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 | 영적 부익부 빈익빈
이재훈 목사 / 마가복음 4장 13~25절 진리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전하는 사람은 진리를 더욱더 많이 깨닫고 풍성한 진리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있는 진리의 삶마저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씨앗과 땅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씨앗이 뿌려지고 자라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을, 땅은 우리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나 조직 속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속에 임합니다. 씨앗처럼 자라는 하나님 나라 씨앗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스펙터클한 사건을 통해 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씨앗이 땅에 심기고 자라 열매로 거두어지는 것과 같은 과정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소수의 제자들에게 뿌려지고, 또한 뿌려진 말씀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전해져서 온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전해지는 그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추수를 하신다는 전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수의 제자들에게 말씀의 씨앗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신뢰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과정을 통해 임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마치 농부처럼 수고하시고 인내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씨앗을 뿌리고 내일 추수를 하러 나가는 농부는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은 씨앗을 뿌리는 일이었지만,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는 각기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네 종류로 구분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읽으면서 조심해야 할 것은 인간이 네 종류의 운명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시시각각 변할 수 있는 상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침에는 가시밭과 같은 마음이었다가 저녁에 예배드릴 때는 좋은 밭으로 변하게 되는 우리 마음의 변화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같은 성경구절인데도 이전과 다른 깨달음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 마음의 토양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완악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녹아서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게 되는 것 역시 마음의 토양이 바뀌었다는 증거입니다. 마음의 토양 변화 돼야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 마음의 토양이 바뀔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길가와 같은 단단한 마음일지라도 기경하면 좋은 밭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시밭 같은 마음일지라도 가시를 걷어내면 좋은 밭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특별새벽기도회는 우리의 가시로 덮인 마음, 돌밭과 같은 마음을 다시 좋은 땅으로 갈아엎는 과정입니다. 여러분,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의 열매가 맺히는 좋은 밭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가장 핵심 되는 말씀은 23절입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말씀을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들어야 진정 듣는 것입니다. 관계는 들어주는 사람과 생기는 것입니다. 관계형성은 들음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들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에는 듣긴 들었지만 진정 들은 것이 아닌 종류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네 종류를 말씀하셨지만 크게 보면 두 종류입니다. 말씀을 듣고 반응하여 열매를 맺는 토양과 그렇지 않은 토양입니다. 첫 번째 열매 맺지 않는 토양은 길가의 토양입니다.(4절) 길가의 토양은 말씀을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너무 밟고 다녀 단단해진 길가는 씨앗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는 사단이 가장 좋아하고 안심하는 상태입니다. 말씀이 떨어져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 토양은 돌밭입니다.(5절) 유대지역에서는 땅이 얕은 돌밭에서 먼저 싹이 난다고 합니다. 위에는 흙이 있고 밑에는 돌이 있어서 뜨거운 기온에서 생기는 온돌효과로 인해 싹이 먼저 납니다. 경험이 있는 농부는 이 때 먼저 나는 싹이 있다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먼저 나는 싹을 조심합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고난이나 어려움이 오면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흥분하지만 예수님을 향해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뿌리가 없는 피상적인 신앙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토양은 가시밭입니다.(7절) 가시밭에 뿌려진 씨앗은 줄기가 나긴 합니다. 어찌 보면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과 유사합니다. 사실 가시가 있어서 그렇지 이 땅도 어떤 면에서 좋은 땅입니다. 좋은 땅이지만 좋은 땅일수록 가시가 들어오기 쉽습니다. 좋은 땅일수록 사단이 먼저 와서 가시를 심어 놓습니다. 말씀이 들어와서 자라는 것과 동시에 가시와 같은 이생의 마음도 같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자란 가시가 좋은 나무를 죽입니다. 이런 마음은 이중적인 마음을 보여줍니다. 마음이 여리고 착하고 순종적인 사람은 악한 일에도 순종하기 쉽습니다. 고집 센 사람들은 처음에 믿기 어렵지만 일단 믿으면 잘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두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멘 할 때 일어나는 역사 마지막 비유로 열매 맺는 좋은 땅이 등장합니다.(20절) 누가복음에서는 좋은 땅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신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의 가장 좋은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성령께서 네게 임하실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거룩한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눅 1:35)라고 말했을 때 너무 놀랐지만 마리아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반응했습니다. 좋은 땅이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전지전능하심이 내 안에 역사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 영혼의 토양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시밭도 돌밭도 좋은 땅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좋은 땅이라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거기서 가시가 나고 딱딱해지고 돌밭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도 열매 맺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 훈련이란 마음 밭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정원을 가꾸듯 자신의 마음을 가꾸는 것입니다. 이번 특새를 통해 영혼이 깊고 가시가 없는 좋은 마음으로 다 변화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들음의 책임 21~25절 역시 들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등불을 등잔대 위에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이 말이 들음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등불이 빛을 비출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빛 된 진리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그 말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등불을 숨기는 사람이 없듯이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숨겨서는 안 됩니다. 듣기만 해도 책임이 따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경비병이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보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엄청난 소식을 듣고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자신이 받는 진리를 나누는 사람은 더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24~25절) 진리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전하는 사람은 진리를 더욱더 많이 깨닫고 풍성한 진리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있는 진리의 삶마저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가르칠 때마다 진리는 새롭게 깨달아지게 됩니다. 가르칠 때마다 진리지식이 풍성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 정리 차명권 부장 salt@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