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 지금 내 마음 밭은 어떤가
반태효 목사 / 마가복음 4장 1~12절
말씀을 듣는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니고, 들었다고 다 들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청력이 아닌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점점 드러나고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화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추위도 뚫고, 어려움도 뚫고, 주님 계시고 말씀이 있는 곳이면 산이든 호수든 어디든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적대감과 반대 세력들의 비판들은 점점 더 거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반대와 적대감을 무릅쓰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 자신이 가야할 길에 집중하셨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여러분, 어려움이 있을 때 위기와 어려움을 돌파하는 비결은 ‘집중’하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과 내 사명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대파들을 설득하고 비판하는 자들을 논박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자신이 가야할 길에 집중하셨습니다. 여러분, 올 한 해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에 집중하고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1절)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행하신 것은 파격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회당, 성전에서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노방전도뿐만 아니라 길거리 설교를 즐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선포할 때 전통적인 랍비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전하신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비유’를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유는 진리에 이르는 창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고 들어가게 하는 창문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는 듣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호숫가에 설교 들으러 나와 있는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랍비들처럼 가르치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닫은 사람, 비판적이고 가르치려는 사람, 식상한 사람, 사모하지만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사람, 배움이 없어서 랍비들의 설교가 너무 어려운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 말씀을 전하십니다.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많은 비유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비유들 가운데 한 가지 공통점은 ‘씨 뿌리는 비유’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씨 뿌리는 비유로 시작하셨습니다. “잘 들어라. 어떤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갔다”(3절)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길가로, 어떤 씨는 돌밭으로, 가시덤불 속으로 뿌려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좋은 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돌밭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농부가 씨를 뿌리고 바람에 씨들이 날아가 어떤 씨는 길가로, 돌밭으로, 가시밭으로 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씨들이 날아가서 좋은 땅에 뿌려지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었던 것입니다. 진리는 마음으로 들어야 그런데 문제는 씨 뿌리는 사람이 아니라 밭에 있습니다.(3절) 이것은 곧 마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맺는 것과 맺지 않는 것은 씨 뿌리는 사람도, 씨의 종류의 문제도 아닌 밭의 문제이자 마음의 문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수 년 동안 듣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새벽기도를 통해서 여러분의 심령이 다 옥토와 같이 변화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라도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 맺는 인생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9절)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설교하시는데 듣지 않는 자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온유해지고 성격이 변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뿔이 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듣는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는 청력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에 대해서 바울이 칭찬을 합니다. 바울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곳이 베뢰아였습니다. 원래 바울의 비전은 데살로니가에서의 복음전파였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바울은 쫓겨나다시피 합니다. 그때 잠깐 몸을 피한 곳이 베뢰아였습니다. 베뢰아는 전도하러 간 곳이 아니라 몸을 숨기기 위해서 간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바울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더니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행 17:11) 베뢰아 사람들은 누구의 말이든지 잘 듣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열매 맺는 밭은 간절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밭입니다. 새벽을 뚫고 예배하러 나오는 마음, 이것이 바로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바울의 말을 들었고, 바울은 베뢰아 사람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바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 데살로니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들을 때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살 2:13) ‘바울을 통해 하나님이 지금 내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며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이 보기에 초라해 보이고 신뢰할 만한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일단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지금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며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이 바로 옥토와 같은 사람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이제 예수님과 제자들만 남았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예수님, 비유가 무슨 뜻입니까. 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됐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해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12절) 이 말씀은 예수님이 택한 사람에게만 듣게 하시고, 다른 이들은 깨닫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마음이 강퍅하고 완악해서 마치 예수님을 감시하고 조사하러 온 종교 지도자들처럼 마음이 닫혀 있는 자들에게도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중의 선지자, 선지자들의 왕이라고 하는 이사야를 듣지 않는 백성에게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이 되시고, 그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십니다.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말씀을 전합니다. 듣지 않는 사람에게 다시 비유를 통해서 또 한 번 구원의 세계로, 말씀의 세계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고 순종하시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위기라고 말할 때 하나님 음성을 듣고 회복되시고, 치유되시고, 살아나시고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kr
