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부흥집회 ㅣ 1월 29일 ㅣ영생의 빵을 먹었는가?_이재훈 목사
요한복음 6장 41~51절 예수님의 기적을 보지 않고도 믿는 자로 변화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분을 먹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믿음과 관련된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빵을 먹고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보고도 여전히 믿지 못하는구나”(요 6:36)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말씀을 듣거나 표적을 보고서야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것 때문에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 11:25~26)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아직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마르다는 “주는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가 믿습니다”(요 11:27)라고 고백했습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표적이 나타나지 않거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손으로 직접 예수님을 만져보고 보지 않으면 믿지 못 하겠다’며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요 20: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대하셨던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요한복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베드로전서에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으나 사랑합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그분을 보지 못하지만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즐거워합니다. 이는 여러분이 믿음의 결과로 영혼의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벧전 1:8~9)라며 베드로가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보며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고, 동행했고,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있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비결 ‘성령님’ 여러분,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님이 마음속으로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은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보지 않고 믿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어떻게 기적을 보지 않고도 예수님을 믿는 자로 변화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이끄심 “이 말씀에 유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부모를 우리가 알지 않는가? 그런데 어떻게 ‘내가 하늘에서 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41~42절)예수님의 기적을 보지 않고도 믿는 자로 변화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이끄심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에 대해 의심할 뿐만 아니라 적대시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예수님을 믿지 않을 핑계를 만들어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사실들에 대해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크리스천 중에 성격이 나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천주교의 신부는 결혼하지 않는데 목사는 결혼을 하고, 교회 건물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수군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내게로 올 수 없다. 그러나 내게 오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릴 것이다”(4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본질이자 첫 단계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끄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의지대로 ‘내가 믿겠다’고 공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끄심이 가장 중요한 출발입니다. 영원한 양식에 굶주린 이가 예수님 찾아 “예언서에 이렇게 기록됐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아버지께로부터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온다.”(45절)둘째로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에 이르는 길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것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듣고 믿는 믿음의 차원으로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보는 것에 익숙한 이 시대의 위기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듣기는 했지만 믿음은 약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듣는 것보다 보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비주얼이 강조된 세상은 인내력이 갈수록 약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자라면서 눈은 그다지 많이 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귀는 굉장히 커집니다. 리더십도 잘 보는 것보다 잘 들어야 합니다. 새로 거듭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 듣고 배우기 위해 예수님 앞으로 나올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주님을 믿고 신뢰할 때 믿음이 성숙해지는 것입니다.“갓난아기들같이 신령하고 순전한 젖을 사모하십시오. 이는 여러분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는 것입니다.”(벧전 2:2)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은 영원한 양식에 굶주려 예수님을 찾고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로 배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귀 기울이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영생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결국 죽었다. 그러나 여기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 있는데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는 내 살이다.”(48~51절)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믿음에 이르는 비결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먹음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생명을 유지시켜줄 뿐이고 일시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만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을 유지시켜주시는 양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자신을 생명의 빵에 비유하셨을까요.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안에 있다.”(요 6:56)우리가 음식을 먹음으로써 그 음식이 나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먹음으로써 예수님이 우리의 일부가 돼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완성, 믿음의 클라이맥스는 우리가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 크리스천이 예수님을 보지 않고도 믿게 된 이유는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택과 의지보다 하나님의 의지가 앞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문밖에 서서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때 문을 여는 것은 우리의 의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문을 활짝 열어봐야 두드리시는 분이 계시지 않다면 믿음이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이끄심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내 안에 초대해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배움으로써 예수님의 기적을 보지 않고도 믿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음식을 먹듯이 생명의 빵이신 그분을 믿고 의지하고 그분이 내 안에 계시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생명의 빵이신 그분을 먹고 그분과 함께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 베드로전서에 나타난 성도처럼 환난 중에도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즐거워할 수 있는 담대함이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정리 정성진 기자 jun@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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