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1월 9일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한홍 목사 / 마가복음 2장 13~22절

모든 익숙한 것들에 대한 고집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새로운 포도주를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세리 레위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생애의 최고의 사건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완전히 변합니다. 예수님께서 레위에게 ‘나를 따라오너라’고 했더니 그는 벌떡 일어나서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나를 언제든지 불러서 쓰실 수 있도록 인생이 아주 심플해져야만 가능합니다. 영성이란 단순함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레위는 제자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전통과 법규의 노예가 된 바리새인

15절에 세리 레위가 잔치를 벌였다고 나옵니다. 이 때 예수님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뭔가 지적할 것을 찾아내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한테 감히 직접 말하지는 못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야단쳤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전통에 의하면 더러운 것과 접촉하면 그 사람도 같이 더러워진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어떻게 음식을 먹느냐고 제자들에게 말한 것입니다.(16절) 바리새파 사람들이 시비를 거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문현답인 답변을 하십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17절) 이 말씀에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실제로는 의인이 아니면서 스스로 영적으로 건강하고, 의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영적인 병자임을 인정하고 죄인임을 자각하는 영혼들을 가슴에 품는 것이 ‘내 인생이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무서운 질책을 하고 계십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 문제로 예수님께 두 번째 도전을 합니다.(18절)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은 금식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경건한 사람의 표본이라는 율법 조항들을 만들어 그것을 거룩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금식은 남을 평가하고 자신을 높이는 자기과시의 도구였습니다. 바리새인을 향해 예수께서는 또 기막힌 답변을 하십니다. 결혼잔치는 축제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되십니다. 그분이 내 인생에 들어오시는 순간은 최고의 축복이 터지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랑이 함께 있는 한 금식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19절) 주님과 함께 있을 때는 즐겨야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금식 자체를 부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금식도 필요하지만 그것도 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금식해야 할 때는 놀다가 주님이 오셨는데 갑자기 금식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뭐하는 것이냐고 지적하십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텐데 그날에는 금식하라’고 하십니다.(20절) 신랑을 빼앗긴 날의 의미는 첫 번째 다가올 주님의 십자가 죽음의 날입니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그 죽음이, 지고한 사람의 희생이 제자들로 하여금 금식하게 했습니다. 두 번째는 주님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할 때, 영적인 민감성이 떨어져서 주님과의 첫사랑을 다시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 이외에 주님이 함께할 때의 금식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금식은 주님과 나와의 관계 문제입니다. 내 믿음이 다른 사람의 믿음보다 좋다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 노래를 부르는 ‘새 부대’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큐티의 핵심 포인트가 되는 유명한 ‘새 포도주와 새 부대’의 비유 이야기를 하십니다. (21~22절)새 포도주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내 삶의 일부분을 수리하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옛사람을 완전히 폐차시켜 버리고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신앙은 죽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완전히 거듭나는 것입니다. 낡은 부대로는 새 포도주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22절에서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서 모두 버리게 된다는 것은 내 인생이 망가지고 하나님의 영광도 땅에 떨어져서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엄청난 축복의 단비를 감당하려면 내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새 술이 예수님을 상징한다면 새 가죽부대는 우리 영혼의 틀입니다. 우리의 굳어진 생각, 가치관, 인격, 마음가짐, 삶의 철학 등 이 모든 것이 부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우리는 낡은 가죽부대를 너무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주님을 믿을 때는 열기가 있지만 금방 식어버리고 경직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빨리 전통의 노예가 됩니다. 이것이 구약 율법시대의 옛 가죽부대에 사로잡혀 사는 바리새인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가 일만 커지고 주님은 안 보이는 것이며, 주님을 예배하다가 주님은 사라지고 예배만 남은 것입니다. 껍질만 남은 것입니다. 우리도 영적인 긴장을 조금만 늦추면 우리의 가죽부대가 금방 낡은 가죽부대가 됩니다. 너무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영성을 제한하고 박제된 삶을 삽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예수를 안 믿는 것이 아니고 내게 익숙한 방식대로만 믿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익숙한 것들에 대한 고집을 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새로운 포도주를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새 마음_ 유연함, 겸손, 열정, 사랑

새 부대란 하나님이 주시는 새 마음을 의미합니다. 새 마음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유연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대로 찰흙처럼 늘였다가 줄였다가 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유연한 마음은 선입견을 가지지 않습니다. 거룩한 신념은 가지십시오. 하지만 자신의 고집은 꺾어져야 합니다. 하나님한테 설득을 잘 당해야 합니다. 유연한 마음은 자신과 교단이 다른 사람, 자신과 다른 코스로 훈련을 받은 사람,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 자신보다 어린 사람한테도 마음을 열어놓고 배웁니다. 기도의 시간은 낡은 가죽 부대가 꺾어지고 새 가죽부대가 생기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면 내 고집이 죽습니다. 내 고집이 있지만 하나님한테 설득당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쉽게 남을 판단하지 않고 남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마음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만을 깨시고 겸손한 마음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 열정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성령의 새 마음으로 하면 열정이 생깁니다. 열정의 사람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합니다. 이 사람의 시간과 돈은 항상 하나님이 쓰실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흥분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열정의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발걸음에 맞추어 춤을 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한테 애타게 부탁하는 것은 자꾸 저 사람들을 야단칠 대상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잃어버린 영혼들로 봤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새 시대마다 보여 주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가슴에 품는 애틋한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주위에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을 평가 절하하고 세상을 욕만 했지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던 것을 오늘 우리가 회개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스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잔치를 베풀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을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그 새 부대가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박영주 기자 pyjoo@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