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특별새벽부흥집회 ㅣ 1월 19일 ㅣ예수님을 찾는 자가 누리는 은혜_반태효 목사

예수님을 찾는 자가 누리는 은혜

요한복음 4장 43~54절

기적을 추구하고, 표적을 구하고, 은사를 자랑하는 것이 믿음의 지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마른 뼈도 살아납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 앞에서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사람들의 영적 태도와 반응을 보셨습니다. 그곳은 유대, 예루살렘, 사마리아, 그리고 고향인 나사렛과 갈릴리였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예수님을 소중히 여기고 그분을 향한 영적 태도를 보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의심하고, 핍박하고, 배척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행하느냐?”라는 말을 들었고, 갈릴리에서도 존경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하나님

부흥은 뜻밖의 장소에서 일어납니다. 사마리아처럼 말입니다. 선교나 전도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부흥을 기대했던 곳에서는 냉담한 반응이 나타나고,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우리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대와 현장에서 역사하는 영적인 반응이 다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또한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면 예배가 익숙해지고, 교회 생활이 익숙해집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뭐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늘 하던 찬양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부르면 날마다 새롭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영혼이 깨어 있고 살아있으면 매 순간이 새롭습니다. 이런 면에서 지식은 신앙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 도착하자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를 환영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께서 거기서 행하신 일들을 모두 목격했던 것입니다.”(45절)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평소 예수님은 보통 이웃이었는데, 예루살렘에서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온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 말씀을 들으면 인식과 시각이 달리지게 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에 복이 있다

“예수께서는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곳인 갈릴리 가나에 다시 들르셨습니다. 그곳에는 왕의 신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병에 걸려 가버나움에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셨다는 소문을 들은 왕의 신하는 예수께로 가서, 오셔서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46~47절)

예수님이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신 곳은 ‘가나’라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예수님이 그곳을 다시 방문하셨을 때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들이 병에 걸린 왕의 신하였습니다. 가버나움에 있던 왕의 신하가 가나까지 달려왔습니다. 자기 하인을 보내지 않고 직접 달려왔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무명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에게 달려가서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고난 자체는 절대로 유익하지 않지만,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내게 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하더라고 죽어가는 아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구나” 하며 그 신하는 비로소 자신의 가난함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여러분, 가난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이 없는 불신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은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 신하는 아들을 위해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부끄러움, 체면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달려온 것입니다.

표적이 아닌 말씀을 붙잡는 신앙

“너희는 표적이나 기사를 보지 않고서는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48절)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믿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어떤 곳에서 표적과 기적의 은사가 나타나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옵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반드시 표적과 기적이 있지만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표적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실 때 여러 종류의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길가 같은 마음, 돌밭 같은 마음, 가시밭 같은 마음, 옥토 등입니다. 표적과 기적을 구하는 믿음은 돌밭 같은 믿음입니다. 표적과 기적이 있을 때는 믿음이 있고 열정이 생기지만 현실에 부딪히면 금방 믿음이 흔들리고 신앙의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적과 기적을 계속해서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에 뿌리를 내려야 할까요?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가 보아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50절)

예수님은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와서 안수라도 해주시지’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만 하신 것은 믿음을 교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표적과 기적을 구하는 믿음은 건강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2010년 온누리교회 표어가 ‘말씀과 성령’입니다. 다시 기초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중심에 말씀과 성령이 뿌리 내려야 합니다.

여러분, 기적을 추구하고, 표적을 구하고, 은사를 자랑하는 것이 믿음의 지표가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의 능력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가라. 네 가정이 회복될 것이다. 가라. 네 직장이 살아날 것이다. 가라. 네 믿음이 회복될 것이다”라고 선포하십시오. 말씀과 성령 외에는 우리의 삶을 회복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마른 뼈도 살아나게 하는 ‘말씀’

“신하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마중 나온 하인들을 만나 아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하인들에게 아이가 언제부터 좋아졌느냐고 묻자 ‘어제 오후 1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종들이 대답했습니다.”(51~52절)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사실 이 믿음은 온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여전히 표적과 기적을 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만약 이 신하가 정말로 믿었다면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하는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으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발걸음을 떼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말씀만 한 마디 들었을 뿐입니다. 얼마나 허전했을까요. 아들이 정말 살았는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말씀을 붙들고 가면서도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그런데 종들에게서 “아들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때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의 온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53절)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아날 것이다”고 하는 그 순간에 아들이 나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그 순간 이루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붙들면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마른 뼈도 살아납니다. 허망한 소망을 붙들지 말고, 표적과 기적만 좇지 마시고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매일 큐티 하면서 부딪히는 한 말씀, 여러분 마음에 속삭이는 한 말씀을 붙들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여러분의 자녀와 가정이 살아날 것입니다.

믿음은 자라야 합니다. 머물러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격증이 아닙니다. 믿음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표적을 구하는 믿음에서 시작했을지라도 그 자리에 머물지 마시고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김남원 기자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