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특별새벽부흥집회 1월 23일 말씀 | 하용조 목사

옥합을 깨뜨린 사랑 본문: 누가복음 7:36~50 우리가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 날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 마음이 딱딱해지고 감동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자꾸 냉소적이게 됩니다. 그런 분들에게 오늘 성령이 임해 주셔서 눈물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향하는 조그마한 사랑이 꽃피기를 바랍니다.오늘 말씀을 보면 한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님을 저녁만찬에 초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바리새파 사람의 저녁 초대에 아무 설명 없이 그냥 쉽게 응하셨습니다.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바리새파 사람들은 껄끄러운 사람들입니다. 신앙적으로 예수님을 가르치려는 종교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의 초대에도 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초대만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 나라를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누구든지 부르면 가십니다. 여러분이 불러도 가십니다.  눈물의 헌신과 사랑  예수님이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초대받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마을의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발에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분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자신의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37~38절) 이 여자는 말없는 사랑을 했습니다. 예수님 앞에 서 있을 때마다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이것을 다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은 이 광경을 보고 이 여자의 순수한 그 사랑의 가슴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과 비교의 대상으로 봤습니다. 사랑이 보이지 않고 사람이 보인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분과 과거가 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서툴고 관계 맺기가 힘든 것은 그 사람의 중심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차를 타고 다니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를 주로 많이 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통해서 사람에 대한 평가를 결정 해버립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여자가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것마저도 못마땅하고 여자의 믿음과 사랑과 헌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일을 할 때 믿음과 사랑이 보여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보여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내 마음속에 흐르고 그 성령의 역사가 나를 기도시키고, 죄를 회개하게 하고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을 때 우리는 누구든지 비판적인 인간이 됩니다.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내 입술이 누군가를 비판하고 심판하고 평가하고 헐뜯고 있다면 여러분은 시험에 든 것입니다. 그 누군가를 자기와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는 여러분이 이미 시험에 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중심, 사람의 중심, 내 마음의 중심을 읽고 성령의 역사에 터치를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터치한 분이 성령이었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문이 열리고 비둘기처럼 성령이 터치를 했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이것은 기본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을 때 회개할 때 죄인임을 인정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 문이 열리면 성령이 오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음성이 들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때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주님 내가 여기 있다는 것만 해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내게는 은혜입니다. 축복입니다. 말씀하십시오.’여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과 은혜 받지 않는 사람과의 두 모습이 여기에 나타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고 판단하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은사대로 쓰십니다.  사랑이 없는 형식적인 헌신  예수님께서 예화를 들어 주셨습니다. 이해 못할 때는 하나님이 꼭 예화를 들어주십니다. 500데나리온과 50데나리온을 빚진 두 사람 모두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서 두 사람 모두 탕감을 다 해주었다면 탕감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누가 더 마음에 고마움이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40~42절) 탕감을 많이 받은 사람이 적게 받은 사람보다도 감사가 많을 것입니다.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예수님은 적용을 하셨습니다.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초대하기는 했지만 형식적인 초대를 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초대를 한 것이지 사랑의 초대를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건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건성으로 봉사하지 마십시오. 형식적인 봉사 이제 그만 하십시오. 그건 아무리 많이 해도 예수님이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시간만 보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내가 바쁜 시간에 굉장히 마음을 내서 예수님을 초대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다 건성으로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는데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습니다. 건성으로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발 씻을 물도 물론 주지 않았고 예의와 존경과 사랑을 표하는 입맞춤도 다 생략해 버린 것입니다.(45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에 먼지가 많기 때문에 누군가가 집에 오면 꼭 발 씻을 물을 먼저 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손이나 발을 씻고 집에 들어가도록 항상 물을 준비하는 풍습입니다. 그러나 이 바리새파 사람은 예수님을 초대했다는 허울은 있었지만 그 내용을 보면 건성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자꾸 업적으로 생각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의 성취로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고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지를 양적으로 생각하지만 사랑은 양으로 표현할 수도 없고 성취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눈물과 정성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함입니다. 가슴이 울먹거리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  헌신은 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여자의 가슴속에는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정 가진 것이 없으면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숨겨놓은 향유로 아낌없이 예수님을 위해서 장례준비를 했다는 사실, 이것이 이 여자의 헌신입니다.예수님은 그 여자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잃을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는 부끄러운 나이지만 주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절망할 수밖에 없는 나를, 자살할 수밖에 없는 나를, 인생을 포기한 나를 구해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나 커서 내 인생을 다 드려도 하나님의 은혜를 다 갚을 길이 없나이다’는 것이 이 여자의 마음입니다. 나는 오늘 이 아침에 다른 것을 설교하기보다는 이 마음 하나를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 날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 마음이 딱딱해지고 감동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자꾸 냉소적이게 됩니다. 그런 분들에게 오늘 성령이 임해 주셔서 눈물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향하는 조그마한 사랑이 꽃피기를 바랍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이 망할 뻔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안 계셨더라면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지만 내가 선택한 길은 잘한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이 길을 갈 것입니다’라는 고백 속에 하나님을 향한 눈물과 헌신,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5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에게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 하나를 던지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거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님의 이 말씀이 던져지기를 축원합니다. 많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왔습니다. 여러분은 많은 결단과 헌신을 하고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답을 듣고 가셔야 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거라. 네 문제는 해결되었다. 평안히 가거라.’ / 정리 박영주 기자 pyjoo@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