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특새설교 6 주님을 모실 준비가 되었나요? / 라준석 목사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4:9~18

예수님과 우리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시 살아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 만나고, 살아남은 자들이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오늘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9절을 보겠습니다.“이제 형제 사랑에 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여기서 형제는 ‘예수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1차적으로 믿는 사람간의 사랑에 대해 먼저 쓰겠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 13:4)’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첫 번째, 사랑은 ‘서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늘 강하게 보이는 사람에게도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바꿔 말하면 늘 연약해 보이는 사람도 충분히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묵상하면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하지만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랑은 없습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랑은 딱 하나,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무조건적이고 끝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주저없이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다가와 한없이 사랑을 베푼다면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을 베푸는 것을 머뭇거립니다. 주저하지 말고 베풀기 바랍니다. 누군가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은 ‘서로 사랑’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나를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적은 물질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사랑의 깊이가 영성의 깊입니다. 크리스천의 영성은 묵상하고 관상하고 앉아서 도 닦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넓이가 영성의 넓이입니다. 오늘 말 한마디, 생각 하나, 표정 하나, 행동 하나, 서로 사랑하며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요즘 우리가 하용조 담임목사님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하 목사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늘 기도하십니다. 목회자와 성도 간에, 부부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제자의 표시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사랑

사랑의 두 번째 포인트는 10절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실제로 마케도니아 전역에 있는 모든 형제들에게 사랑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우리가 여러분에게 권면하는 것은 여러분이 더욱 풍성히 행하고.”여기서 ‘실제로’라는 말과 ‘행하고’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의지요, 행동이요, 결단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힘든 것입니다. 마음과 감정으로만 사랑하면 전 인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포기가 따르고 수고가 따르고 실제 행동이 따르기 때문에 힘듭니다.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으로만 헌신하면 오대양 육대주에 선교사가 모두 파송돼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 포기하고 가는 행동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내 의지 가운데, 내 감정 가운데, 내 육체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셔야만 가능한 것이 사랑입니다.세월의 수만큼 사랑이 깊어져야 합니다. 사탄이 역사하면 세월의 수만큼 상처만 더 깊어집니다. 세월의 수만큼 사랑이 깊어져야 영성이 깊어집니다. 세 번째, 사랑은 성실함입니다.(11절)‘조용한 삶’, ‘자신의 일’, ‘손으로 일하기’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조용한 삶’은 시끄럽게 싸우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깊이 있는 삶을 말합니다. ‘자신의 일’이라는 것은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손으로 일하기’는 게으르지 말고 나태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지런함을 말합니다. 깊이 있고 책임감 있고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성실함입니다.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녀가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실의 끝자락에는 기적이 일어나고 감동이 있습니다.크리스천이 믿음 없이 성실하면 고집스러운 이성주의자가 됩니다. 여러분 모두 사랑 때문에 오는 책임감 때문에 오는 근면함과 성실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그렇다면 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왜 크리스천은 사랑을 베풀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외부 사람들에 대해 품위 있게 행동하고 아무것도 궁핍함이 없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신세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크리스천들은 믿지 않는 사람을 늘 신경 써야 합니다. 신경쓰지 않는 것은 성격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입니다.품위는 존경과 칭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품위 유지는 곧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5절에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내 제자임을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믿음으로 서로 위로하라

13절부터 18절까지는 죽은 자의 부활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13절과 18절을 읽겠습니다.“형제들이여, 이제 우리는 여러분이 잠든 사람들에 대해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는 여러분이 소망이 없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3절)“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하십시오.”(18절)사랑이란 서로 위로하는 것입니다. 내 가족가운데 누군가 죽더라도 남아 있는 가족 중 슬픈 사람들을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한 마디로 말하면 ‘죽음은 끝이 아니다’는 것입니다.(14~17절)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이미 예수 믿고 죽은 사람들과 우리는 만날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슬퍼하는 가족들을 위로하십시오. 예수님과 우리는 운명 공동체입니다.(14절) 그러므로 우리도 다시 살아납니다. 또 15절에 보면 ‘살아남은 사람’과 ‘잠자는 사람’에 대해 나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내 가족이 죽어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잠자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 만나고, 살아남은 자들이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16~17절)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죽음과 생명의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죽은 자도 살아있고 살아남아 있는 자도 살게 되는데, 언젠가 주님 안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위로하십시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쉼표입니다. 우리는 다시 만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해피 앤딩입니다. 사랑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성실함에서 옵니다. 말씀으로 위로하는 것입니다.오늘 성찬하실 때 먼저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 가운데 밀려오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주를 만나서 이미 죽어간 성도들과 만나서 축제를 벌일 것이라는 그 축제 분위기가 흘러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흘러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또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와 고통과 고난과 질병을 다 짊어지셨는데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회복되며 귀신이 떠나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며 사십시오.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사랑이 충만하게 임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정리 :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