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새설교 5 사랑으로 가신 죽음의 길 / 반태효 목사
이사야 53:1~12
십자가의 예수님을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로 믿고, 우리의 치료자이심을 믿는 사람마다 구원받고 나음을 입을 것입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의 보혈이 우리를 치유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복 있는 자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제자들과 성만찬을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마지막 설교를 하십니다(요 14~16장). 그리고 이 땅에서 제자들과 우리들을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마지막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하나님! 저들을 지켜주옵소서. 하나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고 겟세마네로 가십니다. 거기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로 온밤을 지새우다 한밤중에 체포됩니다. 불과 12시간도 되지 않아 재판에서 사형까지 내려지고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금요일의 사건입니다.그런데 현장에서 직접 십자가의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도 십자가의 참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십자가는 비밀 중에 비밀입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한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믿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철학으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어제 말씀 중에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고전 15:13~19). 여기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십자가가 없다면 부활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열매입니다. 성경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롬 6:23). 부활은 더 이상 사망 권세가 우리를 붙들어 놓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십자가가 죄의 문제,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 53장은 바로 십자가의 노래입니다. 1절 말씀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누가 믿겠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 사도행전 8장에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 있는 내시가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오는 사건이 나옵니다(행 8:27). 그는 일주일간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한 달간의 시간을 보냅니다. 돌아가는 길에도 흔들거리는 병거에서 성경을 읽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휴대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양피지나 파피루스라는 식물로 만든 종이에 사람이 직접 손으로 쓴 성경입니다. 그만큼 성경책이 아주 비싸고 귀했습니다. 간다게의 내시는 구약의 복음서라고 할 수 있는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믿음에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특별히 한 사람을 지명하여 보냅니다. 그가 바로 사마리아 부흥운동의 주역인 빌립입니다. 빌립이 마차 옆에서 이 내시가 이사야서 53장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깨닫느냐’고 묻습니다. 누구라도 이 정도의 믿음과 열정이라면 누가 가르쳐줄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이 이사야인지, 이스라엘 사람들인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빌립은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설명할 때 내시의 눈이 열리고 스스로 세례 받기를 청하고 길거리에서 세례를 받습니다.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서 진정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지신 예수님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멸시 당하고 버림받고 고통을 겪었고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경건했던 유대인들도 무시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진실은 우리의 죄와 질병과 허물을 예수님께서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4~5절). 예수님도 정말 그 짐을 지기가 고통스러웠습니다. 결코 육신의 고통을 두려워해서가 아닙니다. 육신의 고통을 당하실 때에는 신음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예수님께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짐은 바로 모든 인류의 죄악의 짐입니다. 우리 인생의 짐입니다. 십자가에서 당한 고난은 군병들의 채찍이 아닙니다. 단지 못 자국이 아닙니다. 인류가 가지고 있던 죄의 무게만큼 하나님의 진노를 한 순간에 한 몸으로 받아낸 자리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을 깎이는 잠잠한 어미 양처럼 온전한 순종의 잔을 마십니다(7절).십자가의 예수님을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로 믿고, 우리의 치료자이심을 믿는 사람마다 구원받고 나음을 입을 것입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의 보혈이 우리를 치유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재판은 이 땅에서 가장 불의한 정치적, 종교적 재판이었습니다(8절). 로마와 유대종교가 결탁한 정치적 재판이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제국이 가장 체계적인 종교와 손을 잡고 가장 부당한 재판을 한 것입니다.8절에 보면 ‘그가 당하는 것은 내 백성의 죄악 때문이라고 중얼거리기라도 한 사람이 우리 세대 가운데 누가 있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사건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선명하게 봤지만 의미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가 십자가 사건을 예언한 사실은 매우 놀랍습니다. 마치 십자가를 보면서 기록한 말씀 같습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시신이 부자의 묘실에 묻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 나타납니다(눅 23:49~ 53). 제자들도,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두려워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 요셉입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걸고 예수님의 장례를 치릅니다. 그리고 아무도 쓰지 않는 돌로 만든 부자의 묘실에 안장합니다. 이는 오늘날 국립묘지에 안장한 것과 같이 마지막에는 죄인이 아님을 확증하는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승리’
10절에 보면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에 대해 ‘여호와께서 원하신 일이 그의 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방관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여러분, 고난주간 동안 애매하게 금식하기보다 전도하십시오. CGNTV 안테나를 달아주십시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입니다.예수님은 많은 인류의 모든 자손들을 보고 기꺼이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을 보셨기에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의 날들은 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10절). 주후 2008년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역사의 주인공이시고, 역사를 다스리는 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내 종이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며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11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구원받을 인류를 바라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시고 바라보던 얼굴은 바로 여러분의 얼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얼굴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를 통해 구원받을 잃어버린 영혼의 얼굴도 있었습니다(11절).여러분, 사람들은 십자가에 대해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저주라고 말하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준 것과 같이 십자가는 승리입니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미 이겼다(요 16:33).”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며, 구원의 중심입니다./ 정리 :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