늘과 통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과 채널이 맞았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전파가 지나가지만 내 TV하고 채널이 맞아야 깨끗한 영상이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이름을 불러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채널이 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음성이 깨끗하고 명확하게 들리고 또 보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2절을 보면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상으로 그분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예수님의 터치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할 때 제일 먼저 그분에게 임한 것은 하늘 문이 열리고 두 번째, 성령이 오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성령이 임하는 길은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에 계시는 하늘 문이 열리고 거기에서 성령이 여러분 각자 머리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면 하늘 문이 열립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성령님이 임재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세 번째, 음성이 들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할렐루야!  그리고 23절부터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족보에도 할 얘기가 많지만 쭉 가서 결론을 읽으면 됩니다.38절 보겠습니다. “가이난은 에노스의 아들이고 에노스는 셋의 아들이고 셋은 아담의 아들이고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아담까지 인간 족보의 근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님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이름이 높여지기를 바랍니다. / 정리 윤연순 기자 yys@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