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부흥집회 ㅣ 1월 13일 ㅣ주인공은 내가 아닌 예수님_라준석 목사
요한복음 3장 22~30절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영광은 예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예수님을 높이면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 또한 높임을 받게 됩니다.‘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라는 고백이 여러분의 한평생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크리스천들은 항상 주인공은 내가 아닌 예수님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을 확실하게 만났을 때 가능해집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확실하게 만났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알고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보내신 메시아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죄악을 대속한 어린양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누구보다 예수님을 분명하게 만났고,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의 태도는 분명했습니다. 그는 항상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드러내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를 속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못하게 하려고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높이면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 또한 높임을 받게 됩니다.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라는 고백이 여러분의 한평생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된 ‘운명공동체’ 세례 요한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모두 등장합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특별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소망을 가지십시오. 세례 요한처럼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모든 곳에서 추천을 받는 좋은 사람이 되십시오. 세례 요한이 이처럼 네 개의 복음서에 추천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을 확실하게 만났고 확실하게 믿었으며 자신을 높이기보다 예수님을 높였기 때문입니다.세례 요한은 성숙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성숙해지려고 훈련받는 모든 것들의 결론은 세상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성숙함이란 자신의 경험적 관점에서 벗어나 성경의 관점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후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지방으로 가셔서 거기서 얼마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습니다. 요한도 살렘 가까이에 있는 애논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나아와 세례를 받았습니다.”(22~23절)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제자 그리고 세례 요한이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 또한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입니다. 또한 교회와 우리는 하나입니다.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상이 중요합니다.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제자들, 예수님과 세례 요한, 제자들과 세례 요한은 어떠한 관계입니까? 그들은 장소는 달랐지만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세례 요한이 한 팀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전에 태어난 세례 요한은 6개월 이후에 태어날 예수님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가운데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을 예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입니다.그런데 사탄은 이러한 성경적 관점을 깨뜨리기 위해 우리를 공격합니다. 신기하게도 사탄은 좋은 일 뒤에 우리에게 침투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원을 다녀오는 길에 화가 나는 일들이 자주 생깁니다. 여러분, 40일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동안 눈을 크게 뜨고 있으십시오. 반드시 영적으로 나를 화나게 만드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은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가져온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비굴·좌절·교만 불러오는 ‘비교의식’ 비교의식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해서 내가 높아지거나 반대로 나를 비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해서 만들어지는 감정은 비굴함과 좌절감 그리고 교만과 자만심뿐입니다. 비교의식은 상대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바로 알고 나를 알고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바로 알 때 우리는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비교의식에 빠진 사람들이 24절과 25절에 나옵니다. “이때는 요한이 아직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 중 몇 사람과 어떤 유대 사람 사이에 정결의식과 관련해 논쟁이 붙었습니다.”‘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라는 표현은 이때 세례 요한이 펄펄 날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등장하기 전까지 세례를 집례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세례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논쟁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세례를 주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또 다른 세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사람들 간에 논쟁이 벌어집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휘말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입장을 바꿔보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이전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던 것들이 예수님이 나타나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전혀 문제가 없던 것들이 갑자기 문제로 보이고 나태함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살펴보면 논쟁이 붙은 것과 더불어 사람들의 관심이 예수님에게로 옮겨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전에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셨던 분, 선생님이 증거하셨던 그분이 지금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 그분께로 가고 있습니다.’”(26절)자신과 함께 있던 사람이 곁을 떠나갈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떠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세례 요한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예수님에게로만 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계속해서 비교의식에 빠지게 됩니다. 비교의식은 이렇게 사람들을 끈질기게 괴롭힙니다. 또한 비교의식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옵니다. 400년 만에 나타난 선지자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베드로가 사탄의 공격을 받았던 것처럼 비교의식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비교의식은 자신이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나타납니다. 그 당시 세례를 베풀었던 사람은 요한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듯 사탄은 전문분야를 공격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분야를 공격받을 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주인공은 내가 아닌 ‘오직 예수’ 세례 요한에게 양육 받은 제자들은 비교의식의 덫에 걸려들었지만 세례 요한은 걸려들지 않았습니다.“이 말에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내가 전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한 말을 증거할 사람들은 바로 너희다.”(27~28절)세례 요한은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왔다고 고백합니다. 세례 요한의 인생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섭리사상입니다. 섭리사상은 ‘하나님께서 다스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를 받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내게 온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이해해야만 비교의식에 빠지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다고 느껴져도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보다 훨씬 높습니다. 또 한 가지 묵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닌 예수님이 주목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부를 얻는 자는 신랑이다. 그러나 신랑의 친구는 신랑을 기다렸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그 음성으로 인해 매우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다. 그분은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29~30절)영광은 예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여러분의 삶 속에서 예수님이 드러나고 항상 예수님이 주인공이라고 고백하길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기자 one@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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