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부흥집회ㅣ1월 8일 ㅣ 예수님을 따르라_ 라준석 목사
요한복음 1장 43~51절 나를 부르시고, 편견을 깨뜨리시는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기에 정확하게 판단하시고 서야 할 위치를 정해주십니다. 그 주님을 우리가 따라가면 삽니다.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이전에 보지 못한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43절입니다.“다음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떠나시려다 빌립을 만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 주님을 따라가면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따라가야 할 주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나를 부르시고, 편견을 깨뜨리시는 주님 첫째, 주님은 사람을 부르십니다. 좀더 좁혀 말하면 주님은 나를 부르십니다. 주님은 여러 종류의 사람을 부르십니다. 어제 큐티 본문에서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십니다. 주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부르십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을 부르시지만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부르셔야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에 온 것도 주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통해서 주님을 만나기는 했지만 우리가 주님을 믿게 된 것도 주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 모양과 방법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지만 주님이 나를 불렀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양한 사람을 부르셨는데, 한 가지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사실은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우연히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둘째, 주님은 편견을 깨뜨리는 분이십니다. 44절입니다. “빌립도 역시 안드레와 베드로처럼 벳새다 마을 출신이었습니다.”벳새다는 ‘고기잡이 집’이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벳새다는 어부들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 태어날 수 없는 곳이라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45절과 46절에도 당시의 편견이 또 한 가지 나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했고 예언자들도 기록했던 그분을 우리가 만났소. 그분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시오!’ 나다나엘이 물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빌립이 말했습니다. ‘와서 보시오!’”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하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는 말을 합니다. 당시에는 벳새다 출신 중에는 위대한 사도가 날 수 없다는 것과 나사렛 동네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편견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사렛은 이스라엘 땅 가운데 가장 소외된 지역으로 손꼽히는 시골 지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나사렛에서는 예수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벳새다, 고기잡이 집에서는 위대한 리더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편견을 산산조각 나게 하십니다.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나올 수 있으며 벳새다에서도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과 같은 위대한 제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 잘못된 생각들을 깨뜨리신 것입니다. 편견 가운데 아주 무서운 편견이 ‘나 같은 것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가?’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고, 내가 어떻게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하겠는가, 10년 전 내 모습을 그 친구가 다 알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전도할 수 있는가?’라는 편견이 우리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생각은 모두 사탄이 준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이 집안에서도,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경험과 지식에서 오는 편견이나 다른 사람이 주는 편견을 집어넣으면서 사람을 괴롭힙니다. 우리의 과거를 들춰내서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전도나 기도를 하려고 할 때도 힘들게 하고, 자신이 예전에 했던 말 때문에 올바른 행동을 못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쓰시는 분이십니다. 영적인 세계는 새로운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말씀의 은혜도 옛날에 읽었던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전의 영적 경험도 전부가 아닙니다. 무궁무진한 새로운 세계가 있습니다. 통찰력과 직관을 가지신 주님 셋째, 주님은 놀라운 통찰력과 직관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47절입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다가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참 이스라엘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는 거짓된 것이 없다.’”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자마자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아차리셨습니다. 통찰력과 직관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리더에게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자마자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잘할 수 있고, 어떤 위치에 맞는지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48절입니다. “나다나엘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보았다.’”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나다나엘이 기도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먼저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과거와 재능, 성격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판단력은 실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통찰력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다나엘을 알고 계신 주님께서 동일하게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이 지금의 위치에 여러분을 세우셨습니다. 자녀도 당신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 자녀에게 당신이 딱 맞는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사랑으로 돌보십시오. 주님은 나의 부족함을 알고 계시기에 부족함을 채워줄 사람을 옆에 붙여주십니다. 내가 하는 일도 나를 아시는 주님이 정확하게 판단하셔서 나를 훈련시키시거나 나에게 복을 주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나다나엘을 만나기 전에 미리 무화과나무 아래서 그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나다나엘 속에 간사함이 없는 것까지 알고 계신 주님이 바로 여러분의 인생을 지금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나를 부르시고, 편견을 깨뜨리시는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기에 정확하게 판단하시고 서야 할 위치를 정해주십니다. 때로는 일이 풀리지 않게도 하십니다. 그래야 우리가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일이 매일 잘 풀리면 우리가 교만할 것을 아시기에 때로는 막으시고 천천히 가게 하십니다. 그 주님을 우리가 따라가면 삽니다. 날마다 더 큰일을 보게 하시는 주님 마지막으로 우리가 따라가야 할 주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50절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던 너를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이제 그보다 더 큰일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은 날마다 더 큰일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보게 될 더 큰일이 51절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은 하늘을 여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실 때 나타난 사건과 같습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왔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것을 우리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이 변하기 위해서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창세기의 야곱과 요한계시록의 세례 요한도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의 생각을 하게 하시고 하늘의 비전과 하나님의 생각을 갖고 살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점점 더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빗살만큼 아주 조금 하늘이 열렸는데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점점 더 많이 하늘이 열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불렀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따라가면 ‘나는 이것밖에 안 된다’는 편견이 깨지고 위대한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세우십니다. 하늘 문이 열려 주님의 판단력이 내게 들어올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이전에 보지 못한 영적인 세계를 보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하늘로 올라가 천국에 살게 되는 놀라운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성경말씀을 열심히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어떤 어려움과 시련이 있더라도 주님을 따라 사십시오. / 정리 박영주 기자 pyjoo@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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