말씀을 듣는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니고, 들었다고 다 들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청력이 아닌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점점 드러나고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화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추위도 뚫고, 어려움도 뚫고, 주님 계시고 말씀이 있는 곳이면 산이든 호수든 어디든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적대감과 반대 세력들의 비판들은 점점 더 거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반대와 적대감을 무릅쓰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 자신이 가야할 길에 집중하셨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여러분, 어려움이 있을 때 위기와 어려움을 돌파하는 비결은 ‘집중’하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과 내 사명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대파들을 설득하고 비판하는 자들을 논박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자신이 가야할 길에 집중하셨습니다. 여러분, 올 한 해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에 집중하고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1절)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행하신 것은 파격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회당, 성전에서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노방전도뿐만 아니라 길거리 설교를 즐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선포할 때 전통적인 랍비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전하신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비유’를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유는 진리에 이르는 창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고 들어가게 하는 창문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는 듣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호숫가에 설교 들으러 나와 있는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랍비들처럼 가르치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닫은 사람, 비판적이고 가르치려는 사람, 식상한 사람, 사모하지만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사람, 배움이 없어서 랍비들의 설교가 너무 어려운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 말씀을 전하십니다.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많은 비유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비유들 가운데 한 가지 공통점은 ‘씨 뿌리는 비유’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씨 뿌리는 비유로 시작하셨습니다. “잘 들어라. 어떤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갔다”(3절)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길가로, 어떤 씨는 돌밭으로, 가시덤불 속으로 뿌려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좋은 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돌밭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농부가 씨를 뿌리고 바람에 씨들이 날아가 어떤 씨는 길가로, 돌밭으로, 가시밭으로 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씨들이 날아가서 좋은 땅에 뿌려지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었던 것입니다. 진리는 마음으로 들어야 그런데 문제는 씨 뿌리는 사람이 아니라 밭에 있습니다.(3절) 이것은 곧 마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맺는 것과 맺지 않는 것은 씨 뿌리는 사람도, 씨의 종류의 문제도 아닌 밭의 문제이자 마음의 문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수 년 동안 듣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새벽기도를 통해서 여러분의 심령이 다 옥토와 같이 변화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라도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 맺는 인생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9절)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설교하시는데 듣지 않는 자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온유해지고 성격이 변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뿔이 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듣는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는 청력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에 대해서 바울이 칭찬을 합니다. 바울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곳이 베뢰아였습니다. 원래 바울의 비전은 데살로니가에서의 복음전파였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바울은 쫓겨나다시피 합니다. 그때 잠깐 몸을 피한 곳이 베뢰아였습니다. 베뢰아는 전도하러 간 곳이 아니라 몸을 숨기기 위해서 간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바울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더니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행 17:11) 베뢰아 사람들은 누구의 말이든지 잘 듣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열매 맺는 밭은 간절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밭입니다. 새벽을 뚫고 예배하러 나오는 마음, 이것이 바로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바울의 말을 들었고, 바울은 베뢰아 사람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바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 데살로니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들을 때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살 2:13) ‘바울을 통해 하나님이 지금 내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며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이 보기에 초라해 보이고 신뢰할 만한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일단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지금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며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이 바로 옥토와 같은 사람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이제 예수님과 제자들만 남았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예수님, 비유가 무슨 뜻입니까. 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됐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해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12절) 이 말씀은 예수님이 택한 사람에게만 듣게 하시고, 다른 이들은 깨닫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마음이 강퍅하고 완악해서 마치 예수님을 감시하고 조사하러 온 종교 지도자들처럼 마음이 닫혀 있는 자들에게도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중의 선지자, 선지자들의 왕이라고 하는 이사야를 듣지 않는 백성에게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이 되시고, 그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십니다.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님이 직접 오셔서 말씀을 전합니다. 듣지 않는 사람에게 다시 비유를 통해서 또 한 번 구원의 세계로, 말씀의 세계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고 순종하시는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위기라고 말할 때 하나님 음성을 듣고 회복되시고, 치유되시고, 살아나시고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복된 인생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