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부흥집회 ㅣ 1월 21일 ㅣ참된 안식이란 무엇인가?_반태효 목사

참된 안식이란 무엇인가
요한복음 5장 10~18절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고 안식과 쉼을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쉬지 않으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갈릴리 사람들은 기적과 표적이 일어날 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적과 표적이 아닌 말씀 때문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원했고, 그래서 예수님이 머무르시기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종교적이고 영적인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표적을 일으키시고, 말씀을 선포할수록 사람들은 예수님을 더 적대하고 핍박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셨습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주신 진정한 안식
그랬더니 바로 문제가 생깁니다. 10~12절입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은 병이 나은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안식일이니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소.’ 그러나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 병을 고치신 분이 내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거라’고 하셨소.’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한 사람이 대체 누구요?’”
이 말씀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사랑입니다. 또한 모든 계명은 우리의 자유와 행복과 축복을 위해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38년 된 병자가 일어난 것을 기뻐하고 축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가 일어난 것은 보지 않고,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만 보고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진정한 ‘안식’은 무엇일까요. 누워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38년 병고로부터 벗어나는 것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 중 하나가 병고입니다. 이사야 53장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질고를 친히 지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고, 주님께서 우리의 병고를 대신 지셨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으로 치유가 일어납니다.
참 진리는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마 11:28)
주님은 안식으로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38년 된 병자에게 처음으로 안식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진정한 안식을 주셨는데 종교지도자들은 살아난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안식일에 법을 어긴 것에 시비를 겁니다. “도대체 누가 당신의 병을 고쳤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이 정상인데 “당신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한 사람이 대체 누구요?”(12절) 라고 묻습니다.
“병이 나은 사람은 그분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께서는 이미 떠나셨기 때문입니다.”(13절)
베데스다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나은 것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예수님은 그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한 사람만 고치셨을까요? 14절입니다.
“나중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이 사람을 만나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네가 다 나았구나. 더 심한 병이 네게 생기지 않도록 이제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주님께서는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성전에 오셨습니다. 이 사람은 38년 만에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14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완치를 선언하시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연약함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왜 38년 된 병자 한 사람만 고치냐고 시비를 걸 수 있습니다. 이날 예수님께서 주신 메시지가 있습니다. 병이 낫는 것보다 경건한 삶, 다시는 죄 짓지 않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만 모든 병이 죄 때문이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보고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요 9:2)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의 죄도, 그 부모의 죄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요 9:3)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하실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병과 연약함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하실 일이 있으십니다. 나의 연약함과 핸디캡이 하나님이 나를 쓰시고, 뜻을 이루시는 것을 결코 제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죄와 질병은 귀신 때문도, 죄 때문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고난은 원칙적으로는 죄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의 타락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고난이 없었을 것입니다.
고난은 죽음의 증상입니다. 죽음은 왜 왔습니까. 죽음이 인간의 운명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영생을 꿈꾸지 않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영생의 소망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백 년도 못 사는 인생 앞에서 통곡하는 것은 죽음 때문이 아니라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구원은 근본적으로 죄와 죽음과 사단의 통치에서 우리를 영원한 의와 생명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 사람은 유대 사람들에게 가서 자기 병을 고치신 분이 예수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은 예수를 핍박했습니다.”(15~16절)
예수님이 왜 핍박을 당하셨습니까. 사람을 살리고, 선을 행하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기 때문에 핍박받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은혜로 하나님의 축복과 치유도 받습니다. 값없이 거저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그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무한한 은혜가 우리에게 구원과 회복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참된 안식일의 의미
제일 중요한 말씀이 17절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묶여 있고, 안식일이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멍에가 된 유대인들에게, 무능력한 종교를 향해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굳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이러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병자를 고치신 것입니다.
병든 자, 고난당한 자를 두고 하나님께는 안식이 없습니다. 이 땅에 고통 받는 인생이 있는 한 하나님께는 안식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 때 있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 하나님은 안식하셨습니다. 창조를 모두 완성하신 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불순종과 교만으로 타락하고 범죄해서 인간에게 죽음과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죽음과 죄 아래에서 신음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안식이 깨어졌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안식을 깬 사람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안식을 깨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18절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이 말 때문에 더욱더 예수를 죽이려고 애썼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을 어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 부르며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으셨습니다.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진정한 권위를 드러내셨기 때문에,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구원자를 핍박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고 안식과 쉼을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쉬지 않으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십시오. 죄악의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고난과 고통, 좌절과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일어나서 믿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