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부흥집회 1월 17일 말씀 | 하용조 목사
네가지 복, 네가지 화 본문: 누가복음 6장 12~26절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과 역경과 저주 같은 일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비록 가난해도 비난을 받아도 우리의 결혼은 따로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배부르게 되고, 부요하게 되고, 웃게 되고, 칭찬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12제자를 뽑는 일은 예수님에게 핵심적인 사건이자 굉장히 중요한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에 12지파가 있었듯이 예수님의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제자를 뽑기 전에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먼저 기도를 하셨다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 12명은 다양합니다. 얼마나 다른지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가 됩니다.여러분도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요,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자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소명을 받고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다릅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도에게는 사명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사도에게는 사명이 있고 제자에게는 소명이 있습니다. 제자로 부르심 먼저 우리는 제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세리 마태를 부르고, 베드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부를 때 예수님은 먼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지금까지 고기를 낚는 어부였지만 이제는 네 인생의 방향을 내가 바꿀 것이다. 이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직장에 가는 것도, 결혼에 대한 프러포즈를 받는 것도 일종의 ‘부름’입니다. 그러나 가장 최고의 부름은 사람의 부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 네 인생을 투자해서 나를 따르겠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안 들으려고 할뿐이지 예수님은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골치가 아플까봐 그 부름을 못 들은 척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끊임없이 ‘나를 따르라’고 부르십니다.저는 군대에서 폐병이 들어 누웠을 때 3개월 만에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종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제가 신학을 할 때까지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3년간 신학을 하는 동안 내내 두려웠고 회의가 들었습니다. 늘 두려웠고 자신감이 없었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이 저를 목사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처음부터 자신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쯤 회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그렇게 불렀습니다. 직업을 바꾸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고, 삶을 바꾸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소명이 있어야 사명이 생깁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신 후에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선교사는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너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 험한 선교지에 가서 내 이름을 영광스럽게 만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는 굉장히 권한이 많습니다. 4복음서에 12제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4복음서는 제자들의 이야기이고,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이야기입니다. 17~19절에는 교회의 모습이 나옵니다.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귀신들린 자도 있고, 병 들린 자도 있고, 마음 상한 사람도 있고, 비전을 받은 사람도 있고, 제자도 있고,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고, 문제가 해결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공동체입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 마음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기적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싸우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새벽기도를 하고 천국을 만드는 것이 기적입니다. 네 가지 축복 예수님은 네 가지 축복된 삶에 대해 말합니다. 20~23절을 보십시오.여기서 예수님은 네 종류의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생각하는 복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네 종류 사람입니다.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착각하기 쉽습니다. 세상은 이것을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서는 복이라고 하는데 세상에서는 복이 아니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자꾸 복을 달라고 말합니다. 복은 이미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네 가지 복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는 마음이 부요한 사람이 복이 있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를 가난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천국에서는 네가 가장 복 받은 사람’이라고 복의 개념을 바꾸어주십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곧 부도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업잘 하던 사람이 부도나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어 도망 다닙니다. 마음이 지극히 가난해집니다.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도울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까지 파산이 나서 더 이상 자신의 윤리와 인격, 도덕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가진 것도 없고, 파산했습니다. 두 손 다 들었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네가 이제 축복의 문에 들어섰다’고 말합니다. ‘네 마음이 낮아지고 낮아졌으니 이제야 말로 나를 만날 수 있게 됐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 사람이 바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둘째, ‘굶주린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곧 배부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부른 사람은 더 이상 배부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굶주린 사람은 곧 배부르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세상적인 것들로 배불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굶주림이 없습니다. 셋째, ‘울고 있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울고 있는 사람을 세상 사람들은 동정하고 불쌍히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네가 울고 있느냐 곧 웃게 되고, 기쁨이 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나를 바라보고, 나를 기대하라. 신뢰하라 그러면 네 울음이 변해 기쁨이 되고, 네 배고픔이 변해 배부르게 되고, 네 가난이 부요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의 축복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축복과 개념이나 가치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가치관, 축복관을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넷째, 핍박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칭찬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핍박받는 사람이 있다면 억울해 하지 마십시오. 오늘 내 인생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을 바꾸십시오. 이제 어떤 사람에게 화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4~26절을 보십시오. 네 가지 화 성경은 화가 미치는 네 종류의 사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부요하다고, 지금 배부르다고 오만하고 만족한 사람들, 지금 웃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지금 칭찬 받았다고,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요함과 배부름과 웃는 것과 칭찬받는 것이 영원까지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기도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과 역경과 저주 같은 일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축복의 시작입니다. 네 가지 화, 네 가지 축복을 확실히 마음에 깨달아 비록 가난해도, 배고파도, 울고 있어도, 비난을 받아도 그것은 결론이 아니라 우리의 결론은 따로 있음을 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배부르게 되고, 부요하게 되고, 웃게 되고, 칭찬받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정리 차명권 기자 salt@onnu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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