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특별새벽부흥집회 1월 22일 말씀 | 하용조 목사

이 시대를 분별하십시오 누가복음 7장 24~35절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내 인생을 투자할 곳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고 흠모합니다. 그 분의 이름을 높여드립니다. 그분 때문에 수모당하고 병들고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됩니다. 예언자 보다 위대한 사람 24절입니다. “요한이 보낸 사람들이 떠나자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요한에 대해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예수님은 특별히 요한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요한은 지금 감옥에 있으며 정치적으로 개인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요한을 찾으러 간 수많은 사람들은 갈대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요한을 보려고 간 것이었습니다. 25절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이냐? 아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에 빠져 사는 사람은 왕궁에 있다.”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은 부와 명예 권력을 상징합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에 빠진 사람들은 궁궐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왜 광야에 있습니까? 이것에 대한 예수님의 두 번째 관점입니다. 26절입니다.“그러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요한은 예언자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다.” 요한은 화려한 갈대보다 더 아름다운 분이시고,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보다 더 높은 이상을 가진 분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요한은 이 시대에 예언자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지만 자기 목숨에 대해서는 외면을 합니다. 오래 살고 고통을 겪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언자 요한은 거침없이 할 말을 다하고 목숨을 내어놓고 전혀 동요하지 않고 살았던 분입니다.27절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 성경에 이렇게 기록됐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길을 네 앞서 준비할 것이다’” 예수님은 성경이 세례요한에 대해 예언한 부분을 인용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예수님이 세례요한에 대해 얼마나 깊이 이해했고 사랑했고 애정을 쏟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의 가치관과 비전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가 위대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내 앞에 사자요, 길을 예비하는 자요, 외치는 자의 소리요, 예수님의 신발 끈을 묶는 사람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높은 산은 낮아지고 낮은 골짜기는 높아지며 구부러진 길은 곧게 펴고 하나님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세례요한은 하나님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입니다. 우리의 이상과 흠모할 대상이 세례요한 일수도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짧게 살았어도 예수님을 위해 수치와 수모를 겪고 모든 명예와 삶을 버렸던 세례요한. 오늘 예수님은 그렇게 세례요한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 28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 중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 이 정도면 어찌 더 칭찬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삽니까? 많은 세월을 공부하고 애 낳고 키우며 결혼하고 직장을 다니는데 보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것일까요? 오래 사는 것일까요? 건강하게 사는 걸까요? 부하게 사는 것일까요? 유명하게 사는 것일까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 인생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을 투자하는 것은 예수님 한분 때문입니다. 그분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흠모합니다. 그 분의 이름을 높여드립니다. 그분 때문에 우리는 수모당하고 병들고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됩니다. 세례요한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속에 이런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8절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과 설교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요한이지만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요한보다 크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백성입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온 사람은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의를 찬양하는 부류가 있었고 세례를 거부하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진리 편에 서는 사람과 종교 편에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리 편에 서는 사람과 악한 사람들 편에 서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위해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왔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여러분을 보고 불행한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최선의 선택을 하셨고 계속하십시오. 힘들어도 계속하십시오. 쉬지 말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계속 걸어가십시오. 그것이 가장 영광스럽고 축복된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31절입니다.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들은 무엇과 같을까?” 두 가지 성경구절을 참고해 보겠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을 보면 바울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지길 권합니다. 제물이 없는 제사는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제물이라는 생각을 확실히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제물입니다. 죽기위해 존재합니다. 대신 죽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2절에서도 중요한 말을 합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살지만 흉내 내거나 따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이 세대를 구원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우리가 갈 길은 외롭고 고독하고 배고픈 길입니다. 예언자들이 외로웠던 것처럼 세례요한이 외로웠던 것처럼 그런 길을 가는 것입니다.또 디모데후서 3장 1~5절 말씀을 보면 이 세계 사람들의 모습, 본질, 운명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대가를 치룬 것 같이 예언자적인 삶을 살기위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대가를 치루는 것을 두려워 마십시오. 힘들고 외롭지만 대가는 치루는 것입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그들은 시장에 앉아서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너희를 위해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애곡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자 너희는 ‘저 사람이 귀신 들렸다’라고 하며”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철저히 오해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귀신들렸다고 정반대 해석을 합니다. 그럼 예수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34절을 보십시오.“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니 너희가 말하기를 ‘보라. 저 사람은 먹보에다 술꾼으로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약자들과 병든 자들 세리와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그들을 안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뒤집어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습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진리는 항상 진리입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비전도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길을 갈 것입니다. 막을 자가 없습니다. 땅 끝까지 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힘들다거나 고생한다고 말하지 맙시다. 고통스럽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찬송합시다. 기도합시다. 선포합시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시다./ 정리 윤연순 기자 yys@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